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시간은 나에게 늘 악몽이었다.
칠판 앞에 반듯하게 서 있는 선생님,
책상 위에는 자와 단어장, 그리고 숨죽인 아이들
그 시간만 되면 교실 공기는 묘하게 무거워졌다.
누구도 먼저 웃지 않았고,
누가 이름을 불릴지 몰라 모두가 긴장했다.
“자, 깜지 두 장씩 써왔니? 오늘 단어 시험 본다.”
‘깜지’는 노트 가득히 빽빽하게 써넣는 것
요즘 말로 하면 ‘쓰기 벌’ 같은 거였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영어 단어 50개 외워와라” 하셨는데
시험에서 틀리면, 공책 두장 빼곡히 써야 했다.
“apple – 사과, banana – 바나나…”.
깜지의 유래는 더 재밌다.
밤새도록 쓰느라 **깜깜한 밤에 쓴다 해서 ‘깜지’**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고,
‘깜지처럼 새까맣게 노트를 채운다’는 뜻에서 붙었다는 말도 있다.
결국 뜻은 같다 — 지독하게 많이 쓴다는 의미다.
밤이 깊을수록 글씨는 점점 작아지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거의 개미 글씨처럼 흐릿해졌다.
그렇게 써도 선생님은 단 한 줄만 봐도 알아봤다.
“이건 밤에 졸면서 썼구나.”
"볼펜 2개 잡고 쓰면 더 잘 외워지니"
졸며 썼던 흘린 글씨,
그저 빨리 채우기 위해 2개의 모나미 볼펜으로 쓴 글씨
딱 봐도 구분할 수 있었다.
손 아프다고 그만둘 수 없었고,
눈이 감겨도 다음 줄을 써야 했으니까.
그래서 깜지는
‘억지로라도 꾸준히 해내는 힘’을 길러준
우리 세대의 특별한 숙제였다.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교실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나는 손바닥에 땀이 맺혔다.
책상 위 단어장을 펴보지만, 글자가 춤을 추듯 흐릿해졌다.
bread, bridge, bright...
분명히 어젯밤엔 다 외웠는데,
아침이 되면 꼭 절반은 사라져 있었다.
“경아, 앞에 나와봐.”
이름이 불리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교탁 앞으로 나갔다.
손에 단어장을 꼭 쥐고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자, ‘mountain’. 뜻이 뭐야?”
“어… 음…”
“손등을 내밀어라.”
그 말이 떨어지자, 나는 저절로 몸이 움찔했다.
선생님은 자를 바로 세우고
탁— 하고 자가 손등을 스칠 때마다
아픈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창피'였다.
친구들의 시선이 내 손등에, 내 얼굴에, 내 떨리는 어깨에 꽂혔다.
누구는 고개를 숙였고,
누구는 애써 웃음을 참았다.
나는 그저 바닥의 나뭇결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단어 몇 개 틀렸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날 이후로 영어 시간은 나에게 공포의 시간이었다.
책가방에 단어장을 넣을 때마다 마음은 무거워졌고,
자기 전에는 늘 단어를 중얼거리다 잠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단어는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외우는 건 잠깐이었고,
남는 건 그 긴장감과 두려움뿐이었다.
그 공포의 시간 속에서
나는 아직 학생이었고
아무리 싫어도 학생의 하루는 계속되어야 했다.
영어 시간은 싫었다.
하지만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당시엔 그저 벌칙이자 고통이었지만,
그때의 공포와 수치심은
나의 미래를 열어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