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이 남긴 흔적
셋째 언니와 나는 두 살 차이다.
나는 늘 언니와 함께
뛰어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언니는 언제나 공부가 먼저였다.
나는 그 경계 바깥에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국민학교 4학년,
타잔이 한창 유행하던 어느 날.
밀림을 지키며 정의롭게 싸우는 타잔의 모습에 나는 완전히 빠져 있었다
화면 속 그는 나무줄기를 타고 하늘을 날았고,
코끼리와 사자, 원숭이들과 친구가 되어
약한 자를 지켜주었다.
“아— 아— 아—!”
그 외침 한 번이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 같았다.
나는 방 안에서
걸상처럼 낮은 책상 위로
올랐다 내렸다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혼자 타잔이 되었다.
그 사이 언니는
방바닥에 엎드린 채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마치 그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 버린 사람처럼.
“언니야, 나 타잔 한다—”
대답이 없었다.
“언니야, 나 좀 봐 봐.
안 보면 진짜 타잔 한다?”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작은 걸상 위에 다시 올라섰다.
팔을 벌리자 눈앞에 밀림이 펼쳐졌다.
초록빛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원숭이들이 웃으며 나를 불렀다.
멀리서 코끼리의 둔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타잔처럼 나무줄기를 붙잡고
공중으로 몸을 던졌다.
“아- 아- 아—!”
현실로 돌아온 건 그다음 순간이었다.
“으악!”
언니는 허둥지둥 일어서려다
허리를 붙잡고 주저앉았다.
말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아파 보였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아버지가 급히 뛰어오셨다.
“막내야! 뭐 하는 짓이냐!”
그 목소리는 타잔의 함성보다 훨씬 컸다.
그날은 아버지가 나에게
처음으로 크게 화를 내신 날이었다
나는 도망치면서도 마음 한편에
아버지의 무거운 존재감을 또렷이 새겼다.
그날 밤,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다음부턴 그러지 마라.”
그 말에는
화도,
연민도,
그리고 사랑도 함께 섞여 있었다.
나는 그 손길 아래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날의 타잔 놀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언니는 그 뒤로도 한동안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했고,
시간이 흘러도 허리는 늘 언니의 약한 곳으로 남았다.
지금도 언니가 허리를 짚으며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킬 때면,
나는 문득 그날의 방 안을 떠올린다.
작은 걸상,
팔을 벌리던 나,
그리고 찢어지듯 울리던 비명.
장난처럼 시작된 한 순간이
누군가의 몸에는 오래 남는 흔적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훨씬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언니의 허리가 아프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안의 타잔은 조용히 숨어버린다.
대신,
그날 이후 한 번도 가볍지 않았던
‘조심해야 한다’는 마음이
지금까지도 나를 붙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