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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나의 그림자다

사람과 불안과의 관계

by 김기수

불안은 나의 그림자다

1. 프롤로그: 마음속을 건드리는 단어, 불안

어느 날 문득,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는 순간이 있다.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딘가 불안한 느낌이 스며든다. 우리는 모두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시험을 앞둔 학생,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직장인, 사랑하는 이의 답장을 기다리는 연인까지. 불안은 우리 일상 곳곳에 숨어 있다.불안은 때로 우리를 괴롭히지만, 그 감정이 없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불안은 단순한 부정적 감정이 아닌, 인간 존재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이 에세이에서는 불안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2. 본능으로서의 불안

불안은 어쩌면 인간에게 가장 오래된 감정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직 동굴 속에서 살아가던 시절, 불안은 생존을 위한 필수 감각이었다. 밤의 정적 속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 덤불 뒤에 있을지도 모르는 맹수, 갑작스레 몰려오는 폭풍의 기운. 이런 것들은 모두 불안을 자극했고, 덕분에 우리는 대비할 수 있었다.과학은 이 감정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한다. 뇌 속 편도체는 위험을 감지하는 경보장치와 같다. 어떤 위협을 감지하면, 뇌는 곧장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고, 심장은 빨라지고, 몸은 경계 태세에 들어간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준비. 다시 말해, 불안은 우리를 살게 했다.그런데 현대에 들어 불안은 더 이상 사자나 천둥처럼 외부의 명백한 위협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이젠 이메일 한 통, 휴대폰 속 알림, 심지어는 타인의 시선조차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우리는 더 이상 불안을 “회피해야 할 감정”이 아닌, “조율해야 할 감정”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은 외부의 적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우리 내부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불안은 단지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예민하게 살아 있고, 얼마나 더 나아가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내면의 반응이다. 불안을 느끼는 당신, 당신은 지금 살아 있는 것이다.

3. 철학자들이 말하는 불안

불안은 단지 생리적 반응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철학자들은 불안을 인간 존재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철학의 거장들은 이 감정을 단순한 고통이 아닌,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체험으로 받아들였다.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불안을 “자유의 어지러움”이라고 말했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가능성이 있다는 것—그 자체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절벽 위에 선 사람은 추락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뛰어들 수 있다”는 자유가 두려운 것이라고.20세기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불안을 “존재의 공허를 마주하는 감정”이라 표현했다. 그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존재들의 의미가 무너질 때, 우리는 깊은 불안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때 우리는 단지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를 자각하는 존재’가 된다.사르트르는 인간에게는 “정해진 본질이 없다”고 말하며, 오직 선택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간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선택의 자유는 곧,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을 동반한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불안은 우리의 자유가 남긴 흔적이다.이처럼 철학자들에게 불안은 도피할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질문의 시작이자, 존재의 증거다. 불안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선택은 진실한가?” 그리고 우리는, 매 순간 이 질문에 답하며 살아간다.

4. 존재의 조건으로서의 불안

우리는 종종 삶이 너무 무겁다고 느낀다. 이유 없는 불안이 가슴을 누르고, 밤이 깊어질수록 마음속 질문들은 더 선명해진다. “나는 누구인가?”,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 이 길이 맞는 걸까?” 불안은 바로 이런 물음들에서 태어난다.불안은 우리가 ‘존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다. 동물은 그저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살아간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이 자각은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묻고, 의미를 요구하며, 때로는 깊은 혼란을 안긴다. 그래서 불안은 삶에 대한 사치가 아니라,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찾아오는 정직한 동반자다.우리는 종종 불안을 숨기려 한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는 말로 스스로를 달래지만, 마음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요동치는 파도가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 파도야말로, 삶의 진짜 동력일지도 모른다. 불안은 나아가고 싶다는 신호이고, 지금 있는 자리에서 머무르지 않겠다는 몸부림이다.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다면, 불안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나답게’ 만드는 힘이 된다. 불안은 삶의 이면에서 끊임없이 말한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그리고 그 질문에 우리가 정직하게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한 걸음 성장해 있을지도 모른다.

