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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훈 Feb 20. 2024

의대 증원과 의사협회의 대응에 대한 의견을 서술하시오.

바보야, 문제는 보상이야!

[논술 주제 발췌 이유]

최근 정부가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의료 불균형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즉각 반대 행동에 들어갔다. 현재 전체 전공의 55%가 파업에 동참했다. 반응은 정부 편이다. 평소 의사협회가 내비친 특권 의식에 대한 반발심과 국민 생존권이라는 대의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증원 시 소득이 감소하기 때문에 반발한다. 지난 27년 동안 의사 정원은 쭉 3,058명이었다. 전체 의료 분야 소득을 3,058등분해 나눠 온 셈이다. 사람이 늘어나면 그만큼 파이도 줄어든다. 당연한 결과다. 의사 측에서는 박탈감이 들 수밖에 없다. 의대 6년, 수련의 5년을 합쳐 11년 동안 공부해 의사가 된다. 인기 과를 전공하려면 그만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의사들에게 소득은 곧 노력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다룬다면 깊이가 너무 얕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더 옳은가?'를 따지면 결국 더 공적인 대의를 주장하는 쪽 손을 들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현재로서는 정부 측이 더 우세한 고지를 점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우리 사회에서 간호사, 조선공, 공무원, 군인 등 인력난에 만성으로 시달리는 분야가 많다. 증원을 시도한 분야도 있었지만, 문제가 해결된 사례는 없다. 다시 문제로 돌아왔다. 왜 우리 사회는 의사 증원에 시끄러운가? 예비 언론인으로서, 시비를 가리는 판관이 되기보단 넓은 시야로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초고]

2019년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했다. 그중 반근착절(盤根錯節)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얽히고설킨 뿌리라는 뜻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듬해 문재인 정부는 4대 의료정책 개혁을 시도했다.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다. 갑자기 터진 코로나 사태 때문이다. 결국, 개혁은 정부와 의사협회가 급한 불부터 끄자는 데 동의하면서 중단됐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그동안 숨죽이던 의료개혁 불씨가 살아났다. 치료하지 않은 암이 전이되듯, 문제는 사회 곳곳으로 퍼져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칼을 대야 한다.

 

의료개혁은 어려운 문제다. ‘정부와 의사, 둘 중 누구 주장이 더 옳은가?’라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각자 명분이 확실하다. 정부는 의료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의대 중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경남에서 사망한 심장질환자는 서울보다 60% 높고, 전남에 사는 산모가 분만 시설로 이동하는 시간은 서울보다 13배 이상 길다. 정부가 지방 의료 문제 해결책으로 의대 증원 카드를 내세운 배경이다. 의사들은 생계를 지키기 위해 증원에 반대한다. 현재 대한민국 의사 정원은 1998년 이후 3058명을 유지하고 있다. 27년째 그대로다.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CBS 인터뷰에서 ‘의사들이 의대 정원을 늘어나면 의사 사회 내부 경쟁이 심화할까 걱정한다.’라고 밝혔다. 원초적이지만, 직업인으로서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을 반기긴 어렵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한 진짜 이유는 사회가 보상체계 설계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의사 정원을 늘리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지금까지 사례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간호사 증원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 당시 간호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호대 정원을 계속 늘렸다. 그러면서도 박봉과 후진적 근무 문화 등 처우 개선이 우선이라는 지적은 무시했다. 그 결과 실질 간호사 면허 사용률은 40%대에 머물렀고, 남은 간호사들마저 영미권으로 이탈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조선소에서, 요양원에서, 군대에서, 공무직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의대 증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전공의들이 자발적으로 기피 과를 선택하도록 근무 여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우선이다.

 

이제 기존 성장발전 모델을 버릴 때다. 한국은 지난 50년 동안 빠르게 발전했다. 그러다 보니 경공업 기반 초 고성장 인구 팽창 시기에 먹혔던 보상체계를 바꿀 여유가 없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원인이다. 불완전하게나마 미국식 보상체계를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다. 미국은 외과 인력 부족 현상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기피 과임에도 외과의가 타 전공의보다 2~3배 많은 연봉을 받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 예상 경제 성장률은 2%다. 지금 희생하고 미래에 돌려받는다는 논리는 더 통하지 않는다. 정부는 당장 체감할 수 있는 확실한 보상 없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반근착절은 후한서 우후전에 나온다. 우후는 후한 사람이었다. 그는 강족이 국경을 침범했을 때 대장군 등즐과 전쟁에 나섰다가 간언으로 등줄에게 미움을 샀다. 이후 하남 조가현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등즐은 우후를 신임 현령에 임명했다. 사실상 죽으러 가라는 명령이었다. 우후는 명령을 듣고 이렇게 말한다. “신하로서 험한 일을 피하면 안 된다. 서린 뿌리와 뒤틀린 마디를 피한다면 어디서 예리한 칼을 휘두르겠는가?” 이 말은 반근착절에 담긴 뜻을 잘 설명한다. 뿌리 깊은 보상체계 문제를 바꾸는 일도 마찬가지다. 파국이 가깝다. 해묵은 뿌리에 칼을 휘두를 때다.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을 망설이면 대한민국은 죽는다.


