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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Sep 16. 2023

5년 만의 교토는..(부제: 폰즈 소스는 안 맞는걸루)

도쿄 워홀일기 5 (2023/09/07)

오늘은 신칸센을 타고 교토로 이동을 했다. 자매들은 숙소에서 출발을 하고 나는 집에서 출발을 해서 그런지 서로 엇갈려 한참을 서로 찾다 간신히 열차 출발 10분 전에 만나 허겁지겁 열차에 올랐다. 원래 계획으로는 ‘에키벤’이라는 역에서 파는 일본 도시락을 사서 먹을 예정이었지만, 아침부터 진땀을 뺀 우리는 에키벤이고 뭐고 그저 물 하나씩만 사들고는 좌석에 앉았다. 아침부터 피곤해진 우리는 오늘 하루가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나는 어제 쉰 덕분인지 컨디션이 조금 돌아와 다시 갈 교토생각에 조금씩 마음이 설레어왔다. 스무 살, 처음 홀로 떠난 일본에서 교토의 분위기를 잊지 못해 워킹홀리데이를 교토로 갈까라고까지 생각을 한 나였기 때문에 5년 만의 교토 방문이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창가좌석인 E 좌석에 앉아야만 후지산을 볼 수 있다고 하여 미리 좌석을 한 달 전부터 예매를 해두었다. 그 덕에 신칸센 안에서 후지산도 구경하며 맘껏 일본의 풍경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렇게 2시간 반 정도를 달려 도착한 교토는 내 기억 속의 그때와 똑같았다. 동양인 관광객보다는 서양인 관광객이 많던 그 당시처럼 이번에도 서양인 관광객이 관광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길거리에서는 한국말과 중국말은 거의 찾아볼 수 가 없었다. 우린 곧바로 예약한 숙소로 가 체크인을 했는데, 나의 알아듣는 척이 꽤 좋았는지 호텔 지배인 아저씨는 내게 일본어를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 칭찬을 받기에는 못 알아들은 단어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조금 민망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은 척 웃으면 ”ありがとございます! “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외쳤다.


원래는 체크인 후 미리 봐두었던 식당에 가려고 했지만, 너무나 배가 고파진 우리는 그냥 둘러보다 근처에 있는 현지인 맛집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아주 나이가 지긋한 노부부가 나와서는 우리를 반겼다. 그 웃음에 우리는 “こんにちは!”(콘니치와)를 외치며 자리에 앉았다. 메뉴는 칠판(?)이라고 해야 할지, 큰 널빤지에 수기로 적혀져 있었는데, 도무지 알아보기 힘든 글씨체에 우리가 칠판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자, 주인 할아버지께서는 가게의 대표 메뉴를 추천해 주셨다. 그래서 우린 ‘그래, 바로 그거다!‘ 라며 세 명 모두 할아버지의 추천 메뉴를 시켰다. 그 메뉴는 바로 폰즈 소스가 위에 뿌려져 있는 가라야게정식이었는데, 호기롭게 시켰던 아까와는 달리 우리는 한 입 먹자마자 서로 동공지진이 일어났다. 생각보다 매우 새콤한 소스에 가라야게 맛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우리는 당황을 했다. 폰즈 소스는 그동안 이름만 들어봤지 이렇게나 새콤한 녀석이었을지는 꿈에도 몰랐던 우리는 어쩌면 꾸역 꾸역이라는 표현대로 정식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을 열리더니 줄줄이 화이트 칼라의 회사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여기가 남자 회사원/아저씨들의 찐 현지 맛집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누가 봐도 관광객으로 보이는 여자 세 명이 한 껏 꾸미고는 이곳에서 가라야게 정식을 먹고 있자 그것이 신기했는지 계속해서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우리는 그 시선이 느껴졌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는 밥을 먹으며 ‘음.. 그래.. 폰즈소스는 이걸로 만족이다’라고 생각하며 예의상 반 정도는 다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밥을 다 먹고 나가려는데 너무나 친절한 노부부에게 예의상이라도 맛있었다는 말을 건네주고 싶어. 나는 “あの、美味しかったです!! “ (아노,, 오이시캇다데스!!) 라며 엄지를 들어 올려 보였다. 그랬더니 노부부는 그런 우리의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고는 배웅을 해줬다. 맛은 확실히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노부부가 너무나 친절했기 때문에 이 식사가 전혀 아깝거나 짜증나게 느껴지지 않았다.


밥을 먹고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드디어 4일 만에 제대로 된 여행다운 여행의 기분을 만끽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어 저녁밥으로는 뭘 먹을지 고민을 하는데, 얼큰하고 자극적인 것이 이제 슬슬 먹고 싶어져 우리는 거의 한식과도 다름없는 마라탕을 먹으러 갔다. 교토에서 마라탕이라니 생각지도 못했고, 전혀 계획에도 없던 메뉴였지만, 마라탕을 먹으며 한껏 땀을 흘리자 온몸이 노곤해지며 드디어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역시 주기적으로 먹어줘야 하는 마라탕) 너무나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마치고는 걸어서 숙소로 돌아가는데, 교토가 너무 좋아 ‘워홀을 교토로 올 걸 그랬나’라는 조금의 후회가 들었다. '역시 그때의 좋았던 기억이 틀렸던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조금 아니, 많이 아쉬웠다. 생각보다 너무나 서울 같던 도쿄의 모습에 실망을 했던 나였던지라 교토의 이런 일본의 느낌이 물씬 나며 적당히 번화가이며 적당히 사람이 있고 자연이 많은 이곳이 좋았다. 그래서 ‘나중에는 교토에서 한 달 살기 같은 걸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도쿄에서 멀어져서 그런지 나는 오늘에서야 드디어 여행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다. 드디어 오늘에서야말로 여행을 제대로 즐겼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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