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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식 Oct 04. 2023

김을 구우며


                                    


  들기름을 김 마다 충분히 발랐다. 그리곤 적당히 소금을 뿌려  김을 석쇠에 넣고 불에 구웠다. 이때 화기 조절을 잘해야 한다. 김의 특성상 너무 센 불에 가까이 석쇠를 대면 금세 타버린다. 하여 김이 파릇한 색깔을 잃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에서 바삭 할만큼만 김을 굽는다. 

  김을 굽다말고 문득 인간관계를 떠올려본다. 너무 가깝거나 혹은 거리감을 두어도 안되는 게 사람과 사람 사이인 듯하다. 상대방의 그림자가 되면 자칫 집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어디 이뿐인가. 사소한 일에도 서운해 하고 상처 입는 일은 다름 아닌 친숙한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발로가 아니던가. 이는 어찌 보면 이기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상대방에게 베푼 만큼 자신도 되받아내야 한다는 계산이 이런 감정에 사로잡히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긴 인간관계도 상대적인 게 사실이다. 삶을 살며 난관에 봉착 할 때 상대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이 때 평소 자신이 상대방한테 베푼 만큼 그에 상응하는 마음과 관심을 보여야 서운한 감정이 덜 할 것이다. 하지만 타인에게 베푼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어느 명언처럼 저울로 단 듯이 상대방으로부터 그 대가를 온전히 받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만은 않다. 그렇다하여 거리를 두면 별다른 친분을 쌓을 수가 없다. 그래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말이 나오나보다. 

 사실 불도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화상을 입기 마련 아니던가. 적당한 거리에서 불을 쬐어야 안전하다. 이로보아 과유불급過猶不及이야말로 삶 속에서 경계해야 할 일인 듯하다. 그럼에도 천성은 못 고친다고 했던가. 매사 단순 사고에 길들여진 탓인지 쉽사리 타인을 내 마음처럼 믿는 면이 있다. 어디 이뿐인가. 남이 어려운 부탁을 해오면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한다. 최선을 다하여 타인 일에 소매를 걷곤 한다. 남의 일도 내일처럼 정성을 다하여 돌봐주느라 정작 내 자신 일은 소홀하기 일쑤다.

 요즘처럼 각박하고 삭막한 세태가 아니더라도 수신修身도 제대로 못하면서 타인을 돌아본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니던가. 이런 필자를 두고 혹자는 신의가 깊다는 등 여자라도 의리가 있다는 말로 칭찬을 일삼지만 일각에서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도 한다. 무슨 대가를 바라고 친절과 배려를 베푸는 줄 아는 게 그것이다. 이럴 때마다 중용을 지키려 애쓰지만 선천적인 성향은 쉽사리 저버리지 못한다.

 어린 날 어머니는 일산화탄소에 코를 돌리면서도 연탄 불 위에서 김을 굽곤 했다. 이 때 어머니가 구워 주는 김 맛을 요즘도 잊을 수 없다. 어머닌 김 한 장 어디에도 불길에 의하여 태운 곳 없이 입안에 넣으면 ‘사르르’ 녹을 만치 맛나게 잘 구웠다. 더구나 그 시절엔 김구이는 평소엔 자주 먹을 수 없어서인가. 그 맛이 일품이었다.

 어머닌 성품이 매우 온화한 분이다. 지난날 어머니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왜? 나는 어머니처럼 삶을 살지 못할까?’ 라는 반성이 앞서곤 한다. 초등학교 6학 년 때 일이다. 손아래 남동생이 두 살이나 위인 사내아이한테 아무런 잘못 없이 폭행을 당했다. 이를 본 나는 분한 마음에 골목에서 놀고 있는 그 애를 만나 느닷없이 뺨을 때렸다. 그러자 이를 먼발치서 본 그 아이 누이가 달려와서 나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싸움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한 걸음에 달려와 내게 먼저 그 아이와 누나한테 사과하라고 타이른다. 

 아무리 동생이 매를 맞아 분하기로서니 한 살이라도 더 먹은 내가 먼저 손찌검을 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이다. 어머니의 말씀이 끝나자 갑자기 사내아이가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더니,“ 아주머니 말씀을 듣고 보니 가장 잘못 한 것은 저였어요. 저 역시 두 살이나 나이가 많으면서 아드님을 때렸어요.” 라고 한다.

 이렇듯 어머니는 어떤 경우라도 타인의 잘못을 따지기보다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교육을 우리에게 시켰다. 어디 이뿐인가. 아버지의 잦은 바람기로 졸지에 살던 집마저 잃고 서울 중량천 뚝 위에서 잠시 살 때 일이다. 당시 하루가 멀다않고 판잣집 철거반들이 들이닥쳐 우리 집을 부수어댔다. 이때 철거반 중에 젊은 청년이 망치를 휘두르다가 손가락을 다쳤다. 그러자 어머닌 서둘러 붕대로 감아주고 소독을 하는 둥 치료를 서둘렀다. 이에 고마움을 느낀 철거반들은 우리 집만 한 달 간 여유를 주겠다하며 떠났다. 

 이런 어머니를 보며 아무리 해를 끼치는 사람도 용서와 자비로 감싸주는 덕목을 배웠다. 그러나 현대는 이런 인간다운 면모가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처세로 비치기 십상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편법으로라도 남의 밥그릇을 빼앗곤 한다. 이런 자만이 승리자이고 오히려 법과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 손해 보는 세상이라는 인식이 은연중 난무하는 세태 아닌가.

 그러고 보니 김을 구울 때만 불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아니었다. 나이들 수록 혼탁한 세상사를 멀리하고 매사 중용을 지키는 삶에 충실해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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