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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자 Oct 16. 2023

낮에도 별은 빛난다

 7화 숨바꼭질

  그다음 날부터 재훈과 어머니는 숨바꼭질하였다.

  어머니는 재훈을 찾아다니는 술래였다. 숨은 곳을 알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 오르락내리락했고, 재훈의 마음을 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재훈 역시, 어머니와 얼굴을 부딪치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다. 학교만 갔다 오면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식사도 재훈이 혼자서 했다. 어머니는 처음에 재훈의 방까지 밥을 챙겨다 주며 말을 걸곤 했으나, 재훈은 어머니 물음에 침묵했다.

  저녁이었다. 재훈이 두 손을 머리에 괴고 누워 있었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재훈은 그대로 있었다.

  “재훈아, 제발 말 좀 하자구나, 응?”

  재훈은 일어나 앉았다. 그대로 누워 등을 돌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하기 싫어도 어머니가 말씀하는 동안 앉아 있어야 될 것 같았다.

  “이번 일로 네가 충격이 컸으리라 생각한다. 난 너를 낳지 않았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내 배 속에서 자라지 않았을 뿐이지, 진짜 핏줄처럼 너를 키웠다. 넌 나의 생명이야.”

  창문 가까이 간 엄마는 조용히 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리는 밤하늘에만 별이 있다고 생각하고 낮에도 별이 빛나고 있음을 알지 못하지. 엄청  밝은 햇빛 때문에, 상대적으로 보이지 않는 별빛을 보지 못하듯이 엄마라는 별은 낮이나 밤이나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어. 하늘에 해와 별이 있는 것처럼, 너도 있는 거야. 어쩜, 운명인지도 몰라.”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엄마의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난 죽으면 별이 되고 싶었어. 밤에는 물론 낮에도 여러 사람의 가슴속에 빛나는 찬란한 별이 되고 싶었단다.”

  잠시 침묵하던 어머니가 짧게 말했다.

  “기다릴게.”

  조용히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지만, 재훈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메아리가 되어 귓가에서 울렸다.

  ‘뭘 기다린단 말인가? 난 내 엄마를 찾고 말겠어, 꼭!’

  한참 그렇게 있던 재훈은 심한 갈증으로 식당에 내려갔다.

  약봉지가 수북했다. 어머니는 평소 약을 먹지 않는 분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입맛이 없다고 하면서도 약국이나 병원에 가지 않았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너무나 많은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서 진저리가 난다고 얘기하곤 했다.

  어느덧, 유월이 되었다.

  재훈은 어쩔 수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학교와 집으로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엄마를 찾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으나, 대나무 아저씨는 나타나지 않았고, 늦게 마치는 학원 수업 때문에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학교에 갔다 오니 함안 할머니가 오셔서 부엌일을 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엄마의 약한 몸을 탓하면서 부지런히 음식을 장만하고 설거지했다. 한 번씩 파출부 아주머니가 와 빨래와 청소를 돕곤 했다. 어머니가 아주 편찮으신 모양이었다. 그러나, 재훈은 한 번도 안방 문을 열어 보지 않았고, 여전히 말도 하지 않았다.

  근 보름, 계시던 할머니는 어머니가 안정을 얻게 되었다며 함안으로 가셨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소나기도 자주 내렸다. 아침에는 푸르던 하늘이 오후가 되자, 소나기를 쏟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각이 되자, 비는 더 무섭게 내렸다.

  여기저기 엄마들이 우산을 갖고 와 나란히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재훈은 막막했다.

  친구들도 보이지 않았다. ‘이럴 때 지혜라도 나타나면 얼마나 좋아.’하고 생각을 하다가 쓸쓸하게 혼자 웃었다.

  ‘난 혼자야. 영원히 혼자라고.’

  재훈은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빗속을 뚫고 어디라도 멀리 사라지고 싶었다. 자신이 서럽고 불쌍하다는 생각에 눈 주위가 따뜻해져 옴을 느꼈다.

  입을 꼭 다물고 흘러내리는 빗물을 한 손으로 훑어 내렸다. 머리에서 어깨로, 온몸으로 빗물이 흘러내렸다.

  “재, 재훈아!”

  한쪽 다리가 부러진 방아깨비처럼 어머니가 급하게 오고 있었다. 재훈은 못 들은 것처럼 걷기만 했다. 우산이 재훈의 머리 위에 씌워졌다. 그래도 재훈은 우산을 받지 않았다.

  “엄마가 늦었구나, 아침에는 그렇게 맑더니…….”

  어머니는 혼자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처럼, 재훈의 대답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신발과 긴치마도  젖어 마치 빨래를 건져 올린 것 같이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옛날 같으면 벌써 날 데리러 왔을 거야. 늦은 건 변명이야.’

