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소설 <착한 척하지 마, 오삼남 1권 - 1부, 2부> 연재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전 연재를 먼저 읽고 오시면 이해에 도움이 되실 거예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실제와 무관하게 재구성된 허구이며,
특정 개인이나 기관을 지칭하거나 묘사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
삼남이 삶의 타석에 다시 들어서기로 다짐한 후로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건 쉽지 않았다.
자신을 지지해 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아닌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마음의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이대로는 영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용기를 내어 처음 신청한 도서관 강의,
갈까 말까 몇 번이고 망설이다
겨우 발을 들였다.
작은 강의실.
독서 동아리 강의 첫 모임이었다.
책상이 네모 반듯하게 놓이고, 사람들 얼굴이 둥글게 모였다.
“오늘은 그림책 깊이 읽기를 해보겠습니다.”
강사는 자신감이 찬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그림책은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어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죠.”
삼남은 별 기대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림책 깊이 읽기 방법을 설명한 후,
실습 시간이 주어졌다.
<당신을 측정해 드립니다>
고양이 얼굴이 여러 개.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림책을 펼친 순간, 조용히, 뭔가 마음이 쿡 찔렸다.
고양이들은 태어나자마자 키, 몸무게, 꼬리 길이, 두개골, 유전자, 집중력…
모든 것이 측정당하고 있었다.
심지어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힘까지도 평가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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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24 책 소개내용 중 카드 뉴스 캡처 -
조원이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삼남은 자꾸만 가슴을 움켜쥐었다.
사다리를 오르다 미끄러져 떨어진 고양이.
그 고양이의 절룩거림이, 자신 같았다.
“이건 내 얘기야…”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릴 적부터 삼남은 착한 아이여야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누구보다 성실하게.
그게 존재의 조건이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좋은 교사, 인정받는 교사, 모범이 되는 교사.
그렇게 자신을 끊임없이 측정했다.
엄격한 감시자처럼.
채근하고, 자책하고, 결국엔 모든 걸 태우다 무너졌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
‘혹시 불편하고 기분 나쁜 측정이 있었나요?
지나친 측정은 삶의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눈앞이 흐려졌다.
조원들이 한 마디씩 감상을 나눴지만,
삼남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 대신, 마음이 조용히 움직였다.
‘내가 나를 가장 아프게 측정하고 있었구나.’
‘나에게 언제쯤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림책 속 고양이 한 마리가 따라왔다.
눈빛이 초점을 잃은 채, 측정당하던 고양이.
그리고 문득 떠올랐다.
삼남의 반 아이 하나가,
시험에서 95점을 맞고 말없이 울던 날.
“왜 울어?”
“엄마가… 100점 맞아야 된댔는데... 100점 아니면 아무 소용없댔는데...”
그때 삼남은 말했었다.
“95점도 엄청 잘한 거야. 그리고 넌 숫자로 정해지는 존재가 아니야.”
그 말이, 오늘은 자신에게 돌아왔다.
삼남아, 넌 다른 사람의 인정으로 정해지는 존재가 아니야.
사다리에 오르지 못했다고 네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지 않아.
그냥 그 자체로 넌 소중한 사람이야.
그날 밤, 삼남은 긴 일기를 썼다.
오래도록, 자신을 탓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더 이상 사다리를 오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측정 없이도 존재하는 삶이 있다는 걸 믿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