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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훈 Feb 15. 2024

북한이 남한을 주적으로 명시한 것과 대응책을 논하시오.

우리는 영원한 분단 국가를 꿈꾸는가?

[논술 주제 발췌 이유]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최근 남한을 '주적'으로 헌법에 명기했다. 헌법은 국가 존재 이유를 담은 법이다. 표면적이었던 갈등이 보다 근원적으로 변했다는 확실한 증거다. 그동안 북한이 남한을 적대하기는 했지만 굳이 개헌을 하면서까지 적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핵 전문가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는 북한이 핵개발에 열중하는 이유는 미국과 협상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도 2000년대 초반 6자회담에서 2023년 베트남 회담에 이르기까지, 북한이 협상하고자 하는  대상은 언제나 미국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닿을 일 없어 보였던 두 국가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수행했다. 상당한 진척을 이루기까지 했으니 김정은도 상당한 기대를 걸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정부가 바뀌면서 북한은 남한에 전같은 역할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북한이 느낀 실망과 분노가 헌법에 주적을 적는 방식으로 터져나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 이유다. 자본주의 시장 체제는 이득이 있다면 적과도 손을 잡는 체제다. 그러나 유달리 한국에서만큼은 잘 되지 않는 상황이다. 비슷하게 우리나라를 침공했던 일본에는 과거사 문제를 덮자고 주장하지만, 북한을 상대로는 어림없는 일이라며 선을 긋는다. 왜 그럴까? 영원히 분단 국가로 남는 게 목표가 아니라면 생각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초고]

“쌀 떨어졌나 보네” 북한이 무력 도발할 때마다 으레 나오는 반응이다. 분단 70년 동안 북한 위기론은 그친 적이 없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백두혈통은 건재하다. 바깥에 있는 적으로 내부를 결속하는 전략이 먹힌다는 뜻이다. 이번만큼은 다르다. 남북교류연락소 폭파에 이어, 이번에는 헌법에 우리나라를 ‘주적’으로 명시했다. 1974년 7.4 남북공동선언 이후 꾸준했던 교류를 아예 끊어내겠다는 기세다. 그동안 북한은 협상 테이블에 나서는 조건으로 우리로부터 쌀도, 소도, 돈도 얻어갔다. 북한 경제 사정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헤어지자는 말을 남발하는 연인은 이별을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교류를 끊겠다며 엄포를 놓으면서도 지원을 놓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북한에 1995년부터 2021년까지 3조 4014억 원 규모 재원을 지원했다. 유엔 가입국 가운데 최대다. 지원이 활발했던 2007년 2월 13일,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재가입과 핵무기 개발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나 상황은 곧 반전됐다. 남한에 보수 정권이 연달아 집권했기 때문이다. 8년간 대북 지원이 중단되자 살길이 막막해진 북한은 핵무기에 더 집착했다. 그렇게 2015년엔 6차 핵실험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 들어 지원이 재개되자 2018년에는 원자로를 폭파하기도 했다. 북한이 전하는 메시지를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은 천년의 적”이라고 말했다. 그 아버지인 김정일 역시 “중국은 천년의 원수이니 중국을 멀리하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최근 북한 행보는 이런 생각을 확실히 보여준다. 북·중 관계가 우호적이라는 인식과 다르게, 북한은 러시아에 더 힘을 쏟는다. 남북 관계를 끊어내겠다고 소리치면서 동시에 푸틴의 방북 일정을 정한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두 나라가 힘을 합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포탄과 곡물을 맞교환했을 뿐 아니라, 지난해 9월 보스토니치에서 열린 회담에서는 북한에 로켓 기술도 제공하겠다고 했다. 상대가 중국이었다면 북한과 맺지 않았을 협약이다.


통일을 원한다면, 우리는 북한이 어려울 때 러시아보다 먼저 찾는 대상이 돼야 한다. 1989년 독일 통일은 동독이 서독에 다가온 덕에 이뤄졌다. 1980년대 동유럽은 혼돈이었다. 처음은 정치였다. 소련은 동유럽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운동을 무력 진압했다. 오래 버텼으면 다행이었겠지만, 소련은 10년도 버티지 못했다. 그러자 동유럽 경제가 흔들렸다. 의지할 곳이 사라진 동독은 서독과의 교류를 확대했고 독일은 통일됐다. 마찬가지다. 빌리 브란트 내각 이후 서독 정부가 일관되게 동방정책을 추진했듯 우리 역시 일관된 대북정책을 유지해야 한다. 정권에 따라 협상 여부가 결정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북핵 위협에 시달려야만 한다. 잃을 게 많은 우리로서는 달갑지 않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정적에게 일부러 희소가치가 높은 책을 빌렸다. 그리곤 감사 편지와 함께 되돌려주며 친구가 됐다. 사이가 좋지 않은 상대에게 호의를 베풀고 관계를 개선하는 법칙은 이후 ‘벤 프랭클린 효과’라는 심리 용어로 자리 잡았다. 국가 관계도 마찬가지다. 냉담해진 대북관계에 적의로 대응하면 남은 건 악화일로뿐이다. 꿈에도 소원이 통일이라면 북한을 일관되게 대해야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자. 북한 문제는 생각만큼 복잡한 적이 없었다.


