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안테나를 돌리던 밤
밤이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흑백 TV가 있는 가겟집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며 장기판을 두드리는
‘탁, 탁’ 소리,
사람들 틈바구니에 놓인 흑백 TV 한 대.
“오늘은 우리나라가 일본이랑 경기한다더라.”
“그래? 그럼 오늘 응원해야겠네.”
TV 속에서 공이 굴러가고,
한 골이라도 들어가면 동네 어귀까지 함성이 터졌다.
TV는 크지도 않았고, 화면은 조금씩 흔들렸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외국 팀과 축구를 한다는 날이면
가게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저씨들은 술잔을 손에 들고
“들어가라! 들어가라!” 소리를 질렀고,
아이들은 그 틈 사이에서 까치발을 들고 화면을 바라봤다.
“골이야!”
그때의 TV는 세상을 보여주는 마법 상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마을에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저기 영학이네, TV 샀대.”
처음엔 부잣집부터
밤이 되면 그 집 창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에
아이들은 몰래 다가가 창문에 코를 박았다.
흑백 화면 속의 세상은 너무도 멀고 신기했다.
조금씩, 집집마다 TV가 생겨났다.
처음엔 흑백, 나중엔 색이 들어온 화면.
이제는 굳이 가겟집에 모이지 않아도,
가족끼리 방 안에서 경기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세상의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마을의 불빛은 한 집, 두 집 늘어갔고
밤은 점점 더 환해졌다.
화면 속에서 타잔이 덩굴을 타고 푸른 밀림을 가르며 날아다니면,
아이들은 숨을 죽였다.
‘저렇게 멋진 세상도 있구나.’
그때의 나는, 세상이라는 것이
화면 안에 다 담겨 있는 줄 알았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 집에도 TV가 들어왔다.
아버지와 오빠가 함께 들고 오던 그 낡은 나무 상자 같은 TV는
가족의 자랑이었다.
저녁이면 식구들이 둘러앉았다.
하지만 그 TV는 늘 고요하지만은 않았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툭—” 하는 소리와 함께 TV 화면이 꺼졌다.
‘지지— 지직—’ 하는 소리에,
오빠가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갔다.
한 명은 지붕 위에서 안테나를 돌리고,
한 명은 마당 한가운데 서서 “거기 멈춰!” 소리치고,
마지막으로 안에 있는 사람은 화면을 보며 외쳤다.
“이제 좋아! 조금만 더 오른쪽!”
“거기야, 거기— 딱 좋아!”
그럴 때마다 웃음소리와 고함이 번갈아 오갔다.
온 가족이 한 몸처럼 움직이던 그 시간,
우리는 TV를 맞추기보다는 세상을 맞추고 있었다.
그땐 전기가 끊길 때가 많았다.
그런 날이면,
엄마는 서랍에서 초를 꺼내 불을 붙이셨다.
촛불이 흔들리며 벽에 그림자를 만들면,
우리 그림자놀이를 하며 깔깔댔다.
그 이야기가 바로 ‘우리의 뉴스’이자 ‘드라마’였다
촛불빛에 비친 가족의 얼굴은 TV보다 더 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