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수자 Oct 12. 2023

낮에도 별은 빛난다

 5화 별이 놀란 이야기

  목련이 지고 있었다. 잎도 나기 전에 하얗게 피어나던 꽃, 깨끗한 눈송이 같은 꽃이 누렇게 변해서 하나둘 지고 있었다. 꽃을 하나 주워 든 재훈은 한 잎씩 떼어 나무 밑으로 던져 버리고 올려다보았다. 아직도 하얀 모습 그대로  나무에 피어 있는 눈부신 목련꽃 하나를 발견한 재훈은 그 꽃이 누군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 꽃은 범어사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다소곳한 모습이었다.

  “딩동딩동.”

  초인종 소리에 재훈은 깜짝 놀랐다.

  미영이 누나였다.

  “자, 받아.”

  미영이 누나의 가슴에 안겨 있던 커다란 곰 인형이 재훈의 품 안에 들어왔다.

  “무슨 날이야?”

  “어린이날이잖아.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을 위하여 용돈을 다 털었다는 사실과, 올해로 좋은 시절은 끝나는 네 청춘을 위하여.”

  “좋은 시절이 끝났다고?”

  “그래, 중학생이 되어 봐. 얼마나 괴롭나, 그중에서도 제일 괴로운 건 말이다, 학교에 남학생이 하나도 없다는 거야.”

  “순 엉터리.”

  “엉터리라니? 여학생 없는 교실이 얼마나 삭막한지 두고 보라고, 중학생이 되면 이 누나의 말씀이 옳다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까.”

  “누나, 요즘 약국집 형은 통 안 보이더라.”

  “피, 그 치한테 관심 없어.”

  “일기장에는 온통 그 형 얘기더라, 뭐.”

  “약 올릴래. 그 선물, 이리 내놔. 당장!”

  “잘못했어, 누나. 선물 고마워.”

  한쪽 눈을 찡긋하며 애교 부리는 재훈의 몸짓에 누나도 싱긋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미영 누나 때문에 재훈은 기분이 좀 나아졌다.

  곰 인형을 안고, 이층으로 올라간 재훈은 오랜만에 포켓몬 앱을 열었다. 포켓볼을 검지로 터치한 후 위로 죽 던져 올려 잉어킹을 한 번 만에 잡았다. 옆으로 누워서 팔딱거리는 잉어킹 뒤로 끝없이 물방울이 생겨났다. 포켓몬스터 도감에 넣은 후, 다시 팽도리를 잡고 포켓몬 여럿을 잡고 또 잡았다.  

  게임에 열중한 그 순간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불이 켜졌다.

  “어두운 데서 불도 켜지 않고 있다니. 저녁 먹을 시간이야.”

  재훈은 벌떡 일어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재훈을 와락 껴안고 중얼거렸다.

  “누가 뭐라고 해도 넌 내 아들이야. 내 아들이라고!”

  어머니 품 안에서 약 냄새가 났다. 이상했다. 어머니의 냄새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꽃향기처럼 향기롭고, 봄바람처럼 싱그러워야 했다. 그런데, 어머니한테서 병원에 가면 나는 소독약 같은 역겨운 냄새가 났다.

  “어머니, 배고파요,”

  재훈은 어머니 품에서 떨어졌다.

  “그래, 내려가자.”

  재훈이가 먼저 계단을 내려오고 있을 때였다.

  “밥때가 되면 스스로 내려올 수 없니? 꼭 엄마가 데리러 가야겠어!”

  큰누나가 재훈을 노려보며 외쳤다.

  그 순간, 일제히 돋아나는 뾰족한 가시를 재훈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누난 상관 마! 왜  나한테 항상 시비만 거는 거야.”

  “이게 누나한테 대들어!”

  “누나가 날 키웠어? 누난 왜 날 싫어하는 거야? 누나가 싫어하는 것만큼 나도 누나가 싫단 말이야!”

  “재훈아!”

  어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훈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아니, 누나한테 전에 없이 웬 말대꾸냐, 재훈이 답지 않구나.”

  “어머니, 저도 이제 6학년이에요. 왜 누나가 날 싫어하는지 이유를 알아야겠어요.”