[수정방안]

전반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논술은 의견을 담아 현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밝히는 글이다. 초고를 살펴보면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사실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견이 없다. 팩트에 근거해 쓴 글은 분명 좋다. 하지만 사실관계는 어디까지나 의견을 뒷받침하는 구조로 사용돼야 한다.


따라서 본문을 해체하고 내 의견을 어떻게 정할지부터 다시 고민했다. 숙고한 끝에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는 일이 옳지만, 정부가 소극적이다. 이는 옳지 않다'라는 입장을 정했다.


보다 입체적이고 재밌는 의견 전개를 위해 본문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했다.

●본문1

사실 정부는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 보수정권이 북풍을 사용한 사례 중심으로

●본문2

돌파구는 북한이랑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이다. = 그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현안들

●본문3

정부가 변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죽는다. = 가스요금 상승은 국민 삶을 어렵게 한다.


[퇴고]

‘우리 주적은 누구인가?’ 그동안 우리나라는 북한을 주적으로 여겼다. 헌법에 대한민국 영토는 휴전선 이북 지역과 그 부속 도서로 돼 있기 때문이다. 김씨 일가가 영토를 무단 점거했다는 이유는 북한 정권을 주적으로 여기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북한은 달랐다. 김씨 정권에게는 언제나 미국이 주적이었다. 자국을 테러지원국으로 규정하고 무역 제재를 걸어 경제를 어렵게 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제 남한이 주적이 됐다.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지 않은 정부에 북한이 실망한 결과다. 남북한 모두가 경제난을 해소하길 원하지만, 정부는 북한과 손잡으려 하지 않는다.


정부는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보수 정권은 위기마다 북풍을 활용했다. 86년 평화의 댐 사건과 98년 총풍사건이 대표적이다. 전두환은 86년 대통령 직선제로 정권 유지 위기를 맞았다. 이때 북한이 금강산 댐 건설로 서울에 200억 톤 수공을 벌인다며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98년에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지율이 김대중 후보에 뒤처졌다. 그러자 이회창 캠프 소속 오정은 전 청와대 행정관이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를 만나 휴전선 인근 무력 도발을 사주하려 했다. 문재인 정권 들어 사그라들었던 북풍은 최근 9.19 군사합의 파기로 되살아났다. 줄곧 내림세였던 윤석열 대통령 지지도는 북한에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발언 이후 3% 상승했다. 악재에 시달리는 현 정부로서는 북풍을 포기할 수 없다.


정부가 위기를 넘기려면 북한과 화합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낮은 지지도에 시달리는 이유는 경제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PF 대출 파동으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고, 해외에서는 국제 분쟁으로 원자재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때 북한 무역 제재 해소는 우리나라 경제에 도움이 된다. 풍부한 북한 천연자원을 값싸게 수입할 수 있을뿐더러, 기반시설이 부족한 북한을 상대로 건설업 수출도 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다. 카이스트 경제연구원 연구보고서는 GDP 1.5%를 국민연금에 투입할 시 연금 고갈을 영구히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과 평화 무드로 접어들면 GDP 2%를 차지하는 국방비를 연금 예산에 투입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가 경제 침체뿐 아니라 국민 복지 문제도 해결할 열쇠인 셈이다.


문제는 정부가 이런 문제 해결에 관심도, 의지도 없다는 데 있다. 북한과 대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지난해 러시아발 천연가스 수입 파동으로 국내 난방비가 전년 대비 40% 상승했다. 이마저도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 난방공사 누적 적자는 9조 원이었다. 적자 해소를 위해 필요한 적정 금액은 kWh당 59.6원이지만, 현재 책정 가격은 13.1원이다. 현행 가스 요금에서 4배를 올려야 한다. 가장 빠른 대안은 북한을 거쳐 중앙아시아로 가스관을 연결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북한과 적대하는 현재로서는 실현할 수 없다. 현행대로라면 국민이 전례 없는 물가상승을 경험할 날이 머잖게 된다.


‘우리 주적은 누구인가?’ 미국과 승산 없는 전쟁을 이어가던 북한은 남한을 주적으로 변경했다. 90배에 달하는 GDP 차이에도 약점을 공격하는 전략이 먹힌다. 유일한 돌파구는 화해뿐이지만, 정부는 화해할 마음이 없다. 알면서도 안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에 의지가 없다. 5년 임기만 채우고 물러나면 된다는 안일한 정부 태도가 한반도를 공멸로 이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마다 내년 겨울이 추워진다. ‘누가 진짜 주적인가?’ 답은 모두가 안다.


[결론]

의견을 담으니 한결 낫다. 논술을 작성할 때는 의견을 먼저 정하고, 내용이 참신한지를 살펴보는 과정을 우선해야 한다. 사례 중심으로 흘러갈 경우 글이 난잡해지고 주제가 흐려져 결국 주제 일관성을 해치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는 한반도 분단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 한 반복된다. 언제고 출제될 수 있는 주제인 만큼, 평소에도 대북관을 잘 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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