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소설 <착한 척하지 마, 오삼남 1권 - 1부, 2부> 연재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전 연재를 먼저 읽고 오시면 이해에 도움이 되실 거예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실제와 무관하게 재구성된 허구이며,
특정 개인이나 기관을 지칭하거나 묘사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
독서모임 이후 삼남은 여행을 결심했다.
딸도, 엄마도, 교사도 아닌
그냥 ‘나’로 살아보기 위해.
결혼하고 처음이었다.
혼자 자는 것도,
혼자 밥을 먹는 것도.
가족과 자주 갔던 바닷가지만 이번엔 달랐다.
낯익은 바다, 낯선 침묵. 해변 앞 까페,
혼자 앉아 책을 읽고, 노트북을 펼쳤다.
누구의 눈치도, 누구의 기준도 없이
오롯이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물회집에 들어가 혼밥을 했다.
혼자 온 게 무색해 괜히 이어폰을 꼈지만
아무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혼밥도 잘하네. 나, 이제 혼밥도 할 수 있어.’
자신에게 주는 작은 칭찬.
그것은 비난의 화살이 자신을 찌를 때, 의사가 해준 처방이었다.
'아주 사소한 행동이라도 자신을 칭찬해 보세요.'
바닷가를 맨발로 걸었다.
모래는 뜨거웠고 파도는 시원했다.
하늘과 바다는 푸르고 넓고, 광활했다.
그 아래에 선 삼남은 작고, 외롭고, 사소했다.
나 하나 죽는다 해도, 지구상에 티끌 하나쯤이겠지.
삼남은 홀린 사람 마냥, 바닷속으로 미끄러지듯 걸어 들어갔다.
초록빛 푸른 바닷물이 가슴까지 차올랐다.
바다는 심드렁했다.
진짜 너 하나쯤 홀연히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듯이.
그러면서도, 따뜻했다.
삼남의 영혼을 조용히 토닥여 주는 것 같았다.
문득, 윤동주의 시 <둘 다>가 떠올랐다.
바다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고
바다에 돌 던지고
하늘에 침 뱉고
바다는 벙글
하늘은 잠잠
상처투성이 삼남을
바다는 벙글, 하늘은 잠잠히 품었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전의 눈물과는 다른,
터져버릴 듯한 답답함과 억울함이 아닌
먹먹하고, 따뜻한 포옹 같은 눈물...
“그래, 나 여기 있어.
상처투성이 피냄새나는 초라한 내가
여기 아직, 살아 있어.”
끝없이 펼쳐진 푸르고 깊은 바다 앞에서 삼남은
내 힘으로 파도 한 뼘 거스르기 어려운
초라하고 부끄러운 ‘나’를 마주했다.
인정받기 위해 애썼던 세월.
가난한 시골 과부의 셋째 딸로 살며
늘 방긋방긋 웃어야 했던 나.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애쓴 시간들.
좋은 교사, 딸, 엄마라는 이름 안에서
끝없이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평가하여
한정 없이 우월해지다, 끊임없이 낙담했던 나.
자신이 세워놓은 기준 안에서 채찍질하고,
자격 미달이라고 비난했던 나.
그 기준으로 남도 저울질하고 비웃던 나...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삼남은 지금,
대자연 앞에 서 있다.
햇살과 바람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크신 분.
그 절대자 앞에서 삼남은 비로소 자신을 본다.
모든 걸 내 힘으로 이룬 줄 알았다.
이 정도면 남과 비교해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 믿었다.
교사로서, 엄마로서, 딸로서도 잘했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대자연 앞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파도 한 번에 쓸려갈 수도 있는...
하지만, 그 바다와 하늘의 창조주는
그녀를 한없이 부드럽고 잔잔한 파도로
토닥여주고 있었다.
이제 갓 세상 밖에 나온 소중한 생명을 다루듯이.
비릿한 바다 특유의 짠내음이 코를 찔렀다.
오래 전, 고흐의 흔적을 찾아 떠난 프랑스 남부 여행,
고흐가 그린 '생 트 마리 해변'에서 맡았던
그 비릿한 바다 냄새가 떠올랐다.
그리고, 골목길을 거닐다 우연히 찾은 성당에서
들려오던 성가 합창 소리...
성당 밖까지 퍼져나가는 소년 성가대원들의 합창 소리는
가사를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청아하고도 애잔한 성가가
삼남의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같았던 그 때가 생각났다.
< 생트마리 드 라 메르의 바다 풍경 -고흐- >
그것은 마치 삼남의 어린 시절,
오후 6시면 울리던 시골 교회의 종소리를 들을 때와도 비슷했다.
붉은 노을이 첨탑의 십자가를 조용히 감싸고
골목길에서 술래잡기하던 아이들의 그림자가 길어질 때,
그 고요하면서도 은은한 종소리에
아이들은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 멜로디...
아무 것 하지 않아도, 그저 덤덤히 서서 노을을 바라보는
그녀의 영혼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멜로디...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상처 입은 몸뚱이를 바닷물에 담근 순간,
엄마 뱃속에 있는 것 같은 포근한
마음의 근원은...사랑이었다.
“삼남아, 네 모습 자체로 넌 존귀해.
아무도 너를 아프게 할 수 없어.”
“이 넓은 우주 속에 내가 너를 기억해,
넌 소중한 존재야. 그러니, 너 자신을 용납하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감사와 감격의 눈물,
있는 모습 그대로, 존재를 확인받는 희열의 눈물.
누구에게도 평가받지 않고, 어떠한 기준으로도 재단될 수 없는 나
그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나...
이 해변에서 그녀는 사랑을 마주했다.
사랑은 상처보다 크고 허물보다 넓고
실패보다 높았다.
삼남은 무수히 많은 상처만큼
무수히 많은 사랑을 받았다.
걸어온 모든 시간 속에 사랑이 있었다.
그녀 곁의 많은 이들을 통해
신은 그분의 사랑을 끊임없이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미워한 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나를 아프게 했던 이들.
이유 없이 내 편이 아니었던 이들.
그녀는 그들을 마음속으로 단죄했다.
부족한 사람들, 나쁜 사람들.
내가 힘든 건 저들 때문이라고 원망했다.
하지만 그들도 나처럼 허물 많은 인간이었다.
어쩌면 내가 괜찮은 얼굴을 했기에, 더 많이 요구했는지도 모른다.
나도 그들처럼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으리라.
무심히, 때론 몰라서, 때론 외면해서.....
바닷물이 목까지 올라왔다 파도와 함께 멀어진다.
마치 삼남의 허물과 상처를 씻어가는 것처럼.
여름성경학교 때 간식을 먹기 위해 외웠던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전서 4:8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마태복음 18:21-22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을 만큼 깊고
모든 아픔을 이겨낼 만큼 강한 것.
진정한 사랑 안에 머무른다면,
나도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겠구나.
그 사랑 안에서
그동안 상처 준 이들도 용서하며 나아갈 것이다.
나 자신마저도...
삼남은 다짐했다.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상처를 품고도 사랑할 것을.
상처를 받은 만큼 그 깊이를 이해할 수 있기에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살아갈 것을.
내게 흘러온 사랑을 다른 누군가에게 흘려보낼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