[수정방안]

논점은 잘 짚었다. 그러나 약하다. 논술은 의견을 개진하는 글이다. 한 쪽에 편향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초고를 살펴 보면 본문 두 번째 문단에서부터 본격적인 주장이 등장한다. 현행을 짚는 첫 번째 문단은 삭제할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하고자 하는 말로 들어가는 게 낫다.


따라서 주장과 근거를 어떻게 연결할지부터 고민했다. 숙고한 끝에 '주장-근거-해결책' 순으로 세 가지 문단을 재구성했다.


더 강력한 의견 전개를 위해 본문을 다음과 같이 수정했다.

●서론

고사를 인용했지만, 어째서 의료개혁이 반근착절인지 한 눈에 보기 어렵다. 왜 의료개혁이 반근착절인가? 연결고리를 더 강화하자.

●본문1

의사 쏠림 현상이 일어난 이유 = 보상체계 설계에 실패한 사회

●본문2

보상체계 설계에 실패한 사회에서 증원이 답이 될 수 없는 사례들 = 간호사, 조선업

●결론

반근착절은 의미가 두 개다. 1) 복잡한 문제, 2)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 자세 따라서 본 문제를 대하는 자세도 함께 제시하는 방향으로 서술하자.


[퇴고]

2019년 교수신문이 발표한 사자성어 중 반근착절(盤根錯節)이 있다. 얽히고설킨 뿌리라는 뜻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뜻한다. 고사를 보다 보면 최근 정부 의대 정원 문제가 떠오른다. 정부 강행 기조에 대한의사협회를 필두로 전국 의사들이 파업에 나섰다. 총선 지지율 확보가 급한 정부와 수입 감소를 막기 위한 의사는 서로 물러서지 않는다. 의대 증원 여부를 결정한 다음도 문제다. 증원만으로 불균형 현상을 해소할 수 없고 반대로 현상을 유지했을 때도 이미  발생한 문제를 수습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의료개혁은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라는 점에서 반근착절이다.

 

의료개혁이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는 보상체계 설계에 실패한 사회에 있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주장하는 이유는 의료 불균형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의료 불균형 현상은 쏠림 현상 때문이다. 면허를 취득한 의사 다수는 고소득을 보장하는 수도권과 미용 분야로 진출했다. 지역에 따른 의료 격차 심화와 전공의별 인적구조가 기형적으로 형성된 배경이다. 그러나 무조건 의사만 탓할 순 없다. 서울보다는 지방을, 미용보다는 필수의료 분야를 선택할 만큼 매력적인 유인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의료 시스템은 사명감 있는 의사들 소수가 희생한 덕에 유지됐다. 이번 문제는 희생에 의존하는 시스템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증거다.

 

의사뿐 아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사회 전반에서 보상체계 설계 실패로 인한 문제를 겪고 있다. 간호사 증원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코로나 당시 간호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호대 정원을 확대했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됐을까? 답은 그렇지 않다. 정책을 편 이후로도 실질 간호 면허 사용률은 40%대를 유지했고 영미권 간호 인력 유출 현상도 빨라졌다. 원인은 간단했다. 간호업계 기피를 견인하는 박봉과 후진적 근무 문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선업계도 비슷한 상황이다. 힘들고 위험한 근무에도 노동자 실소득은 한 달 기준 209만 원 선이다. 정부는 여기서도 외국인 노동자 증원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여의치 않다. 조선업에 종사하는 전체 이주 노동자 중 64%가 이직을 원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들은 증원보다 근무 여건 개선이나 봉급 인상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이제 배수진을 칠 때다. 현행 보상체계로 버틸 수 있는 것도 2025년까지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로 인구 문제다. 통계청은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2025년부터 본격화한다고 전망했다. 다음으로는 저성장 문제다. IMF는 2025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2.1%로 예측했다. 그러나 이조차도 구조개혁 시행을 가정했을 때 얘기다. 실질경제성장률이 예상치를 밑돌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 경제는 고성장 인구 팽창 시기 보상체계를 유지해 왔다. 이제 같은 전략은 더 통하지 않는다. 모든 지표가 인구와 경제력 감소를 예고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저성장 인구 감소 시기에 대비한 새로운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반근착절은 역사서 사기 후한서 우후전에 처음 등장한다. 한나라 사람인 우후는 오랑캐와 전쟁에 나섰다가 상관에게 간언으로 미움을 샀다. 훗날 반란이 일어나자 상관은 우후를 죽게 할 심산으로 반란 토벌을 명령한다. 주변 사람들은 소식을 듣고는 직접 나서서는 안 된다며 우후를 말렸다. 그러자 우후는 “신하로서 험한 일을 피해선 안 된다. 서린 뿌리와 뒤틀린 마디를 피한다면 어디서 칼을 맞붙겠는가?”라며 반란군 진압에 나섰다. 이처럼 반근착절에는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뜻과 함께 문제를 피해선 안 된다는 뜻도 함께 담겨 있다. 뿌리 깊은 보상체계를 바꾸는 일에도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문제를 덮을 시기는 지났다. 더 늦기 전에 칼을 댈 때다.


[결론]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문제에만 천착해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논하는 범주를 벗어나고자 노력한 부분은 높게 사고 싶다. 논술은 사회 현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그에 대한 내 생각은 어떤가를 보여주는 글이다. 문제를 바라볼 땐 언제나 흑백론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야 한다. 시야가 좁아지는 만큼, 얕은 글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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