5. 불안과 창조성

어떤 날은 아무 말도 하기 싫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마음 한구석에서 자꾸만 솟아오르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 그럴 때 우리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이렇듯 불안은 종종 창조의 씨앗이 된다.많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고통과 불안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반 고흐는 자신의 불안과 외로움을 캔버스에 붓질로 쏟아냈고, 프란츠 카프카는 사회적 소외와 존재에 대한 불안을 문장으로 그려냈다. 그들의 예술은 단지 ‘표현’이 아니라,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불안은 창조성의 연료다. 완벽하지 않다는 자각, 채워지지 않는 공허, 세상과 나 사이의 틈. 이 모든 감정들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형태를 만들게 한다. 창작이란 결국,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행위니까. 그리고 불안은 그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다.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불안 덕분에 창의적인 선택을 한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나만의 길을 고민하며, 기존의 틀을 부수고자 한다. 불안이 없다면 우리는 익숙함 속에 안주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조차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그러니 불안은 단순히 고통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내면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창조의 신호다. 그것은 “너만의 이야기를 써보라”고,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라”고 속삭인다.

6. 우리는 어떻게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가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시작이다. 마치 그림자처럼, 불안은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우리를 따라다닌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그림자를 피하려 애쓰기보다, 함께 걸어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불안을 껴안는 첫 번째 방법은 자각이다. "아, 내가 지금 불안하구나"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 단순해 보이지만, 이 한마디는 마음속 어둠을 조용히 비춰주는 등불이 된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는 불안을 조금씩 누그러뜨린다.그 다음은 표현이다. 말이든 글이든, 예술이든 감정을 밖으로 흘려보내는 것은 치유의 시작이다. 일기를 쓰고, 누군가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된다. 표현은 감정을 객관화하게 해주고, 그 감정이 나를 삼키지 못하도록 거리를 만들어준다.또한 우리는 루틴과 연결을 통해 불안을 다스릴 수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하기, 아침에 햇살 받으며 커피 마시기,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일. 이 작은 반복들은 삶에 안전한 리듬을 만들어주고, 불안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어떤 불안보다 강력한 위안이 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함께 불안을 겪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된다.불안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감정을 무시하거나 제거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조용히 맞이하고, 다독이며, 그 안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길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7. 에필로그: 불안은 나를 밀어내지 않는다, 끌어안게 한다

불안은 나를 종종 멀리 데려가려 한다. 사람들로부터, 나 자신으로부터. 하지만 어쩌면 그 감정은 나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나를 껴안으려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불안은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다. “지금 네 마음속에 진짜 중요한 것이 있어. 그래서 두렵고, 그래서 조심스러워지는 거야.”살아간다는 건 때로 불편한 질문들과 함께 걷는 일이다. 우리는 삶의 어느 시점에서도 완벽하게 안심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생각하고, 사랑하고, 무언가를 창조하고, 더 나은 내가 되기를 꿈꾼다.그러니 이제는 불안을 거절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천천히 마주 보며 말 걸어본다. “그래, 또 왔구나.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거니?” 그렇게 우리는 불안을 적이 아닌 친구처럼 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감정을 안은 채로도 우리는 충분히 걸어갈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바로 그 감정 덕분에 우리는 더 단단히, 더 깊이, 더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

「불안이라는 이름의 별」

나는 매일 밤 가슴 속 어딘가에서 빛나는 별 하나를 느낀다.

그 별의 이름은, 불안.가까이 다가가면 작은 떨림이 나를 흔들고 차가운 바람이 속삭인다.

“넌 아직 충분하지 않아.”나는 움츠리기도 하고 숨고 싶기도 했지만 이제는 안다.

그 별은 나를 쓰러뜨리려 온 것이 아니라, 나를 깨우려 온 것이란 걸.불안은

내 안의 가장 깊은 감각을 일으키고 내가 얼마나 더 나아가고 싶은지를 몸으로 말하게 한다.

나는 그 불안을 붙잡고 새벽을 걷는다. 두려운 발걸음에도 나는 끝내 걷는다.

왜냐면 나는 안다.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별이 가장 밝게 빛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별을 품고 걷는 내가 바로 가장 단단한 존재라는 것을.

그러니, 불안이여 나를 흔들어도 좋다.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그 떨림을 딛고 끝내 피어나는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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