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장교 입대 날이 다가왔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훈련장소인 영천에 있는 육군3사관학교로 가야 한다. 어머니는 서울역까지 같이 가고 싶다고 하셨다.
“어머니, 나오지 마셔요.”
“아니다. 서울역에서 만세를 불러 줄 거다.”
결혼 후 아버지가 입대하실 때도 만세를 불러주셨다고 하셨다. 머리를 짧게 자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랬으면 진짜로 서울역에서 만세 소리가 들렸을지 모른다.
훈련이 시작되었다.
내가 속한 8중대의 훈육 대장은 육사 출신 소령으로 다부지고 각이 딱 잡힌 군인 중의 군인이었다. 훈련은 매우 힘들었지만 할만했다. 100킬로 행군, 독도법, 도피 및 탈출, 낙하 훈련 등등 갖가지 훈련을 받았다. 소총은 물론 권총, 기관총, 유탄발사기, 박격포 그리고 수류탄도 다뤄봤다.
적응하기 힘든 것은 훈육 중위의 무리한 군기 잡기였다. 온갖 구실을 대며 얼차려를 줬다. 조그만 실수에도 지휘봉을 휘두르며 갖가지 말로 모욕을 주기 일쑤였다. 추운 겨울밤, 팬티만 입고 완전 군장 차림으로 전 중대원이 옥상에서 얼차려를 받기도 했는데,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한 번은 전체 동료들이 중위의 부당한 얼차려 지시를 대 놓고 거부한 적도 있었다. 매일 밤 하루를 반성하는 일기를 써야 했는데, 나는 거기에 그 중위에 대한 온갖 잘못된 것들을 기록했다. 때로는 애국가를 4절까지 쓰기도 하고, 마지막 줄에는 경고의 글도 남겼다.
‘제대하는 날 가만두지 않겠다.’
그 후로부터 나를 건드리는 일이 없어졌다.
4개월 훈련이 끝난 후 전방에 배치되어 2개월간 소대장 실습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군사경계선 철책을 지키는 초소인 지오피에 배치되었다. 철책을 순찰하고, 때로는 사병들과 한 조로 초소를 순환하며 밤새 철책 경계를 서기도 했다. 내가 배치된 초소의 책임자는 중사로 직업군인이었는데, 나하고는 잘 맞지 않았다. 나이는 나하고 같았는데 늘 내게 삐딱하게 대했다. 철책 순찰 근무 중에도, 가끔 허공에 대고 소총을 쏘기도 하고, 제멋대로 행동했다.
3주가 지났을까 중대장이 인근에 있던 실습 소대장들을 불러 모아 실습 소감을 물어봤다. 그리고는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중대장실로 달려오라고 했다. 그런데 며칠 후 중사가 중대장한테 엄청나게 혼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날 저녁에 같이 식사를 하자는 중사의 연락을 받았다. 식당 테이블에는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소나무 몽둥이를 든 중사가 앉아 있었다. 나를 보자 아무 말 없이 식당 바닥을 쿵쿵 찍기 시작했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못마땅한 중사의 처신을 실습 소감이라고 중대장한테 말한 것이 문제였다. 겁이 났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밥을 먹어야 했다. 식사를 할 동안 중사는 계속 몽둥이로 바닥을 내리찍고 있었다.
너무 무서웠다.
실습 소대장 체면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즉시 군장을 꾸려 중대장 방으로 도망치듯 달려갔다. 지오피를 떠나는 날 중대장이, 훼바에 가서는 부하에게 휘둘리지 말고, 소대장 역할을 제대로 해보라 했다.
지오피 근무를 교대 지원하는 부대가 있는 훼파로 왔다. 난 혼자 멀리 떨어진 중대에 배치되었다. 도착한 산꼭대기에 있는 오지 중대는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다. 온종일 눈 치우는 게 일이었다. 얼마 후 국회의원선거 부재자 투표가 있었다. 사병들은 다 투표를 끝냈는데 투표하라는 소리가 없다. 늦은 밤 정신없이 자고 있는데 누군가 투표하라며 나를 흔들어 깨웠다.
이 밤에 투표를 하라고?
중대장 집무실에는 대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대장의 참모 이하 장교들이 부동자세를 하고 서 있다. 테이블 위에는 내게 온 부재자 투표 봉투가 놓여 있다. 한쪽 벽면에 기표소가 보인다. 대대장이 시국에 대해 한참을 얘기했다.
“소대장은 교육도 많이 받고, 병역 혜택도 받고...”
투표용지를 들고 기표소로 가려하는데 대대장이 나를 붙잡으며 다시 설교를 시작했다.
“나라가 혼란한 이런 때에 소대장 같은 사람이 큰일을 해야 하고...”
이게 뭔 일이지?
곤혹스러웠다.
“그래서 이 테이블 위에서 투표하란 말입니까?”
대대장이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누구를 찍으려는지 궁금한가 보다. 그거야 뭐 어렵지 않다. 기표 용구를 들고 신민당 후보에 찍으려 하려는데, 대대장이 또다시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럼 1번 민정당에 찍으란 말입니까?”
그때, 대대장 참모의 허리에 찬 권총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다.
다들 보는 데서 1번에 쾅 찍었다.
“군대가 이런 뎁니까? 군 인식을 이리 망쳐버려도 되는 겁니까?”
목소리가 부르르 떨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기표 용구를 벽에 집어던졌다. 문을 박차고 나오는데 중대장이 뒤따라 나오면서 진정하라며 말을 했다.
“소대장,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산다는 게....”
대학 3학년 민주화운동 당시 종로경찰서에서,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잘못했다는 자술서를 쓰라고 하냐고, 눈물 흘리며 끝까지 버티던 고대생이 있었다. 그때 나는 왜 그 친구처럼 내 의지를 지키지 못했을까 부끄러워하며, 내 양심과 자유의지를 스스로 져버린 것을 많이 후회하며 살았다.
그런데 오늘도 나는 내 의지를 지켜내지 못했다.
그런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랐는데, 나는 오늘도 뒤늦은 후회로 자책하고 있다.
나는 실패한 소대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