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눈부신 날
재훈은 벌떡 일어났다. 밖이 훤했다. 시계를 보니 8시 40분이었다. 지각이었다.
가방에 책을 쑤셔 넣고 급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미영 누나가 거실에 앉았다가 일어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딜 가?”
“늦었어.”
재훈은 짧게 말하고 신발을 신으려 했다.
“오늘은 어린이날이야, 나도 학교에 안 갔잖아.”
“…… 그런가?”
오늘이 어린이날인 것도 잊어버리고, 꿈속인 것처럼 모든 것이 분명하지 않았다.
재훈은 빨리 2층으로 올라와 버렸다. 미영 누나가 밥 먹으라고 등 뒤에서 크게 불렀다.
2층으로 올라온 재훈은 가방을 던져두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마침,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길에 나오니 5월의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가슴에 안겨들었다. 머리가 무겁고 가슴이 답답했으나 귓불을 간질이는 바람이 재훈의 마음을 달래 주는 듯했다.
‘어디로 가지?’
재훈은 망설였다.
‘그래, 우선 누구든 만나 보자.’
무작정 나오다 보니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돈도 한 푼 없었다. 먼저 영민이 생각났는데, 영민의 집은 재훈 집에서 멀었다.
“아, 오늘이 어린이날이라 집에 없을 수도 있겠다.”
중얼거리면서 그냥 걸었다. 영민이네 아파트도 지났다.
이상하게 모두에게 서운했다. 재훈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친구들은 대부분 가족과 함께 나들이 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걸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운동장도 텅 비어 있었다.
다시 거리로 나온 재훈은 그냥 걸었다. 손에 울긋불긋 풍선을 든 아이, 장난감 새를 가슴에 안고 좋아하는 아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즐거워하는 아이의 모습이 재훈에게는 꼭 그림책의 한 장면 같았다. 바람만 재훈이가 가는 대로 따라다녔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끼익.”
흰색 자동차가 재훈이 곁에서 급하게 멈추었다. 아버지가 차 안에서 손사래 치고 있었다.
재훈은 가로수 포플러나무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여태 재훈이가 생각한 아버지는, 항상 바쁘시지만 가족을 사랑하고, 경위가 바른 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이중인격자야.’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재훈을 보고 아버지가 말했다.
“화가 났구나, 어젯밤 아버지가 너무 늦어서 어린이날 선물을 못 샀지. 그래서, 아침에 나갔다가 바로 들어오는 길이야. 어서 타.”
“……”
뒤에 있던 차가 빵빵 소리를 냈다. 재훈은 어쩔 수 없이 앞문을 열고 아버지 곁에 앉았다.
“어딜, 가는 길이냐?”
“아뇨, 그냥 걷고 있었어요.”
“어린이날이니까 아들하고만 멋진 데, 가 볼까? 네 엄마도 그러라고 했어.”
재훈은 대답도 안 하고, 밖의 풍경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선 점심때가 되었으니 뭘 먹을까? 갈비, 아니면 파스타 먹으러 갈까?”
“배고프지 않아요.”
재훈은 입 안이 마르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으나,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재훈이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조금 멀긴 하지만, 언양 불고기 먹으러 가자.”
차는 인터체인지를 벗어나 한적한 길로 접어들었다. 멀리 있는 풍경들은 ‘휙휙’ 빨리 지나갔다. 온통 푸르름이었다.
침묵이 흘렀다. 재훈은 아버지 옆모습을 흘깃 곁눈질했다.
아버지께 확실한 대답을 들어 봐야 하겠다고, 생각한 재훈은 혀로 윗입술을 한 번 빨았다.
“궁금한 게 있어요,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그래, 무엇이든지 물어봐. 다 얘기해 줄 테니.”
아버지는 자신 있게 말했다.
“저를 낳아 주신 어머니는 어디 있어요?”
“뭐라고? 널 낳아 준 엄마라니. 무슨 소리냐?”
아버지는 오른쪽 깜빡이등을 켜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
“숨기지 말고 진실을 말해주세요, 난 다 알고 있다고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 아버지는 불을 댕겼다. 그리고는 ‘후’하고 연기를 뿜어냈다.
“재훈아,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던?”
“낯선 아저씨가 절 찾아왔었어요. 그리고 큰누나도 말했고요.”
“재훈아, 그건 말이다. 그건 …….”
“저는 친엄마를 찾고 말겠어요.”
“그 사람은 죽었어.”
“거짓말이에요. 엄마는 죽지 않았어요.”
“……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 생각은 했지만, 지금은 아니야.”
아버지는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길가에 털썩 주저앉았다.
