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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식 Oct 09. 2023

헤어질 결심

 영화 '인디애나 존스' 모델인 고고학자 조지 C 베일런트다. 베일런트 아버지는 그가 열 살 때 권총 자살을 했다. 그런 아버지 죽음에 의한 영향 탓인지 그는 행복하게 늙어가는 요소를 강조 했다.     

 그 첫째가 고통에 적응하는 자세를 꼽았다. 갈등과 과오를 부정하지 말고 '승화'와 '유머'로 방어 및 극복하라고 했다. 나머지 6가지 중에는 교육, 안정된 결혼 생활, 금연, 금주, 운동, 적당한 몸무게를 꼽았다.     

이즈막 조지 C 베일런트 언술을 떠올리는 것은 뉴스 일부가 복수에 관한 내용이어서이다. 언제부터인가 보복 운전이 사회 이슈가 되기도 했다. 얼마 전엔 층간 소음을 못 견뎌 위층 주민을 흉기로 위협한 남성이 법의 심판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최근엔 편의점에서 비닐 봉투를 안준다고 행패를 부린 이가 벌인 복수극이 텔레비전 뉴스로 전해졌다. 그 남성은 몇 달 전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며 그곳 주인이 이것을 안준다고 난동을 부렸나보다. 이를 편의점 주인이 경찰에 신고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가게로 차량을 몰아 돌진했다.          

심지어 복수라는 주제어는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단골로 등장한다. 철저한 복수를 위해 원수 집안에 며느리가 되는 내용을 비롯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학생이 자라서 벌이는 복수는 많은 것을 생각 하게 하고도 남음 있다. 복수, 치정, 불륜 등을 다룬 내용물은 자극적이어서 세인에 관심사가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나 영화가 대중화 된다면 은연중 학습이 될 듯한 우려마저 앞선다. 안 그래도 코로나19 창궐 이후 어려워진 경제, 눈만 뜨면 정치인들 비리 와 갈등 소식 등으로 삶이 팍팍해지고 가슴이 무미건조해지는 이즈음 아닌가.          


 세상을 사노라면 억울한 일, 속상한 일이 어찌 없으랴. 이럴 때 마음 상한 것을 인내 한다는 것은 웬만한 내공 없인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 탓인가 보다. 필자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젊은 날 속했던 단체에서 필자에게 심한 갑질 행위를 하던 어느 여인에 대한 증오심도 이젠 다소 희석된 듯하다. 이로보아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평생 아물지 못하고 가슴에 화인(火印)으로 남는가 보다.          


 필자와 친분이 있는 지인이다. 그녀는 얼마 전 십 수 년 넘게 우정을 나누던 친구와 이별을 맞았단다. 그녀는 자신에 친구로부터 온갖 터무니없는 말로 모함, 음해에 맞서면서 잡초 근성으로 버텼다고 한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에 빙하가 흐르는 느낌이란다. 타인에게 평소 말 한마디라도 실수 하지 않고 해코지 안하는 성품인 선한 그녀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토록 신뢰해온 친구에게 자신의 진실을 기만당했다며 억울해 한다.          


 이런 불편한 심경을 토로하는 지인은 그녀 친구가 지닌 이중성과 표리부동함에 심히 마음을 다쳤다면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로 인해 정신적 고통 때문에 밤잠까지 설친다고 하소연 한다. 그 이후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꺼려진다며 대인 기피증까지 보여 온 그녀다.          

얼마 후 그녀를 만났다. 전보다 한결 밝은 표정인 그녀를 보자 덩달아 필자 마음마저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요즘 그동안 요동치던 마음이 가라앉았단다. 사연을 들어보니 이유를 알만 하다. 돌이켜보니 지난날 그녀와 갈등이 있던 친구가 실은 그 미움조차도 아까운 인품을 지닌 여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왜? 그토록 증오심에 몸을 떨었는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심지어 그녀는 가슴 속에 깊게 드리워진 친구의 미운 그림자와 과감히 헤어질 결심을 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세상사에서 본의 아니게 타인으로부터 받는 고통이 어찌 그녀뿐이겠는가. 믿었던 사람, 사랑했던 상대방으로부터 받는 배신 및 실연은 때론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슬픔과 충격을 안겨주기도 한다. 더구나 이해타산에 얽혀 득(得)과 실(失) 앞에서 등을 돌리고 손을 내밀기도 하는 게 인간사 아니던가. 이 때 믿었던 사람이 신의를 저버릴 때만큼은 누구나 배신감에 치를 떠는 게 인지상정이다. 급기야는 앙갚음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잖은가. 한 발 물러서서 '용서'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그토록 마그마처럼 들끓던 분노도, 미움도 희석될지 모를 일이다.          


 나이들 수록 마음의 평화가 필요하다. 타인을 미워하노라면 우선 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 필자도 때론 이런 마음이 들 때는 조지 C 베일런트의 언명을 새삼 되새겨 보곤 한다. 행복한 노년에 삶을 꾸리기 위해선 타인이 저지른 잘못도 눈감아 줄줄 아는 아량이 필요할 듯해서다. 인간 감정 중에서 용서만큼 아름다운 마음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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