  “뭐라고? 이유를 알고 싶다고. 그래 가르쳐 줄까?”

  “진영아!”

  어머니가 큰누나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뭐가 두려우세요? 재훈이는 엄마가 낳은 자식이 아니란 걸 알아야 해요. 자기 말대로 다 컸다고 하잖아요. 이제는 엄마의 고통을 나눌 때가 되었다고요.”

  “진영아, 진영아…….”

  엄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미영 누나는 숟가락 든 손을 벌벌 떨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재훈은 얼음에 들어간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늦어서 놓쳐 버린 기차를 바라볼 때처럼 허망했다.

  모든 일들이 책장을 넘기듯 빨리 지나가도 괜찮았는데, 집게손가락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듯 천천히, 재훈의 비밀을 꼭 끄집어내야만 하는 건지, 운명이란 참 얄궂다는 생각에 슬퍼졌다.

  이런 일은 재훈과는 상관없는 줄 알았는데, 영선이한테서 들어 본 이야긴 줄 알았는데, 재훈은 식당 구석에 꼿꼿하게 서서 진영 누나의 얘기를 끝까지 듣기로 했다.

  순간,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정지된 화면처럼 그렇게 서 있었다.

  다만, 창밖에 있던 별 하나가 놀라 식당 안을 기웃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식탁 위에 있는 음식은 모두의 마음처럼 식어 있었다.

  어머니는 바닥에 앉은 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고, 두 팔 속에 얼굴을 묻고 있던 진영 누나는 어깨를 조금씩 들먹이고 있었다. 큰누나가 흐느꼈다.

  미영 누나도  큰누나의 팔을 흔들며 울먹거렸다.

  “언니,  왜 그래? 큰언니가 이럴 줄 몰랐어.”

  큰누나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불그레한 누나의 눈에서 뚝뚝 물이 떨어졌다. 그리고,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 엄마가 늘 불쌍했어요. 엄마는 저에게, 이제는 아버지를 이해할 나이가 됐다고 말씀하시지만, 세월이 가면 갈수록 뱀의 똬리처럼 미움이 더 깊어지는 걸 어떡해요!”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 한숨을 쉬었다. 다 퍼져 버린 죽처럼 흐물흐물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지요. 빨리 달리던 자동차가, 신호등을 미처 보지 못하고 길을 건너던 나를 덮치려 하자, 날 끌어내고 대신 뛰어든 엄마가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엄마가 온통 하얀 붕대를 감고 괴로워할 때…….”

  큰누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목 안에서 이상한 소리를 냈다

  “난 엄마 곁에서 하루 종일 울다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할머니 품에 안겨 있는 아기를 보고 얼마나 좋았는지 엄마는 모를 거예요. 아픈 엄마도 잊어버리고, 조그만 손과 꽃잎 같은 입을 바라보면서 만지고 또 만지다가 할머니한테 혼이 나기도 했지요. 엄마가 회복될수록 아기도 더욱 예쁜 짓으로 옹알거리고 소리 내어 웃었어요.”

  큰누나는 잠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식탁을 내려다보며 마치 혼자 말하는 것처럼 낮게 말했다.

  재훈은 숨소리도 나지 않게,  바람 한 점 없는 나무처럼 듣고만 있었다.

  “엄마가 퇴원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야  아기가 왜 우리 집에 있는지를 알게 되었고, 엄마가 흘리는 눈물이 뜻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어. 재훈이가 그때부터 싫어졌어. 아들만 대를 이어야 하고, 아들이 없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고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미웠지만, 다른 여자한테서 아들을 낳아 온 아버지는 더욱더 미웠어. 우리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지만, 난 느낄 수 있었어. 아버지가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만해! 속 시원히 말했으니 이젠 됐잖아?”

  어머니는 큰누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그 표정은 누나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표정이 아니라, 진실을 받아들이는 초연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은 유난히 하얗고 싸늘했다.

  재훈의 가슴은 답답했다. 삶은 계란을 입 안 가득히 넣고 다 삼키지 못한 때처럼 갑갑했다. 더 이상 재훈은 나무가 될 수 없었다.

