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이해한다면 후자.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쿠션 케이스와 플루티드 베젤을 한 몸에 담은 파일럿 마제텍. 전자는 파네라이의 라디오미르에서, 후자는 롤렉스의 몇몇 모델에서 볼 수 있는 세련된 디테일.
시계에 있어서 군에 납품한 이력은 정확함과 견고함을 보증하는 인장과도 같다. 가죽 스트랩보다 국방색 나토 밴드가 잘 어울리는 이 시계는 1930~1940년대 체코 군납품을 향한 오마주. 빛 반사로 인한 노출을 피하기 위해 사용한 매트 블랙 다이얼과 직관적인 시간 파악을 위해 선택한 아라비아 인덱스, 기교보단 실용을 중시한 핸즈와 43mm의 큼직한 케이스가 그 증거다.
론진의 레퍼런스 3582가 생산되어 체코 공군에게 제공된 건 1935년부터다. 케이스백에 새긴 체코어 ’Majetek Vojenske Spravy‘가 특징인데, ‘군 행정 자산’이라는 뜻. 그 때문에 빈티지 컬렉터에겐 ’자산‘을 뜻하는 ’마제텍‘으로 불렸다. 2023년 레퍼런스 3582를 재해석한 모델이 파일럿 마제텍인데, 별명이 정식 명칭으로 채택된 경우라고.
곳곳에서 눈에 띄는 과거의 DNA, COSC 인증 무브먼트가 제공하는 72시간의 파워 리저브와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를 통해 얻어낸 항자성으로 봤을 때 파일럿 마제텍은 진정한 오마주다. 과거에 귀속된 채 진부함을 풍길 수도 있지만 기능에서나 디자인에서나 21세기스러운 세련됨을 한껏 보여주기 때문.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문 표기법을 따른 것. 역사를 아는 우리끼린 체코어 살려서 마제텍 말고 마예텍으로 부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