달빛이 머문 봄밤

— 봄밤 연작시 14편을 올리면서

by 박순동

작가의 말

달빛이 머문 봄밤 — 봄밤 연작시를 올리면서

박순동


어떤 약속도 없던 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은 자꾸만 한 사람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봄밤은 이상하게도
사람을 기다리게 합니다.
이유를 묻지 않아도,
대답을 듣지 못해도
그저 가만히 마음을 열어두게 합니다.


이 연작에는
그런 밤들이 열네 번 담겨 있습니다.
서로 다른 결의 밤들이
조용히 이어져
하나의 봄밤을 이루었습니다.


별빛과 바람,
그리고 말하지 못한 감정들 사이에서
우리는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조금 더 깊어집니다.


어쩌면 이 시들은
누군가를 향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밤을 지나온
우리 자신의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부디 이 열네 개의 봄밤이
당신에게도
잠시 머물다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박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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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봄밤의 온도

박순동


어떤 약속도 없는데
봄밤은
자꾸 누군가를 기다리게 한다


별빛이 흐르고 바람이 머무는 사이
설레는 마음 위로 오래된 이름 하나 내려앉아
가만히 그리움의 온도를 높여 간다


2. 봄밤의 창가

박순동


불을 끄고 창가에 서 있으면
봄밤은
조용히 가까이 다가온다


별빛이 유리창에 가볍게 흔들릴 때
말없이 떠오르는 얼굴 하나
창가에 오래 머문다


3. 봄밤의 기다림

박순동


아무도 오지 않는 밤인데
봄바람은
자꾸 문 앞을 서성인다


별빛이 길 위에 내려앉는 동안
내 마음은 그 자리에 남아
아직 오지 않은 발자국을 듣는다


4. 별빛이 머무는 밤

박순동


늦은 밤 창을 열어 두면
별빛이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온다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가는 시간
사람의 마음은 문득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 닿는다


5. 봄밤의 골목

박순동


늦은 밤 골목을 걷다 보면
봄밤은
괜히 발걸음을 늦추게 한다


가로등 아래 조용히 흔들리는 그림자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잊었던 목소리 하나 들려온다


6. 봄밤의 편지

박순동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싶은 밤

봄밤은
마음을 조용히 펼쳐 놓는다


별빛이 종이 위에 내려앉는 동안
쓰지 못한 문장들이
가만히 마음 속에 머문다


7. 봄밤의 벤치
박순동


늦은 밤 공원 벤치에 잠시 앉으면
봄밤은
괜히 마음을 오래 붙잡아 둔다


별빛이 나뭇잎 사이로 흔들릴 때
문득 떠오르는 얼굴 하나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다


8. 봄밤의 버스 정류장
박순동


늦은 밤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면
봄밤은
괜히 마음을 오래 붙잡아 둔다


가로등 아래 조용히 흔들리는 그림자들
그 사이 어딘가에서
기다리던 이름 하나 떠오른다


9. 봄밤의 바람

박순동


늦은 밤 창을 조금 열어 두면
봄바람이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온다


커튼이 가볍게 흔들리는 사이
누군가 다녀간 것처럼
마음 한쪽이 잠시 따뜻해진다


10. 봄밤의 골목길

박순동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봄밤은
골목에 오래 남아 있다


가로등 아래 천천히 번지는 그림자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잊었던 발걸음 하나 떠오른다


11. 봄밤의 새벽

박순동


별빛이 하나둘 흐려질 무렵
봄밤은
조용히 새벽 쪽으로 기울어 간다


길고 깊었던 마음의 시간 끝에
사람의 가슴에는
아직 식지 않은 온기 하나 남는다


12. 봄밤의 달빛
박순동


늦은 밤 창을 열어 두면
달빛이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온다


말없이 머무는 은은한 빛 속에서
사람의 마음은 문득
멀리 있는 누군가를 떠올린다


13. 봄밤의 끝에서

박순동


밤이 깊어 갈수록
봄밤은
조금씩 새벽 쪽으로 기울어 간다


별빛도 하나둘 멀어지는 시간
사람의 마음에는
아직 다 식지 않은 온기 하나 남는다


14. 봄밤이 지나간 자리
박순동


긴 밤이 조용히 지나가고 나면
봄밤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물러난다


별빛이 머물다 간 창가에는
말없이 남아 있는 온기 하나
아직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26. 3. 17. 순동. 봄앓이를 하며 나흘에 걸쳐 연작시를 그리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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