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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식 Oct 09. 2023

환락의 늪

 여인의 미는 시대 따라 그 기준이 다른가보다. 절세미인이라 칭송 받는 양귀비가 살던 그 시대엔 요즘과 달리 풍만한 육체미를 지닌 여인을 미인으로 여긴 듯해서다. 이런 면에서 현대에 비쳐볼 땐 양귀비는 미인 기준에서 벗어나잖은가. 요즘은 그야말로 s라인을 자랑하는 날씬한 여성을 미인으로 여기잖는가. 이게 아니어도 양귀비에 대한 절세미인이란 찬사에 의문이 생긴다. 양귀비가 살았던 당대 어느 문헌을 뒤져봐도 그녀가 빼어난 미인이란 표현은 한군데도 없어서다. 정사正史인 ⟪구당서舊唐書⟫만 살펴봐도 양귀비 용모가 풍염豐艶하다고만 적혀 있을 뿐이다. 이로보아 양귀비가 그야말로 절세미인이었을지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서양 미인하면 클레오파트라를 떠올리고 동양 미인으론 양귀비를 손꼽곤 한다. 어디 이뿐이랴. 심지어 양귀비는 자신이 지닌 미모에 대한 후광을 훗날 한낱 식물에게도 바쳤잖은가. 꽃이 요염하다 못하여 화려한 양귀비꽃이다. 꽃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황홀경이면 중국 당나라 현종 넋을 송두리째 빼앗은 미인 양귀비에게 빗대었을까. 그래 그 이름을 따온 게 양귀비꽃이다. 50㎝~150㎝까지 자라는 이 꽃은 열매 하나에 무려 4000개가 넘는 깨알 같은 작은 씨앗을 품고 있다. 수많은 이 씨앗이 만약 지구에 뿌려진다면 무려 5년이면 양귀비로 전 세계를 뒤덮을 수 있다고 한다.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양귀비꽃이다. 전 세계에 250여 종이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언젠가 경남 함양읍 들녘에서 치러진 양귀비꽃 잔치 소식을 텔레비전 영상을 통하여 접한 적 있다. 노란빛, 핑크빛, 진홍빛의 형형색색 양귀비꽃이 너른 들판을 물들이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양귀비꽃 잔치인 ‘함양 플로리아 페스티벌’이 그것이었다. 이때 아이슬란드, 영국, 캘리포니아 산 양귀비들이 6월 햇살을 받아 화려하게 피어났다. 이것을 보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숨이 턱 막힐 듯 했다. 한편 앵속 ·약담배·아편의 원료가 양귀비꽃이란 생각이 들자 갑자기 이 꽃이 지닌 아름다움마저도 매우 치명적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여물지 않은 양귀비 열매에 상처를 내면 우윳빛 액즙이 나온다. 이를 60도 온도에서 건조 시킨 게 아편이다. 이것이 공기에 노출되면 산화돼 검은색으로 변하고 맛은 쓰고 냄새도 난다. 양귀비 최고 재배지로는 아프가니스탄이다. 이 나라는 무려 19만ha에 이르는 양귀비 재배 면적을 지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세계 생산량의 90%인 8,200t의 아편을 생산, 이 량은 한 해 1,000만 명을 중독 시킬 수 있는 위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함양에서 꽃 잔치를 벌인 양귀비는 관상용으로서 꽃봉오리에 잔털이 나있다. 이 특징이 마약 성분이 함유된 양귀비와 변별력을 갖춘 셈이다. 마약 성분을 지닌 양귀비 종류로는 ‘파파베르 솜니 페룸L, 파파베르 세티게름DC’ 이 두 종류이다. 이 두 종류의 양귀비꽃이 실은 마약의 몸통 아닌가. 이 생각에 이르자 볼수록 현란한 아름다운 양귀비꽃이 마약 주성분을 지녔다는 게 좀체 믿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지닌 독성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편에 중독돼 삶을 나락으로 몰아갔던가. 마약은 한 개인적인 삶만 피폐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마약에 중독되면 온갖 범죄에도 연루돼 사회 안전판을 위협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학원가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마약이 든 음료수를 건네주고 그것을 빌미로 학부형을 협박한 일당들이 있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인터넷 등에서 불법으로 마약이 거래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며칠 전엔 태국에서 건강 식품으로 위장해 국제 우편으로 마약 종류인 ‘야바’를 보낸 일당이 검거되기도 했잖은가.     


 요즘 어려워진 경제, 고물가 등으로 날이 갈수록 서민들 삶이 버겁다. 만에 하나라도 그렇다고 하여 삶이 안겨주는 고통을 마약 힘을 빌어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안 될 일이다. 마약을 이용해서 잠시라도 환락歡樂을 느끼는 순간부터 불행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어서다. 아마도 이런 나약한 인간 심성을 노리는 게 마약이 품은 함정일지도 모른다. 그리스 신화만 해도 그렇다. 수확 여신인 데메테르가 저승 지배자 하데스에게 빼앗긴 딸 페르세포네를 찾아 헤매다가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양귀비를 진정제로 썼다고 하잖은가. 신마저 마약 힘을 빌릴 정도니 이것이 지닌 엄청난 환각성을 미뤄 짐작할만하다. 조선 시대에 펴낸 『향악집성방』을 살펴보면 겨자·우엉과 함께 가정에서 약재로 양귀비를 재배했다고 나온다. 마약 성분을 이용해 복통, 기관지염, 불면증 등에 치료제로 썼단다.     


 건강하고 건전한 삶, 밝은 사회를 이루기 위하여 양귀비꽃의 아름다움에만 현혹당하는 지혜로운 심미안審美眼이 절실한 요즘 세태다. 양귀비꽃이 지닌 아름다운 자태가 유혹하는 6월이기에 써 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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