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싸움

쓰러지지 않게 지키고 싶었던 것

by 장은경

그 시절,
우리 시골에는 집집마다 소가 한 마리씩은 있었다.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밭을 갈고 쟁기질을 하는 일꾼이었고,
집안의 살림을 떠받치는
가장 큰 재산이자 가족이었다.


봄이 지나 여름을 건너 초가을이 오면
들판은 초록으로 가득 찼다.
풀냄새와 흙냄새가 뒤섞인 들길 위를
나, 오빠 그리고 소와 함께 걸었다.


“막내아, 등에 탈래?”

"응"


오빠는 나를 가볍게 들어
소의 등에 조심스럽게 올려주었다.
햇살을 머금은 그 등은 따뜻했고
털결은 부드러웠다.


우리 소는 늘 순하고 얌전했다.
오빠는 고삐를 잡은 채
내 옆을 천천히 따라왔다.


“무섭지?”
“아니, 재밌어.”


햇살 속에서 오빠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소의 다리 밑까지 이어졌고,
그 그림자 안에 있는 동안
나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다.


풀밭에 이르면
소는 말뚝에 매인 채 조용히 풀을 뜯었다.


휘익— 휘익—
오빠의 낫질 소리에
풀잎이 바람처럼 쓰러졌다.


나는 작은 손으로 풀을 모아
한껏 끌어안았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자
오빠는 잠시 내 손을 들여다보았다.


“그만해 이건 내가 할게.”

그 말은 늘 짧았고,
그만큼 믿음직했다.


해가 기울면
우리는 소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노을빛이 소의 등에 내려앉고

풀냄새 섞인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그렇게 소도 자라고, 나도 자라

오빠가 하던 소 먹이던 일은 내 몫이 되었다.


마을에 소 이야기가 오르내릴 때면

자연스럽게 소싸움 이야기가 뒤따랐다.


그중에서도
진호 오빠네 소는 늘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양쪽으로 길게 뻗은 뿔은
햇빛을 받으면 칼날처럼 반짝였고,
누가 봐도 쉽게 밀리지 않을 기세였다.


반면 우리 소는
뿔 하나가 살짝 돌아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조금 짧았다.
어딘가 순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마음속으로 늘 바랐다.
한 번만이라도 저 소를 이겨봤으면…


어느 날,
해가 산능선에 걸려
금빛을 쏟아내던 저녁,
밭일을 마치고 소를 이끌고 돌아오던 길에
진호 오빠를 마주쳤다.


그때의 나는

아직 어렸지만,

이미 예전의 아이는 아니었다.


두 소는 서로 코를 킁킁대며 다가섰고
말 한마디 없이 뿔을 맞댔다.


처음엔 팽팽했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 아주 느리게
우리 소의 앞발이 뒤로 밀렸다.


그 작은 움직임이
내 눈엔 절벽 끝처럼 아찔해 보였다.


콧김은 거칠어지고
무릎은 떨렸다.

나는 손에 쥔 밧줄을
본능처럼 더 꽉 잡았다.


그때,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밧줄 끝의 두 겹 고리가 손에 잡혔다.
들에 매어두라고 만든 고리였지만
그 순간엔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나는 고리를 힘껏 내질렀다.

“퍽!”
상대 소가 움찔했다.


나는 다시 한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고리를 휘둘렀다.


그제야
진호 오빠네 소가 몸을 크게 털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길 위에
잠시 고요가 내려앉았다.


우리 소는
피 묻은 이마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마치 괜찮다고,
아직 버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 소가 쓰러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커다란 몸 하나를
지키고 싶었던 내 마음만이
조용히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짚단을 잘라
쌀겨와 함께 삶아 소밥을 만들었다.


가마솥에서 김이 오르면
소들은 코를 킁킁대며 기다렸고,
송아지는 내 손등을 핥으며
따뜻한 숨을 내뿜었다.


그 시간들은 지금도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은은한 향처럼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