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6화. 엄마를 먹으며 자라는 중입니다.

by 마음리본

“효민아, 외할머니 밭 좀 도와주자. 일당 줄게.”

“얼마?”

“네가 여태 먹은 외할머니 김치값만큼?”

“그럼 한 천만 원은 받아야겠네.”

웃으며 대꾸하는 아들과, 순례의 텃밭으로 향한다.


귀와 목덜미를 감싼 분홍색 모자,

목에는 수건을 두르고,

십 년은 넘었을 낡은 티셔츠에

팥죽색 몸빼 바지를 입은 순례가 감자를 캐고 있다.


7월의 볕은 자비가 없다.

마른 장마의 습기까지 겹쳐 사우나 같은 공기가

텃밭을 덮고 있다.


“내 딸 왔냐?”

순례는 늘 그렇듯 반가움에 정을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효민이 데리고 왔어. 오늘 일꾼이야.”

“잉, 우리 효민이 왔능가?”

“할머니, 안녕하셨어요?”

효민이 얼굴에 반가움이 번졌다.


어릴 적 유치원 끝나면 외할머니가 돌봐주시던 시절이 떠오른 듯.

“외할머니 말투 오랜만에 듣네. 귀여워.”

효민이는 나지막이 웃었다.

외할머니가 귀엽다는 손자 마음은 무엇일까?



텃밭 옆 움막은 비닐로 덮여 있어, 안은 더 뜨거웠다.

옷을 갈아입는 도중에도 땀이 주르륵 흘렀다.

“엄청 덥네.”

“그지? 이 더위 속에 농사 짓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 줄 아니?”


사실, 삼남도 잘 모른다.

고구마캐기, 김장 정도?

1년에 한 두 번 경험했을 뿐이다.

양동이에 담긴 감자를 땀에 젖은 팔로 척척 옮기며

효민이는 기꺼이 일손이 되어 주었다.


"이게 끝이야? 하나도 안 힘든데."


그 말이 무색하게 순례의 부름은 끝이 없다.


“아야, 효민아! 아야, 이리 와 본나!”


“지주대 저거 새로 박아줘야쓴다잉!”


순례는 일 시키기 대장이었다.

칭찬과 잔소리를 섞으며 일감을 부렸다.


”아야, 힘이 존께, 겁나 잘 박네잉. 키워놓은 보람이 있구마이.“


”느그 엄마가 너를 을마나 이쁘게 키웠는지 아냐?

나도 느그 엄마 그라고 키웠어야.

할머니한테는 느그 엄마도 징하게 이쁜 딸이었어.

엄마한테 잘해라이.“


”너 일루 와봐봐.

이라고 해 놓으믄은 안 되는 거시여.

딱 정리를 해야제.

이라고 연장을 던져노믄 쓴다냐.“


”징하게 이쁘네. 연예인 해야 쓰것꼬만.

애기 때 옴싹옴싹하니 이뿌더니, 저라고 이뻐졌네이?“


”애기가 겁나 착하네. 할무니 잔소리도 암말 안 하고 듣고잉.“


효민이는 말없이 웃었다.

토 한번 달지 않고 할머니의 사랑 섞인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진짜 힘드네... 0팡 알바가 낫네."

마침내 엄마의 심부름이 끝났을 무렵,

효민은 구석에 앉아 숨을 돌렸다.

힘들지만 그 웃음엔 묘한 기쁨이 담겨 있었다.

할머니를 도왔다는 뿌듯함.


삼남은 효민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도 언젠간 세상에 치이고 바람을 맞고

폭풍우에 휩쓸릴 것이다.

그럴 때 엄마가 내게 그러했듯

아들의 지붕이 되어주고 싶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작은 움막 하나라도 되어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힘겨운 시간 끝에 아이도

자신만의 텃밭을 가꾸게 되기를.

비와 햇빛과 눈물과 땀으로

자신만의 진짜 밥상을 만들어가길...


엄마에게 이 밭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삶의 시였다.

삼남은 조용히 아들의 손을 잡았다.

“기억해 둬. 외할머니 밭에서 난 건,
그냥 채소가 아니야. 할머니 살이고 뼈야.”


아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텃밭에 스며든 바람이 유난히 시원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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