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랑팡 에어 커맨드 플라이백
런웨이Runway는 패션쇼에서 모델이 걷는 길이자 이착륙을 위한 활주로를 뜻한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그린 도안을 현실로 표현해 낸 것이 패션쇼다. MD와 언론, 패션 하우스 관계자들은 각 브랜드를 이끄는 수장이 내놓은 쇼에 눈과 귀를 기울인다. 주목받은 결과물은 그 시즌을 휩쓸 ‘트렌드’가 된다. 머릿속에 떠오른 영감을 걸친 멋진 모델들이 줄지어 걷는 길. 디렉터의 꿈과 현실 속 대중을 잇는 무대가 바로 런웨이다.
지능까지 창조해 내며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인류지만 하늘길을 정복한 건 불과 한 세기 전 일이다. 인류사를 조금만 뒤로 되감아 보면 이동은 권력의 상징이자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은 이 상류층의 특권을 대중에게 이양했는데, 대표적인 발명품이 비행기다. 고향으로 되돌아가려는 듯 활주로를 달려 땅을 박차고 떠올라 공기를 누르며 하늘로 향하는 모습. 수십 톤의 기체를 위한 무대가 바로 가슴 뻥 뚫리게 쭉 뻗은 런웨이다.
문화에서도, 과학기술에서도 든든한 무대가 되어준 런웨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뻗어 나간 활주로와 잘 어울리는 이 시계는 블랑팡의 ‘에어 커맨드 플라이백’. 이름에서부터 파일럿의 향을 짙게 풍긴다. 당시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에게 손목시계는 군용 장비이자 필수적인 도구였는데, 1950년대 미 공군을 위한 크로노그래프(경과 시간 측정계)를 블랑팡의 시각으로 모던하게 해석한 제품이 ‘에어 커맨드 플라이백’.
과거 컬렉션을 복각한 시계에 마음이 가는 편이다. 지난날을 추종하고 기억하는 인간적인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 플라이백 기능을 탑재한 에어 커맨드를 볼 때면 항상 가슴이 설렌다.
우리는 인생을 주로 길에 빗대곤 한다. 끝을 헤아릴 수 없다는 속성을 공유하기 때문일까. 시계 뒤로 길게 뻗어 나간 길을 보면 그 끝에 있을 무언가를 향한 호기심이 피어오른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번져 나가는 사유의 줄기를 다잡고는 코앞의 당장을 직시하기로 마음먹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내 여정에도 이 포스터처럼 시계가 굳건히 자리하기를 내심 기대해 본다. 시계도, 포스터도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참 잘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