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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Jul 11. 2023

고질병

내가 살아가는 방식(2023/06/17의 기록)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그들의 시선과 표정 같은 것들을 생각하느라 나의 머릿속은 지금 하는 이야기 주제 이외에도 가득 차 있다. 매번 이야기를 하다가 혹은 듣다가 미묘하게 변하는 그들의 표정과 시선을 신경 쓰느라 온전히 대화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하면서도 떠오르는 여러 잡생각들로 겉으로 볼 때는 이야기에 집중을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내 속은 그렇지가 않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소한 상대의 행동에도 하나하나 의미부여를 하며 ‘왜 방금 인상을 찌푸렸을까’, ‘왜 지금 저곳으로 시선을 돌렸을까’와 같은 여러 생각들로 상대의 자그마한 행동에도 신경을 쓰며 궁금해한다. 혹여 나의 이야기가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닌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 말고 어떠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계속해서 상대를 관찰하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의 에너지는 금방 바닥이 나며, 사람을 만나면 항상 피곤함에 절여진 채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집으로 돌아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워 에너지를 보충하는데, 그렇게 꼼짝 않고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누워서도 아까의 상황을 떠올리며 왜 그때 상대가 그런 표정을 지었던 것인지, 왜 그때 그런 반응을 보였던 것인지 아까의 상황과 찜찜함을 다시 끄집어와 다시 한번 골똘히 생각한다. 이렇게 글로 쓰다 보니 나 스스로가 무슨 망상병 환자 혹은 스토커 같이 느껴지긴 하지만 이 나의 오래된 버릇이자 습관은 고치려 해도 쉽게 고쳐지지가 않는다. 말 이외에 상대의 그런 비언어적인 모습들이 저절로 눈에 들어와 어느 순간 내 머릿속에 콱 박혀버린다. 그래서 난 이런 나의 피곤한 습관에 따라 소수의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어쩔 수 없이 좋아하게 되었다 ’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다수로 만났을 경우, 그 많은 사람들의 비언어적인 모습들을 다 관찰하며 이야기를 따라가기엔 나의 에너지가 너무나 낮고 생각만으로도 피로해진다.


이런 나의 고질적이고 피곤한 습관에 따라 나 또한 상대의 말을 들으며 내가 지금 상대에게 적절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상대가 지금 나의 표정과 행동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한다. 만약 상대가 나와 같은 동류의 그것이라면,  그런 나의 사소한 표정과 행동에 영향을 받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남들과 대화를 할 때면 되도록이면 아이컨택을 하면서 적절한 반응을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나 또한 상대가 나의 이야기에 흥미가 없어 보이거나 반응이 좋지 않으면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도 사실 속으로는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상대의 배려이자 나의 만족인 것이다. 오늘 만난 친구와도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녀의 안색과 표정을 살피느라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런 나의 피곤한 대화방식이 상대에겐 진정성 있고 진실해 보일 수 있겠으나, 이것은 나의 에너지를 끌어다 써 상대의 모든 것에 집중을 한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저 피곤한 고질병일 뿐이다. 그리고 아마 이런 나의 속마음은 평생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항상 누구를 만나든 평온한 겉모습과는 달리 이런 나의 복잡한 속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은 고치려 해도 고쳐지지 않는 나의 오래된 고질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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