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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샘 May 31. 2020

남편의 김치

콩쥐 콤플렉스

 남편은 반찬이 없다고 하지 않고 김치가 없다고 했다.

 과자나 빵으로 장바구니를 채워오면 왜 김치거리는 없냐고 물었다. 무생채, 콩나물 무침은 물론이고 각종 볶음과 나물 무침도 남편에게는 김치의 한 종류였다. 그러면 내 해석은 손 많이 가고 시간 걸리고 번거로운 음식이 김치인가 싶어 삐딱해진다. 스스로 해먹을 능력도 의지도 없는 사람이 자꾸 김치를 찾으니 참 얄미운 일이다. 더 얄미운 것은 언제부터인가 내가 남편의 혀 눈치를 보고 있더라는 것이다.

 눈치가 보이면 나는 오이를 준비한다.

갑자기 밥을 차려야 하면 고추장에 고춧가루, 깨, 매실청을 넣고 슥슥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그리고 오이를 어슷어슷 썰어서 무치면 끝이다. 오이에서 나오는 청량한 수분에 달달한 양념이 더해지면 남편의 젓가락이 부지런해진다. 다 먹은 밥그릇을 내밀며 한 숟가락만 더 달라고 할 때는 이미 오이  무침을 다 먹은 후다. 더 받아 든 밥 한 숟가락으로 오이 무침 양념을 설거지하면 흡족한 남편의 한 끼가 끝난다.


 하지만 오이가 싸지면 오이를 절여서 요리한다. 길쭉한 오이를 가로로 세 등분, 다시 세로로 네 등분한다. 손가락 크기의 큼직한 크기여야 저장하는 내내 적당한 수분감도 씹는 재미도 준다. 절여 놓은 오이에 고춧가루, 깨, 설탕을 넣는다. 양파, 파, 마늘, 부추 등은 선택사항이다. 한두 가지 정도 있는 대로 넣으면 족하다. 중요한 것은 젓갈이다.

 김장을 가면 어머니께 멸치젓을 얻어온다. 어머니께서 직접 만드신다는 멸치젓은 가히 충격적이다. 진흙에 물을 타 놓은 것 같은 걸쭉한 액체에 굵직굵직한 멸치가 뼈째 가라앉아있다. 맛이 상상이 안 되는 양념이라 결혼하고도 십 년 넘게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 남편의 성화가 아니었으면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모험이다.

 그런데 이게 참 신기했다. 냄새도 색깔도 예사롭지 않은 양념이 무쳐놓으면 향긋했다. 숙성되었는데 오래되어 쾨쾨하지 않고 깊고 향긋하니 입 안이 개운하다. 깨물면 흘러나오는 오이즙까지 한 몫해서 든든한 반찬이 되어준다.

 밥 잘 먹는 아들 보듯 뿌듯하게 남편이 밥 먹는 것을 보다가 또 얄미워진다. 요것 봐라. 내가 길이 들었구나. 착하지도 않은데 콩쥐 흉내라니. 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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