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사랑의 한 조각이라도 베풀 수 있다면, 나는 잘 살고 있는 거겠지.
“오늘 승진 발표 났어요.
이달 말일 자로 승진합니다~!”
카톡방이 울렸다. 동생, 민수였다.
아빠가 간절히도 원하던 둘째 아들이자 막둥이 민수는
동료들 중 가장 빠른 승진을 했다.
“오우~ 축하해!”
“대단하네~”
“승진이 너무 빠른 거 아니야?”
“민수야, 축하해. 고생했다.”
삼남은 엄마네 집에 와 있었다.
효민이와 함께 감자를 옮기러 온 날이었다.
“엄마, 민수 승진했대.”
엄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매 오매 내 새끼. 잘했네. 잘했어. ”
그러더니 갑자기 옛 생각이 난 듯 말했다.
“민수 한 살 때 느그 아부지 죽고,
내가 느그들 눈에 밟혀서 일하러를 못 갔당께.
신작로 앞잉께 기어 나가믄 큰일이제.
돈을 아무리 더 준닥 해도 해만 질락하믄 그냥 와부러.
우리 애기 땜시 나 언능 갈라요 하고.
그라고 키웠제.”
눈시울이 불거진 순례는 한참을
옛날 민수랑 삼남이 어릴 적 키우던 얘기를 했다.
그 시절, 어린이집은커녕 놀이방도 없던 시절.
애기 봐줄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밭에다 풀어놓고 일하고,
방에 가둬놓고 나가던 날들이
스쳐 지나간 모양이다.
내내, 혼자 품고 있었던 시간들.
“느그 죽은 아부지가 뒤를 봐줘서 그런 거여.”
“엄마는~ 엄마가 잘 키워서 그런 거지,
무슨 아부지가 도와줘.”
삼남은 못마땅했다.
아부지는 살아서도 날 미워하더니
죽어서도 차별인가 싶었다.
두 번이나 승진 시험에서 미끄러진
서운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엄마가 평생을 헌신해서 키워놓으니,
자식이 다른 길로 못 가는 거야.
엄마 때문이라도 똑바로 열심히 살아야겠다 하는 거지. “
삼남은 다시 한번 엄마의 공임을 강조했다.
“그라제. 하영이 엄마 잘 지내냐고,
동네사람이믄 다 내 안부를 물었닥 안 하냐.
징하게 좋은 사람이었다고.”
엄마는 말이 많아졌다.
막내아들의 승진 소식에 목소리는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여러모로 민수는 엄마를 향한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아버지가 그렇게도 원했던 둘째 아들은
엄마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었다.
결혼한 후로도 엄마와 함께 살며,
지근거리에서 엄마의 텃밭을 돕고,
아플 때면 병원 통원까지 책임지는 효자였다.
‘다음 주 토요일, 민수와 내 승진 기념 고기파티 할 예정.'
얼마 전 준위로 승진한 큰 오빠였다.
‘엄마가 한턱내신다네요.
시간 되면 다들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순례의 텃밭 옆 움막에서
고기 파티가 시작되었다.
날도 더운데, 음식점에 갔으면 좋았을 걸,
순례는 굳이 굳이 텃밭 옆에서 할 것을 고집했다.
”아이, 상추랑 마늘이랑 고추가 여그 다 있는디.
고기만 사믄 된디. 내가 고기 사올랑께.“
아들 둘이 잘 돼서 내는 턱이니 자신이 내고 싶었고,
그렇게 기회비용을 줄이며 풍족하게
자식들과 손주들을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리라.
”축하해, 오빠. 얼마나 애썼어. 얼굴이 다 늙었구만.“
이제 막 숯불을 피워 두툼한 삼겹살을 올려놓는 오빠가
이전보다 많이 늙어있었다.
”그럼, 몇 년을 했는데. 뭐든지 쉬운 일이 없어야.“
군인인 현수는 평생 잦은 근무지 이동으로
전국의 이곳저곳을 이사 다니며 살았다.
”그치. 살아보니 쉬운 일이 없네.“
아이들을 모두 키운 후 늦깎이 취업을 한 작은 언니가 말했다.
"내가 남편 돈 말고, 내 돈 벌려고 일을 나가봉께,
돈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니드라고."
”그럼, 나도 힘든 곳에서 참고 일했으니,
빨리 승진한 거야. “
민수였다.
"다들 힘들지. 그렇게 그냥 살아가는 거지, 뭐.
어차피 힘들 거 웃으면서 살자구."
어느새 인생을 통달한 듯한 큰언니였다.
순례의 자식들은 삶을 인내하고
그 속에서 긍정을 찾아낼 줄 알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났을까?
이보다 더 힘든 일도 겪은 엄마를 보며
인내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났으리라.
자식은 부모의 뒤통수를 보며 자란다고 했던가?
자신의 몸을 갈아가며 희생한 엄마와 그 자식들...
보고 배운 게 어디 안 간다.
부모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하는 이유다.
오 남매는 그렇게 자신들만의 텃밭을 일구고 있었다.
문득 밭의 채소들이 살아서 말을 한다.
'너의 엄마이듯, 우리에게도 엄마라고.
매일 햇빛과 물을 주고, 지지해 주고, 사랑으로 키워서
우리가 이렇게 싱싱하게 자라는 거라고.
엄마가 우릴 키워줘서 우린 너무 행복하다고.
맛있게 먹어달라고.
엄마의 피가 섞인 채소들이라고.'
순례가 밭을 언제까지 할지 모른다.
삼남은 밭 좀 그만하라고, 일할 사람 없다고
투정 부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엄마의 피 같은 채소를 못 먹을 날이
다가올지도 모르니까.
상추 2개에 깻잎을 올리고,
고기를 싸서 한 입 크게 욱여넣는다.
밭에서 딴 상추 특유의 쌉쌀함과
향긋한 깻잎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시장에 가서 깨를 팔아 직접 참기름을 짜야
직성이 풀리는 엄마 덕분에
늘 신선한 참기름을 먹는다.
불편한 다리를 하고
여러 번의 버스를 갈아 타, 모란 시장까지 가서
짜온 참기름.
엄마의 변치 않는 맛은 깨탈스러움,
다른 말로 정성이다.
그 참기름장에 삼겹살을 찍어본다.
진하고 고소한 엄마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목울음을 울 듯,
삼겹살이 넘어가지지 않는다.
‘엄마, 사랑해. 엄마, 고마워.
엄마, 오래오래만 곁에 있어줘.’
이후 연재 계획
내일(수) : <착한 척하지 마, 오삼남> 에필로그
모레(목) : <착한 척하지 마, 오삼남> 작가의 말
금요일 : 새 연재 <철없는 선생님의 k팝 이야기> 프롤로그
다음 주부터 다음 연재로 찾아뵙겠습니다!!!
월,화 : <철없는 선생님이 들려주는 k팝 이야기>
수,목 : 새 소설 <대단하다, 대단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