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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속에 피어난 희망:

흐린 날의 속삭임

by 김기수

1부: 흐림 사이의 고백


오늘은 하늘이 낮게 내려앉은 날

회색빛 구름이 어깨를 눌러도

나는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선다


바람은 조용한 말투로 속삭이고

벚꽃잎들은,

그 침묵 속에서 나지막한 위로가 된다


비는 오지 않지만

모든 것이 젖은 듯한 하루

그 속에서 나는

잊고 있던 나를 꺼내어 바라본다


커피 한 잔의 온기를 손에 쥐고

텅 빈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른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아니, 이미 무너진 채로

다시 살아보기 위해



2부: 꽃잎의 온도


잊힌 시간들이 이따금 나를 흔들고

문득 스쳐 간 이름들이

창가에 얼룩처럼 남는다


벚나무 아래, 꽃잎은 말없이 흩날리고

나는 그 안에

말 못한 마음들을 접어 넣는다


누구에게도 닿지 못했던 위로,

속으로 삼킨 수많은 고백들

그 모든 것이

오늘의 바람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스카프 끝자락이 바람에 흔들릴 때

나는 비로소 알아챈다

이 고요한 흔들림이

내가 다시 걸어갈 힘이 된다는 걸



3부: 흐림 끝의 봄


날은 흐렸지만

내 마음은 조금씩 개이고 있었다


울지 않아도

울었던 날들을 품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지나간 계절이 남긴 상처마저

이제는 봄을 부른다

흙냄새 속에, 잎사귀의 흔들림 속에

나는 조금씩 피어오른다


모든 벤치가 누군가를 기다리듯

나도 다시 나를 기다리기로 한다

아직 꽃이 지지 않았다는 건

아직, 괜찮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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