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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에도 피어나는 것들

by 김기수




1. 흐린 아침의 고요함


오늘 아침은 유난히 조용하다.

햇살 하나 없이 흐린 하늘 아래, 차가운 바람이 유리창을 슬쩍 건드리며 지나간다.

이불 속에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유혹이 많았지만, 나는 괜히 일찍 일어났다.

이런 날엔 이상하게, 마음속에서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 같다.

‘오늘도 살아보자’고.



2. 창밖의 벚꽃과 커피 한 잔


커피를 내리며 창밖을 보았다.

활짝 핀 벚꽃나무가 바람에 몸을 흔들고 있었다.

햇빛도 없이, 온기 하나 없이, 그저 제때가 되었다고 피어난 꽃들.

어쩌면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조건이 완벽해서 피어나는 게 아니라, 그럴 시기가 오면, 그 자리에 선 채로 피어나는 것.


한참을 창가에 앉아 꽃을 바라보다 두 손으로 컵을 감싸 쥐었다.

그 따뜻함이 손끝에서부터 퍼져나가 마음까지 데워주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착각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의 작은 온기는 언제나 나를 살게 해줬으니까.



3. 괜찮은 척의 일상


생각해보면 우리는 얼마나 자주 ‘괜찮은 척’을 하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눈물은 목구멍쯤에서 삼키고, 하고 싶은 말은 언제나 나중으로 미루고,

웃음은 예의처럼 지었지만 속은 늘 비어 있었다.

그렇게 오래 참고 나면, 마음에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4. 목련의 가르침


하지만 오늘, 이렇게 바람 부는 흐린 날, 그 속에서도 목련은 피어 있다.

제 몸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작은 꽃잎을 바람에 맡기며 피어난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우리는 흔히 좋은 날에만 피어나야 한다고 믿지만, 꽃은 흐린 날에도,

심지어 비 오는 날에도 자기 몫의 아름다움을 다해 피어난다.



5. 나의 작은 불빛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지금 이 순간이 빛나지 않아도,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고 외로워도,

그 안에서도 살아내는 하루는 결코 헛되지 않다고.


흐린 날의 벤치에 잠깐 앉아, 바람 속으로 스며드는 나 자신을 느껴본다.

세상이 밝지 않아도 나는 내 마음에 작은 불빛 하나쯤 켤 수 있지 않을까.

그 불빛이 언젠가 누군가의 길이 될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의 고요함도 의미 있는 시간일 것이다.



6. 흐린 날의 봄을 믿으며


그러니 오늘, 흐린 하늘 아래서도 나는 나의 봄을 믿어본다.

쓸쓸함 속에서도 피어나는 용기를 잠잠한 하루 속에서 조용히 꺼내어

내 앞의 시간을 살아보려 한다.



당신의 오늘이, 비록 흐리더라도 그 안에서도 꽃 한 송이처럼 피어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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