  재훈은 우산을 빼앗다시피 받아서 빠르게 앞으로 걸어갔다. 절뚝거리며 따라오는 어머니 모습을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래, 날 당신이 낳은 자식처럼 키웠다고 했지. 그럼, 진영 누나를 구하기 위해서 찻길로 뛰어들었다고 했는데, 내가 만약 위험하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걸음을 더 빨리하면서 재훈은 그런 생각을 했다.

  횡단보도 가까이 왔을 때, 비가 더 많이 내렸다. 재훈은 빨간불이 켜져 있는데, 순간적으로 찻길로 뛰어들었다

  “끼익.”

  택시 하나가 급하게 멈추었다.

  “재훈아!”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질펀하게 찻길에 퍼졌다. 찻길 가운데 서 있는 재훈은 꿈속인 것 같았다.

  “이 자석이 죽을라꼬 환장을 했나!”

  경상도 사투리가 심한 아저씨 목소리에 재훈은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재훈아, 무슨 짓이니…….”

  어머니는 그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창백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리고, 물속에서 막 나온 해녀처럼 숨비소리를 내더니 재훈을 길가로 데리고 갔다.

  운전수 아저씨는 차에서 내려 다짜고짜 재훈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죽을라꼬 하먼 니 혼자 죽어야지, 30년 무사고 기사 밥줄 끊을라꼬 해! 아지매, 자석 교육 잘 시키소, 야!”

  “아이고, 선생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어머니는 운전수 아저씨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연신 허리를 굽혔다.

  “마, 초보였으면 저것은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닌기라요. 그래도 내 차에 뛰어들어서 운이 좋은 줄 아소.”

  “네, 기사 양반 고맙습니다. 다행입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어머니는 세상에 있는 낱말이란 낱말을 다 주워 와 상점에 진열하듯이 늘어놓았다.

  횡단보도를 건넌 엄마는 ‘관세음보살’만 여러 번 불렀다. 그저 앞만 보고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빗줄기는 약해지고 있었다.

  재훈은 순간적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나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하늘나라로 가고 싶다……. 난 물에 뜬 기름이라고.’

  한편으로 심장이 약해진 어머니를 놀라게 한 일이 미안하기도 했으나, 자꾸만 자라고 있는  미움을 지울 수 없었다.

  먼저 집으로 달려와 버렸다. 책가방은 물론이고, 그 안에 든 책과 속옷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

  옷을 갈아입은 재훈은 집에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어머니가 젖은 옷을 입은 채, 마루에 앉아 있었다.

  재훈은 말없이 마당으로 나왔다.

  어머니는 어딜 가느냐고 묻지 않았다. 다만 재훈보다 먼저 어머니 한숨 소리가 대문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비는 완전히 그치고, 서쪽 하늘부터 개기 시작하면서 어둠이 살금살금 걸어오고 있었다.

  재훈은 어두워진 길을 걸었다.

  어머니 잘못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솔직히 어머니 잘못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자신에게 화가 나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어머니한테 돌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재훈은 어머닐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말도 하기 싫었다.

  미영 누나와도 멀어졌다. 큰누나하고는 같은 집 안에 있어도 만날 수 없었다. 큰누나도, 재훈도 서로 부딪히지 않으려 애썼다.

  아버지는 또 하나의 사업체를 인수하여 더 바빴고, 둘째 누나는 대학 진학반이라 늦어서 통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재훈이마저 종일 방에서 나오지 않으니 많은 식구였지만, 집 안은 조용했다.

  힘든 일을 하지 못하는 어머니는 한 번씩 아주머니를 불러서 집안일을 시켰고, 주로 안방에서 지냈다. 늘 관세음보살 염불 소리가 들려왔고, 부쩍 절에 다니는 횟수가 늘어났으며 자주 집을 비웠다.

  재훈의 발걸음은 자신도 모르게 지혜네 집 앞에 멈춰 있었다.

  ‘지혜는 날 이해해 줄까?’

  같은 반이 아니라서 자주 볼 수 없었다.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지혜한테라도 털어놓으면 후련할 것 같기도 하고……. 아니야, 친어머니가 아닌 줄 알면 지혜는 날 어떻게 생각할까? 괜히 얘기했다가 우정에 금이 갈지도 몰라.’

  생각은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래, 날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나쁜 아이처럼.’

  ‘아니야 지혜는 그럴 리 없어. 난 누구보다 지혜를 잘 알아.’

  초인종을 누를까, 하다가 재훈은 돌아섰다. 저녁 먹을 때도 된 것 같고, 여자 집에 가는 것이 어쩐지 쑥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돌아서서 몇 걸음 걸었을 때였다.

  “어머, 재훈이 아니니?”

  지혜가 노란 비옷을 입은 채, 웃고 있었다.

  재훈은 불장난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목을 움츠렸다.

  “왜 요즘 학원에 안 오는 거니?”

  “까짓 코딩 좀 모르면 어때!”

  “너답지 않다. 범생이가 왜 그래? 우리 집에 가자. 우리 엄마도 반가워할 거야.”

