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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식 Oct 04. 2023

배추가 놓여있던 풍경


                                    


  임진왜란 이 후 우리나라에 고추가 들어왔다. 매콤한 고춧가루를 넣어 담근 김치가 문헌에 오른 것은 18세기 초이다. 김창업이 지은 ⟪연행일기燕行日記⟫만 살펴봐도 1,700년 전 후부터 우리 민족이 김치를 담가 먹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일찍이 김치가 국제화 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저자 미상인 ⟪계산기정薊山起程⟫ 이라는 중국 기행문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이미 한국 김치가 중국에 전래되어 그곳 사람들에게 먹히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어서다. 중국 통역관들이 우리나라에서 배운 솜씨로 김치를 담가 먹고 있었다고 이 책은 밝히고 있다.

  이로보아 정작 김치의 종주국宗主國은 한국 아닌가. 그럼에도 우리의 김치 담그는 법을 전수 했던 중국에서 김치마저도 수입하고 있다. 이즈음 식당 어디를 가든 주인이 직접 담근 김치 맛을 좀체 맛볼 수가 없다. 가정집에서조차 편리하다는 이유로 공장에서 다량으로 생산한 김치를 구입해 밥상 위에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의 경우 김치로 볶음밥을 해먹으면서도 김치를 곁들여 먹어야만 입안이 개운하다. 아무리 산해진미가 상다리가 휘게 차려져 있어도 김치가 빠지면 왠지 음식을 잘 먹었다는 생각이 안들 정도다. 심지어 냉수에 찬밥을 말아 김치 한 가지 만으로도 밥 한 그릇 뚝딱 먹을 수 있다면 필자만의 입맛은 아닐 것이다. 

 이렇듯 필자뿐만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김치를 선호 한다. 다 아다시피 김치는 한국의 고유 식품이다. 이런 고유 음식도 이젠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민족 근본根本을 잃은 듯하여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왠지 은근히 자존심이 상한다.

 불과 십 수 년 전만 하여도 식당 앞엔 배추가 수북이 쌓여 있곤 했었다. 그리곤 머리에 흰 수건을 쓴 아낙네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배추를 다듬고 소금에 절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요즘은 어떤가. 언제부터인가 이런 모습을 식당 어디에서도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다. 

 하지만 며칠 전 세 딸들과 재래시장엘 들렸다가 모처럼 국산 김치를 맛볼 수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시장기를 느껴 딸들과 시장 안에 위치한 허름한 국밥집을 찾았다. 그곳에서 수구레 국밥을 시켰을 때다. 식당 아주머니는 맛깔스럽게 담근 깍두기를 비롯하여 동치미 그리고 배추김치를 식탁 가득 차려낸다.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워 깍두기를 한입 베어 먹어보니 어린 시절 어머니 손맛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그곳에 차려진 다른 김치들 맛도 일품이었다. 

 비록 재래시장 안에 위치한 식당이었지만 번듯한 시설을 갖춘 여느 식당보다 음식 맛이 무척 정갈했다. 이는 아마도 식당 아주머니의 정성이 깃든 김치 맛 덕분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아무리 음식이 맛있기로 소문난 식당도 수입산 김치가 반찬으로 나온다면 제 맛을 잃을 듯하다. 

 사실 현대는 고착固着된 삶을 거부한다. 이는 하루가 다르게 유동하며 변화하고 있어서 일게다. 눈만 뜨면 어제의 사물이 오늘은 또 다른 형태로 우리 눈앞에 나타나기 일쑤다. 현기증이 날만큼 급속도로 발전하는 세태다. 가치관은 물론, 생활상도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그 나라의 문화와 풍습을 대변 한다고 할 수 있는 음식도 시대에 따라 본질이 변형되었다. 바쁜 현대인들의 삶에 맞춰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즉석 음식, 가공 식품들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게 이를 방증한다.

 요즘은 반찬 가게에서 국 및 찌개류 등도 판매하여 굳이 집에서 힘들게 요리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아니던가. 잔손이 많이 가는 한식의 특성 때문일까. 김치는 물론이려니와 온갖 밑반찬이 보기에도 맛깔스럽게 포장돼 마트 판매대에 진열되곤 한다. 심지어 나물류 및 생선 조림까지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 같은 경우 장을 보아 직접 음식을 요리한다. 여름이면 열무김치를 담그고 겨울 김장철엔 김치를 담근다. 이때 총각김치, 동치미, 깍두기, 고들빼기김치, 깻잎 김치 등 갖가지 김치들을 담그곤 한다. 김장을 할 때마다 어린 날 집집마다 김장을 담그던 모습도 떠올려본다. 김장도 한 해 겨울 양식으로 여겼던 시절이어서 인가. 

 요즘은 절임 배추도 상품화 돼 편리하다. 하지만 그 당시엔 상당히 많은 량의 배추를 구입하곤 했다. 보통 한 가정에 100포기 정도 배추를 다듬고 소금에 절이고 씻곤 하였다. 이 일은 주부에겐 참으로 번거롭고 버거운 일이었다. 이런 수고를 덜어주기 위하여 이웃끼리 서로 품앗이를 하는 훈훈한 정도 실천했었다. 

  ⟪조선 견문⟫을 살펴보면 우리 고유 음식인 김치가 무려 1백 40가지나 된다고 한다. 평소 이 숫자의 김치를 다 담글 수는 없다. 하지만 필자 같은 경우 위에 열거한 김치들은 해마다 빼놓지 않고 담근다. 이는 전통 음식인 한식韓食이야말로 건강식이라는 생각이 지배적 이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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