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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투바투 Sep 06. 2023

얘들아, 그건 슬퍼할 일이 아니야.

  유퀴즈에서 정신의학과 선생님께서 출연하셔서 하셨던 말이 생각난다. ‘극단적인 선택’은 스스로가 자살을 ‘선택’하였다는 잘못된 표현이라고. 우울증도 질환이므로 ‘선택’보다는 투병의 결과라고 하는 것이 바른 표현이라고 얘기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지금 투병 중이다. 감기도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아서 제때 챙겨 먹듯이 우울증도 병원에 가서 진단받고 약을 처방받아서 나아지길 바라며 꾸준히 먹고 있다. 다만 종종 자제하기 힘든 ‘충동’이 문제인데, 이 충동이 들면 괜찮아 보이던 사람도 10분 안에 죽을 결심을 끝내고 실행에 옮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한다. 나는 석 달에 한 번, 짧게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찾아온다. 그래서 항상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 충동이 들 때마다 나는 몸에 멍을 내는 충격으로 자제했었고 좀 진정이 된 후에는 멍을 보며 오늘도 잘 견뎌내었다고 안심했다가 한편으로는 불쌍해지고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며칠 전 동창 친구들이 서울에 놀러 왔을 때 늦은 밤에 서로의 진솔한 이야기를 하면서 처음으로 나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는 할 만큼 했다고. 그동안 무던히도 견뎌냈고 그런 마음이 든 것에 대한 사죄로 누구보다도 보람차게 열심히 살았다고. 그러니 만약 내가 그런 충동에 못 이겨 결국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너희들은 슬퍼하지 말아 달라고. 그동안 사는 게 힘들었으니, 이제는 행복해지려고 갔나보다 하고 축하해달라고.     


  추억으로만 남는 사람이 되는 것은 꼭 슬픈 것만은 아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님의 말씀을 빌려, 죽음은 아주 소멸하는 것이 아닌 원자 상태로 우리의 곁에 영원히 머물러 있다고 하신 적이 있다.     


  사라져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나는 앞으로도 그런 충동에 지지 않을 것이지만 혹여나 정말 혹여나 내가 만약 그 충동에 진다면 그때는 원자로 너희 곁에 영원히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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