재훈도 안전띠를 풀고 내려서 아버지 곁에 나란히 앉았다.
작은 풀잎들이 바람 따라 도리질하는 것이 아름다웠다. 멀리 떨어진 언덕의 나무들은 초록빛 연한 몸매로 바람 부는 대로 살랑거리고 있는 참 눈부신 날이었다.
아버지가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아버지의 얘기를 네가 이해할지만, 아니 나의 변명이라고 해 두자. 3대 독자인 내가 딸만 내리 낳자, 할아버지의 성화가 대단했지. 몸이 약한 네 엄마가 더 이상 아이를 못 갖는다는 진단을 받자, 대를 잇지 못하면 네 엄마랑 헤어질 각오를 하라는 게야.”
재훈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한 채, 아래만 내려다보며 듣고 있었다.
“너를 낳은 엄마는 마음이 무척 고운 여자였단다. 나 때문에, 모든 걸 망친 가엾은 여자야. 그러나, 지금은 아주 먼 곳으로 떠나 버렸기 때문에 죽은 거나 다름없어. 너를 낳지는 않았지만, 지금 엄마는 기저귀를 빨고 우유를 먹이며 너를 키웠다. 널 데려왔을 때는 몹시 서운한 눈치였지만, 너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끼고, 그 어떤 보물보다도 귀중하게 여기고 있단다.”
재훈은 발밑에 있는 토끼풀 하나를 발견하고는 뜯으려다 관두었다. 그러면 곁에 있는 들꽃들이 모두 울어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재훈아, 듣고 있니?”
재훈이 대답하지 않자,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중요한 거야. 넌 분명히 내 아들이고, 엄마의 아들이야.”
아버지는 힘주어 말했다. 심각하던 여태의 모습과는 아주 딴판으로. 그러고는 벌떡 일어났다.
재훈은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언젠가 너도 아버지를 이해할 날이 올는지 모르지만……, 어른이 되면 해로운 줄 알면서도 술을 마시고 담배도 피우게 된단다.”
아버지는 다가와 두 손을 재훈의 양쪽 겨드랑이로 넣어 일으켜 세웠다.
“재훈아, 저 해를 보렴. 저렇게 하늘에 해가 있는 것처럼 너도 있는 거야.”
아버지는 뚜벅뚜벅 걸어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재훈은 해답지를 펼치려다 만 것처럼 궁금증만 더해졌다. 분명한 것은 재훈이가 알고 있는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맑은 하늘의 날벼락이라더니 그 말뜻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집으로 가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요.”
“그래, 돌아가자.”
차 안에서 아버지도 재훈이도 말이 없었다. 침묵이 유리창 안에서 아버지와 재훈을 꽁꽁 묶어 놓았고, 엔진 소리만 크게 들려올 뿐이었다.
재훈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눈앞으로 휙휙 지나가는 푸르름은 더러는 붉은빛으로, 검은빛으로 나타나 재훈의 마음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다 왔어.”
재훈은 얼른 내려서 대문을 밀어 보았다. 문은 열려 있었다.
바로 이층으로 올라가 침대에다 몸을 던졌다. 어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힘이 없었다.
“재훈아, 너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
미영 누나가 문을 열고 들어와 누워있는 재훈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재훈은 말없이 돌아 누워버렸다
“여기 우유와 빵이 있으니 먹어, 엄마는 마음만 졸이고 계신다. 재훈아, 제발 좀…….”
“신경 쓰지 마, 다 보기 싫단 말이야.”
“참 서운하구나. 그래도 어려울 땐, 누나가 필요할 줄 알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다니……. 내려갈게.”
‘난 아무도 믿을 수 없어, 다 필요 없다고!’
한참을 엎드려 누워 있던 재훈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난 날 낳아 준 엄마를 찾고 말 테야, 꼭.”
재훈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들으란 듯이 말했다. 그리고, 그 아저씨를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큰 키, 하얀 얼굴, 검은 안경테는 선명하게 떠올랐으나, 얼굴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그렇게 쌀쌀맞게 대하지 않았어도…….”
재훈은 일어나 방 안을 빙빙 돌면서 다시 만날 방법을 생각해 보았으나, 아저씨에 대해 아무 정보가 없어 속상했다.
빵과 우유가 보였다. 배가 고팠다.
“그래, 다시 만나려면 힘을 내야 해.”
우유는 벌컥벌컥 마시고, 빵은 꼭꼭 씹어 먹었다. 먹고도 배는 차지 않았지만, 그대로 침대에 벌렁 누웠다.
‘마지막 어린이날이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지난해는 참 신났었는데…….’
모두한테 느껴지는 미움이 어둠과 함께 재훈의 가슴에 차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