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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냐 May 07. 2021

나는 비혼모의 언니입니다

그리고 조카의 이모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부모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학교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나는 무언가 심각한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귀가했을 때, 자그마한 거실에는 동생, 엄마, 아빠가 형언키 어려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동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려운 과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동생은 과정이 어떠했던 제 배에 품은 아이를 낳고 싶다고 했다. 내게는 무엇이 무엇인지 구분도 잘 가지 않는 초음파 사진을 한 장 들고서는 굳건하게 자신의 의지를 말했다.


 언젠가도 썼듯이 원치 않는 임신이었다. 아빠는 사회적인 문제를 고려해 결혼과 출산 둘 중의 하나만 선택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나는 일하던 직장에 앉아서 주위가 빌 때마다 멍하니 모니터를 보며 울음을 삼켰다. 동생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었던 내가 동생을 보호하지 못했다. 그 점이 너무나도 마음을 찔렀다. 하지만 후회와 별개로 헤쳐 나가야 할 현실 또한 눈 앞에 있었다. 사정이 어찌 되었든 동생의 선택이 그러하다면 나는 지지하고 보호하고 싶었다. 축복해주고도 싶었다.


 '그런 아빠'가 아이의 양육자가 될 것이라면 차라리 '아빠'라는 존재도 '남편'이라는 존재도 동생과 뱃속의 생명에게 없는 것이 나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게는 그런 확신이 있었다. 아이가 자라면 그 사람은 아이를, 동생을 상처주고 때리고 괴롭힐 것이다. 도망가려고 해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끝이 보였다. 그래서 굳게 마음 먹었다.


그 때까지 '아이'라는 존재라든가 '출산'이라는 여정이 긴 사건에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태어나 함께 살아갈 아이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감히, 먼저 태어난 사람으로서. 아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생의 편을 들었다. '아빠'라는 역할을 우리 나머지 가족들이 채워주자고 했다. 동생이 동의했다. 그럼으로써 동생은 미未혼모가 아니라 비非혼모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고, 나는 그 선택을 지지하는 사람이 되었다. 


 과정에서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가 하고 돌아다닌 짓에 비해 황송하게도 나는 인복이 많았다. 지도 교수님은 그런 상황까지도 감내하고 말을 나누어 주셨고, 함께 사사받던 동료는 전에 일하던 곳과 경험을 말씀해주시며 내게 이것 저것을 챙겨 주었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여러 기관, 단체, 방법, 사람을 알려주었다. 단발성이 아니었다. 가난해서 쌀 떨어질 것을 걱정했던, 임산부 먹일 것을 걱정해야 했던 시절 종이 가방에 곱게 접혀 들어 있던 아기용 속싸개 한 장에 어찌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출산이 다가오기까지, 조카의 이름을 지어주기까지, 얼마나 모두 함께 기뻐해 주었는지 사무치게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의 도움과 축복 속에 태어난 조카는 이제 제법 자라 나와 함께 이곳저곳을 누비고, 공부나 놀이를 함께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면서도, 아이는 아직까지 '아빠'라는 역할의 부존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타인에게는 '아빠'가 있고, 자기 자신에게 '아빠'가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일로 인한 엄마의 부재도 상실감으로 보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는 언제고 조카가 물어 오면 그것들을 설명하려고 마음 먹는다. 답변은 매 번 바뀌고 덧붙어 조각보처럼 알록달록해졌다. 그래도 중심 내용은 한결같다. 우리 가족은 타인의 가족과는 조금 다른 것뿐이라고. 한 번 더 마음 먹는다. 그 전에 조카가 그런 물음을 가질 필요도 없이 우리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도록 해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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