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의 삶이 부록이 되었다

by 시칠리아노

이제 음악을 듣고, 글을 쓰고, 꽃잎을 바라보고, 빗방울 소리를 듣는 삶이 본문이다.


여전히 출근하고 있지만 일을 잘하려고 하지 않는다. 받는 만큼 일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만큼만 일한다. 엄마와 주부, 아내도 졸업했다. 더 이상 역할을 하지 않자 가족들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게 되었다. 가족 모두 스스로 자신의 식사를 챙긴다.


아이들과 자주 대화를 한다. 두 아이 모두 나와 대화하기를 즐긴다. 그러나 엄마로서 대화하지 않는다. 인간 대 인간, 또는 함께 삶을 살아가는 동료로서, 절친한 친구로 대화한다.


남편과는 동지적 존중을 바탕으로 간혹 여가를 함께 보내며 각자의 사생활은 보장하고 있다. 서로의 습관이나 취미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자 아주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꽃나무가 아닌 여린 꽃잎이, 비가 아닌 빗방울이 우산 끝에 모여 땅에 번지는 것이, 커피의 맛이 아닌 향이, 멜로디가 아닌 음과 음 사이의 여백이, 아이가 아닌 아이의 눈빛이. 그것을 감각하고 글로 옮기며 살고 있다.


역할을 내려 놓자 본질이 들어왔다. 본질이 들어오자 삶이 호수처럼 잔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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