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상인들을 위한 포켓 워치
산업혁명 이래로 기계공학이 빚어낸 수많은 톱니바퀴들에 의해 인류는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 메카니즘을 논할 때 전기전자공학의 여명기가 엊그제인 줄 알았으나 가파른 기술적 진보로 그 입지를 넓히더니 디지털의 시선에서 기계공학의 일부를 아날로그로 점찍는 것도 예삿일이 되어버렸다.
터치 몇 번으로 세계시간을 알 수 있게 된 오늘날처럼 패러다임의 변화가 우리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든 건 사실이나, 손목에 올릴 수 있는 기계공학의 소산을 아날로그로만 치부하는 건 역사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가 아닌가.
고리타분한 문투와 거창한 서론으로 포장하려는 존재는 퍼페추얼 캘린더Perpetual Calendar다. 우선 애뉴얼 캘린더부터 설명하자면 30일 또는 31일로 끝나는 달을 구분하며 초, 분, 시간, 날짜와 요일, 월, 그리고 연도를 표시하는 기능. 그러나 그레고리력으로 인한 윤년을 애뉴얼 캘린더는 잡아내지 못해 4년에 한 번씩 꼭 용두를 만져야 한다. 이를 보완하여 윤년까지 계산하고, 약 2100년까지 날짜나 연도를 보정할 필요가 없게끔 만들어진 것이 퍼페추얼 캘린더. IC칩 하나 없이 스위스 장인이 조립한 부품들과 보석으로 이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기계공학사에 대한 찬사가 아닐까.
그냥 윤년 맞춰서 용두 몇 번 돌리면 되는 것 아니냐 하는 반론은 충분히 예상된다. 오늘날처럼 흔하지 않았을 당시의 손목시계는 시간 확인을 위해 필수적인 실용 도구였을 거다. 그러나 손가락 몇 번 움직여 많은 정보를 얻는 오늘, 손목시계는 더이상 시간을 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도구가 아니다. ‘타임피스를 넘어선 아트피스’ 정도. horlogerie는 디자인과 실용을 겸비한 공예工藝고, 퍼페추얼 캘린더를 만든다는 건 메종의 역사와 기술력에 대한 증명과도 같다. 너도나도 스마트 워치를 착용하는 2023년에도 캘린더 기능을 추가한 기계식 시계는 쏟아져 나오니 ppc를 조롱하지 말고 이해해보자. 실용과 효율만 중요시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늘날처럼 아름답지 않았을 거다. 또 가장 중요한 건 살 사람들은 다 산다는 것.
사진은 IWC의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 오래전 두 명의 포르투갈 상인들을 위해 제작된 포켓 워치는 오늘날 포르투기저의 시발점. 나뭇잎 모양 핸즈와 아라비안 인덱스는 포르투기저의 상징이고, 다이얼을 꽉꽉 채운 건 퍼페추얼 캘린더의 매력. 지금에야 코딩 몇 줄로 끝나는 문제지만 오래전 인간의 손에서 탄생한 이 유구한 매커니즘에 자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