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pisode 8. 예정된 지목

by mean

그의 수업을 들을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수준별 시간, 내가 속한 D반을 그가 맡았다.


하루는 교실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하나둘 지목하던 그가 내 책상 옆으로 다가와 멈춰 섰다. 내 문제집의 한 문항을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이 문제 네가 나가서 풀어 봐."


내가 눈치를 보며 일어서려는데 그가 수줍은 웃음을 터뜨렸다. 수학에 자신 없던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살필 여유조차 없었다. 건너편 자리 아이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는 문제를 풀게 시켜놓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나는 해설 페이지를 펼쳐 들고 칠판으로 갔다.


칠판 구석에 받쳐 든 해설지를 보며 풀이 과정을 베껴 적기 시작했다. 채 끝내기도 전에 그가 들어왔고, 황급히 해설지를 덮었다.


나는 분필을 내려놓고 뒤로 물러났다. 내 뒤로 다가온 그가 칠판을 보더니 안타까움이 섞인 목소리로 자꾸만 말했다.


“다 해놓고 왜 못 풀어.”


해설지 보고 적기만 한 거라 아무것도 모른다고, 제발 말 그만하고 그냥 선생님이 풀어주면 안 되겠냐는 생각만 맴돌았다.


간절함을 담아 그를 올려다 보자, 그는 표정을 풀고 분필을 집어 들었다. 나는 문제를 대신 풀어주는 그의 옆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가 분필을 내려놓고 나서야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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