  “너무 늦지 않았어?”

  “여섯 시도 안 됐는데……. 들어가, 저녁도 같이 먹고.”

  재훈은 지혜 손에 떠밀려 안으로 들어갔다. 지혜 엄마는 재훈을 무척 반겼다.

  5학년까지 같은 반이었고 키도 비슷해서 네 번이나 짝을 했기 때문에 엄마들도 잘 아는 처지였다.

  “엄마도 잘 계시지? 요즘 통 안 보이더라.”

  “…….”

  어머니에 대한 얘기는 재훈의 마음을 오그라들게 했지만, 오랜만에 맛있게 저녁을 먹은 후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엄마,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재훈이 데려다주고…….”

  “그래라.”

  지혜 엄마는 재훈을 보고 싱긋 웃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니? 우울해 뵌다.”

  “아무 일 없어……. 저, 지혜야 네 엄마는 널 진짜 낳았니?”

  “그럼, 가짜가 어디 있어!”

  “난 아니야. 우리 어머니는 날 낳아 준 엄마가 아니라고…….”

  “무슨 소리야?”

  “저번에 어떤 아저씨를 만났다는 얘기 들었지?”

  “응, 그 미친 아저씨 말이니?”

  “미친 사람이 아니었어. 아저씨 말이 맞았다고, 사실이었어.”

  “그럼, 네 어머니가 진짜 어머니가 아니란 말이…….”

  “집이 싫어졌어. 난 방학만 되면 낳은 엄마를 찾아 나설 거야.”

  재훈은 멈춰 서서 길가의 은행나무에 기댔다.

  “요즘 그 아저씨가 통 뵈지 않아. 사실을 알고 만나려고 하니 볼 수 없어서 안타까워.”

  재훈은 범어사에서 아저씨를 보았다고 얘기하려다가 관두었다. 지혜는 이 사실만으로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리가? 그분이 네 엄마가 아니라니, 믿어지지 않아.”

  “난 모든 것이 귀찮고, 하고 싶지도 않고, 모두 보기가 싫어. 어제는 수업 시간에 딴생각하다가 선생님께 한 소리 들었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지만, 고개만 숙이고 있었지. 고개를 들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가까스로 참았어.”

  “정말 믿어지지 않아. 이건 영선이 문제와 또 달라. 이렇게 냉가슴만 앓지 말고, 선생님과 의논해 보는 것이 어떨까? 그래도 우리에게 제일 가까운 어른은 선생님이잖아.”

  재훈은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어른들은 다 믿을 수 없어. 똑같다고! 틀림없이 날 설득하려고 하실 거야. 난 낳아 준 어머니를 꼭 찾고 말겠어. 이대로 있을 순 없어.”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네 엄마도 얼마나 좋은 분이니? 그런데, 엄마가 또  있다니. 살아 있으니 찾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하늘에는 별들이 하나, 둘 빛을 내고 있었다.

  ‘그래, 엄마는 저 별들이 낮에도 빛나고 있다고 했어. 하지만, 햇빛 때문에 빛을 잃고 있다고 했지. 엄마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했지만, 난 별빛보다 더 밝은 내 태양을 찾고 말 거야. 내 가슴에서 타오르고 있는 밝은 빛을. 꼭, 꼭…….’

  지혜도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혜야, 너무 늦었어. 들어가 봐.”

  “그래, 어쩌지. 네 마음을 어쩌지?”

  지혜는 발을 동동 구르며 재훈의 아픈 마음을 진정으로 함께 애태우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잘될 거야.”

  “재훈아, 네가 말했잖아.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말이야.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시간이 흐르면 달라질 수 있을 거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다.”

  재훈은 입술을 실룩거리며 웃었다.

  “가 봐, 늦었어.”

  “안녕!”

  지혜가 몸을 돌렸다.

  “지, 지혜야!”

  “왜?”

  지혜가 돌아섰다.

  “응, 아무것도 아니야. 가.”

  재훈은 지혜에게 이 사실을 비밀로 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지혜의 부모님에게도. 그러다가, 언젠가 다 알게 될 얘기를 굳이 숨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관두었다.

  지혜가 뒤돌아보고 있을 때, 재훈은 먼저 돌아섰다.

  낮에 비가 온 덕분인지 선선했다.

  대문은 열려 있었고, 재훈이 2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책상에 앉자, 누군가 나가서 대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뒷집의 텔레비전 소리가 재훈의 방까지 들려왔다.

  재훈은 라디오를 크게 틀었다.

  “투나잇.”

  언젠가 누나가 좋아한다던 신나는 곡이었다. 그러나, 재훈은 꺼 버렸다. 그 누구와의 일도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불도 꺼 버리고 조용히 자리에 누웠다. 피곤했다.

  텔레비전 소리가 윙윙거리며 들려왔으나, 재훈은 오랜만에 일찍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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