  서 있던 자리가 스르르 내려앉는 것 같기도 하고, 벽이 빙빙 도는 것 같기도 해서 재훈은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술 먹은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재훈아, 재훈아!”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자꾸 누가 따라오면서 부르는 것 같아서 빨리 나가려고 애를 썼다. 빨리 이 악몽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재훈은 발버둥을 쳤다.

  누군가 와서 팔을 잡았다.

  분명히 꿈은 아니었다. 미영 누나가 재훈의 양팔을 잡았다.

  “재훈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어.”

  미영 누나도 낯설었다. 노래 부르기 좋아하고, 항상 친구같이 다정했던 누나도 재훈을 속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싫었다. 미웠다, 아니 슬펐다.

  “누나도 날 속이고 있었구나.”

  “속이다니?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자세한 것은 몰랐어. 그러나, 무슨 상관이람. 넌 내 동생이 틀림없고,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잖아.”

  “달라진 것이 없다고? 난 여태 속고 있었어.”

  “재훈아, 어른이라고 다 옳은 일만 하는 줄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잘못한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어. 어른들을 이해해야 해.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돼가고 있잖아.”

  “이해할 수 없어, 엄마가 유난히 날 챙기는 것도 이제야 알겠어.”

  “무슨 말이니? 엄마는 널 정말 사랑하고 있어."

  "사랑한다고? 그건 겉과 속이 다른 거였어.”

  “뭐라고? 겉과 속이 다르다니, 재훈이 너 미쳤구나.”

  “그래, 난 미쳤어. 누나 같으면 이런 경우 미치지 않겠어!”

  재훈은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이제는 어둠 속에서도 모든 것이 뚜렷하고 분명하게 보였다. 동쪽으로 난 창문, 책상과 침대와 컴퓨터도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을 잠갔다,  혼자 있고 싶었다.

  재훈은 불도 켜지 않고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울고 싶었다. 그러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자꾸만 가슴속에서 차오르는 어떤 서러움 때문에 목에서 ‘꺽꺽’ 이상한 소리만 나왔다. 침대에다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리고, 마침내 ‘엉엉’ 울어 버리고 말았다.

  밖에서 기척이 났다.

  “재훈아, 문 열어. 엄마랑 얘기 좀 하자.”

  재훈은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재훈아, 제발 문 좀 열어다오.”

  어머니가 손잡이를 잡았다가, 한 손으로 문을 탕탕 두들겼다.

  “엄마, 내려가요. 재훈도 얼마나 놀랐겠어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예요, 네?”

  미영 누나의 소리가 들렸다.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 생각했지만, 언니한테 말조심하라고 얼마나 주의를 주었는데…….”

  “큰언니를 나무라지 마세요, 사실이잖아요. 내려가 엄마.”

  “나도 언제까지 가슴속에 묻어 놓고 싶지는 않았어. 그렇지만…….”

  엄마는 한숨 소리만 문밖에 남겨 놓고 내려가는 모양이었다.

  “그 아저씨의 말이 사실이었어. 엄마가 날 보고 싶어 한다고 했는데, 날 보고 싶다고 했다는데…….”

  재훈은 머리카락 밑을 열 손가락으로 막 비볐다.

  ‘그 후론 한 번도 만나지 못했어. 아저씨를 찾아야 우리 엄마를 볼 수 있을 텐데…….’

  샘물처럼 고이는 엄마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재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침대 위에 벌렁 누웠다.

  재깍재깍 하는 초침 소리와 가끔 ‘부르릉’ 하고 지나가는 차 소리만 재훈의 귀에 들릴 뿐이었다.

  재훈은 밖으로 튀어 나가 거리를 방황할까, 생각하다가 나갈 때, 어머니와 마주치는 것이 싫어서  문을 잠근 채, 있기로 했다.

  어머니 얼굴은 보기도 싫고, 밉기만 했다. 눈을 감았다.

  차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아버지가 돌아온 것 같았다.

  밤 11시였다. 재훈은 옷을 입은 채, 그렇게 생각의 실꾸리를 풀다가 잠이 든 것이었다. 아래층에서 떠들썩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밤은 깊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재훈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꾸러기로 소문난 재훈이 눈을 뜨고  있으니, 별들도 이상한지, 창가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