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에는 유독 숫자 ‘3’을 좋아했다. 굳이 이유를 꼽는다면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3’자를 선호해서이다. 그래서인가. 이규태의 글 「한국인의 길수吉數」를 살펴보면 3·1운동을 3월에 잡은 것도 의미심장한 의미가 담긴 듯하다. 당시 민족 대표를 33인으로 채운 것도 옛날 과거에 33, 36수로 급제 시킨 것도 앞날의 번창이나 영화를 비는 뜻이었단다.
어디 이뿐인가.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복중伏中 음식으로 삼계탕을 끓일 때도 인삼뿌리, 대추, 밤 등으로 1,3,5,7 홀수의 재료를 넣어야 보신이 된다는 징크스를 신봉해 왔단다. 이게 아니어도 한국인은 오랜 세월부터 유독 3자를 좋아했나보다. 우리 민족이 유난히 3자를 선호하는 것은 아기의 출생일과도 연관 깊다. 음력 정월에 태어난 아기는 훗날 부귀와 영화를 누린다는 믿음도 이 3자와 관련이 있어서다.
숫자 ‘3’은 천天· 지地 ·인人 하는 우주의 기본 구조란다. 이는 음陰· 양陽 ·합合 하는 헤겔의 변증법과도 통하잖은가. 이규태는 자신의 글에서 민족에 따라 좋아하는 길수가 다르다고 했다. 기독교 문화권이 좋아하는 숫자는 ‘7’이란다. 일본은 ‘8’수를 좋아하고 한국 사람은 ‘4’수를 싫어한다고 했다. 반면 유태인을 비롯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4’수를 좋아한단다. 필자의 경우 짝수들은 채워진 숫자라는 생각이다. 그래 홀수들은 단 하나라도 채워야 하는 빈 구석이 있어서 유독 ‘3’자를 좋아한다면 지나치려나. 이런 생각에 의해서인지 사람도 너무 완벽하면 적잖이 불편하다. 무엇보다 필자부터가 아직은 미숙해서이다. 나이들 수록 성숙해야 하는데 때론 매사 섣부르기 예사다. 어디 이뿐인가. 감동에도 둔감해졌다.
그나마 가슴 설렐 일은 봄 날 꽃들을 대할 때이다. 작년 봄 일이다. 집 앞 호수 둘레 길에 벚꽃이 만발한 어느 봄날이었다. 호수 둘레 길에 흡사 팝콘처럼 피어난 벚꽃송이에 매혹돼 잠시 벚나무 앞에 걸음을 멈췄다. 벚나무 아래서 눈 멀미를 일으키도록 황홀한 벚꽃 향연에 한껏 도취 하노라니 나도 모르게 봄 처녀가 된 기분이었다.
이런 감흥에 젖을 무렵, 저만치 벚꽃 나무아래 서 있는 어느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 나무를 우러러 보는 할머니 모습이 몹시 처연해 보여서다. 피어난 꽃이 제 무게를 감당 못한 듯 땅 아래로 축 늘어진 벚꽃나무다. 이 나뭇가지를 만지작거리던 할머닌 급기야는 갑자기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친다.
그런 할머니 모습이 의아하여 멀뚱히 바라볼 때다. 할머닌 힘없는 걸음걸이로 비척이며 필자 곁으로 다가와 대뜸 말을 걸어온다. “ 내일은 비가 내린다는 일기 예보가 있는데 그러면 벚꽃도 이내 지겠지요?” 라는 할머니 말에, “ 지금도 바람결에 꽃잎이 지는데 내일 비가 내린다면 이곳 벚꽃도 모조리 질 듯합니다.” 라고 답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뜬금없이 자신은 사계절 중 3월이 가장 싫다고 한다. 그 말에 의아해 하자 할머닌 3월, 벚꽃이 만개할 즈음이면 자신의 아들이 생각나서란다. 지난날 남편이 오랜 병석에 누워있었다고 했다. 이 때 할머니 아들은 대학 입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할머닌 남의 집 파출부 일을 하며 번 돈으론 남편 병원비 대기에도 벅찼다고 했다. 병원비가 하루가 다르게 눈덩이처럼 불어나 턱없이 부족한 상태라 아들 대학 입학금을 대줄 수 없게 됐단다. 이에 좌절한 아들은 어느 날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릴 때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할머닌 당시에 자신 수중에 아들 입학금을 치를만한 돈은 모아둔 게 있었단다. 그러나 남편부터 살려야 했기에 그 돈을 차마 아들 입학금 하라고 선뜻 내 줄 수 없었다고 하였다.
이 말을 하면서 할머닌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렇듯 꽃피고 새 우는 3월이 오면 앞날이 창창한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자신의 잘못 같아서 더욱 비통하다고 했다. 또한 아들에게 대학 입학금이 있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친 것이 못내 한으로 남는다고 하였다. 아들이 세상을 뜬 후 남편도 한 달 여 후 눈을 감았다고 한다.
해마다 3월이 돌아오면 세상 떠난 아들 생각에 눈시울이 젖고, 지난날 적빈赤貧이 안겨준 삶의 고통이 떠올라 가슴이 못내 저리다고 했다. 할머니 말을 듣고 난 후, 평소 숫자 ‘3’를 좋아한 게 왠지 죄스럽게 느껴졌다. 한편 물질로 말미암아 한창 꿈을 가꿀 청년의 삶이 송두리째 뿌리가 뽑힌 게 안타깝기도 했다. 대학 입학금만 마련됐어도 할머니 아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돈으로 말미암아 받는 인생의 패배감과 절망감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른다. 오죽하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만이 인생을 논할 자격이 있다’라고 했을까.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들으며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반면 가난은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고 운명도 좌지우지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머잖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것이다. 그러면 작년에 할머니를 만났던 그 벚나무를 다시금 찾아 갈까 한다. 그 나무 아래서 벚나무에 피어난 아름다운 벚꽃처럼 할머니의 여생에도 행복한 일들만 한껏 꽃피우길 진심으로 기원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