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주고받는 행위 속에 들어 있는 의미
7시가 넘어 집에 돌아와 홀로 저녁상을 차려 먹다가 식탁 건너편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다음 날인 2월 21일 금요일 칸에는 붉은 볼펜으로 힘주어 빽빽이 칠한 붉은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그 밑에는 ‘부모님 32주년 결혼기념일’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한참 달력을 바라보다 김이 가라앉은 인스턴트 사골 국물에 잡곡밥을 한 사발 말아 입에 욱여넣으며 ‘내일은 퇴근길에 꽃을 사야겠다.’라고 무심코 생각하고 말았다. 지인과 대화할 때마다 튀어나오는 ‘너 대문자 T야?’라는 질문은 그동안 감수성과 무슨 원수라도 진 듯, 내 삶이 이성을 중심으로 흘러왔음을 보여준다. 화병에 심으면 사나흘 예쁘다가 그다음 일주일 내내 시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는 이유로 꽃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내 성격 때문일 테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까지 매년 기념일과 어머니 생신 때마다 화원에 들러 꽃다발을 산다.
금요일 퇴근길 화원에 들러 5만 원어치 꽃다발을 주문했다. 미리 전화로 예약해 완성된 꽃다발을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서는 건네드리기도 전에 꽃이 시들 것만 같았다. 나는 기특하게도 분주하게 가위를 꺼내 드는 여주인에게 가식적인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지갑에서 누런 지폐를 꺼내 ‘현금으로 드릴 테니, 신경 좀 써 주세요.’라는 부탁도 잊지 않는다. 10분 동안 어색한 침묵이 지나고, 꽃집 유리문을 나서는 내 손에는 안개꽃이 장미를 둘러싸고 있는, 푸짐한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도착해 식탁 위에 꽃을 내려두고는,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물기가 축축한 수건을 어깨에 두르고 다시 거실로 나왔을 때, 식탁 의자에는 미소 가득한 표정으로 꽃다발을 들여다보는 어머니가 앉아 계셨다.
인류가 꽃을 선물해 온 역사는 선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4만 년 전 독일 북부와 네덜란드 일대에는 유럽인의 시조 격인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다. 신체 구조와 생활양식 등에서 독창적인 문화를 보이는 이들의 특징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풍습은 장례 문화다. 고인과 작별하는 과정에 ‘꽃’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풍습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설이 제시됐지만, 그중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학설은 이들의 장례 풍습이 신앙관에서 비롯했다는 설명이다. 만물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사후 세계로 떠나는 고인의 안녕을 비는 과정에 꽃을 활용하는 모습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꽃 사랑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며칠 전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8시에, 문서 작업을 하기 위해 집 근처 카페를 찾았다가 좌절했던 경험이 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작업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중년 여성 대여섯 명이 정중앙 테이블을 점령하고 마주 앉아 큰 소리로 수다를 떠는 광경을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커피잔이 가득 실린 넓적한 접시와 함께 꽃다발들이 어수선하게 놓여 있었다. 창가 테이블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면서 한 시간 동안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그녀들이 ‘야간 대학교 졸업생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본래 2월이 학사모를 집어던졌을 때 쾌감과 지긋지긋한 논문에서 벗어난 기쁨을 꽃다발을 주고받으면서 나누는 달이라는 사실을, 수년 전 학교를 떠나온 탓에 잊고 있었다.
꽃을 볼 수 있는 곳은 졸업식뿐만이 아니다. 결혼식장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손에 부케를 들고 식장에 들어서는 모습을, 장례식장 빈소에서능 흰 국화꽃으로 영정 사진을 둘러싼 광경을 볼 수 있다. 악사가 거리를 무대 삼아 기타나 색소폰을 부는 유럽 광장에는 장미꽃을 든 채 거리의 커플 주변을 맴도는 잡상인이 보이고, 첫날밤 은은한 조명 아래 하얀 시트 위에 흩뿌려진 장미꽃은 신혼여행을 떠나는 거의 모든 부부의 로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은 여전히 관혼상제에서 축하와 위로의 말과 기쁨과 슬픔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꽃으로 대신 전하고 있다. 식물이 온 힘을 다해 피워낸 아름다움은 금세 썩어 없어질지언정, 인간에게 강력한 감정을 경험을 선물하는 존재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최근 도래한 기후위기와 물가상승이라는 파도에 인간이 마음을 전하는 사소한 의식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현금을 받아 든 꽃집 여주인은, 포장하는 내내 “예전에 안개꽃은 넣어 달라면, 거저 주는 덤이었잖아요.”라며 어색한 대화를 이어갔다. 자신이 베푸는 호의가 거저가 아님을 강조하는 말속에는 티를 내야만 감정을 알아주는 야속한 세상 분위기가 한겨울 유리창에 서린 김처럼 끼어 있다. “졸업식이 있는 2월이 반짝하고 지나면, 이제 5월까지는 보릿고개예요.”라는 푸념 섞인 추임새의 뒤에는 공연히 마음을 전하는 데도 기념일이라는 핑곗거리가 필요해진 각박한 인간사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매년 오만 원권 지폐를 건네고 받아 든 꽃다발은 해마다 쪼그라들기를 반복한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어디서 이렇게 풍성한 꽃다발을 사 왔어?”라며 호들갑을 떠는 어머니는 분명, 꽃다발이 풍성하다는 사실보다도 강퍅한 아들이 여전히 마음속에 자신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특하게 여기고 계셨을 것이다. 공연히 멋쩍어 “엄마 꽃 좋아하잖아.”라는 한마디로 넘기면서도, 가족 사이 마음도 이렇게 전할 수밖에 없게 된 현실이 퍽 서럽다고 생각했다. 꽃은 마음이고 꽃을 선물하는 행위는 마음을 전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음에 값을 매기고 그 마음을 전하는 일조차도 사치가 된 세상에서 사는 것은 아닐까. 꽃다발 포장지 밑단을 벗겨내 꽃병에 담아 거실 장 위에 올려 둔 모습이 어딘가 어색하기만 하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감정 표현은 점점 사치가 되어 간다. 수많은 사회학자들이 근대 이후 이성이 세상을 잡아먹었다고 진단했으니, 낭만적인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순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가 말한 대로, 이성이 표방하는 인간 지식은 경험과 감수성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삭막한 출근길 바쁘게 오가는 발걸음 너머 역사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꽃집은 ‘나 홀로’ 튄다. 창백하고도 푸른 도시 풍경 위에서, 꽃은 삭막한 세상에서 자신을 받은 사람의 얼굴이 얼마나 빛나게 웃을지 알기라도 하듯 형형색색을 자랑하며 밝게 빛난다. 출근길마다 지나치는 지하철 역 개찰구 앞에서 지갑을 꺼내다 마주한 부조리한 풍경의 불협화음에서, 비로소 이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여전히 ‘경험과 감수성’ 위에서 지식을 낳는 존재임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