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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언론과 정치가 만든 ‘프레임’

언론이 말하는 '중산층'은 누구인가?

by 전지훈

상속세 개편이 서울 중산층의 세 부담을 줄이는지를 알아보기 전에, 언론이 이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2025년 3월 13일 자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배우자·2자녀 땐… 20억 집 상속세 한 푼도 안 낸다> 기사에는 현행 25억 원 규모 자산을 상속할 때 각각 현행 상속세와 개정 이후 세율을 비교한 내용이 담겼다. 현재 우리나라는 상속 자산 총액에 세금을 물리는 방식을 활용한다. 배우자에게 세금 없이 줄 수 있는 금액은 배우자 상속액 10억 원에 일괄공제액 5억 원을 더해 모두 15억 원이다. 25억 원에서 세금이 붙지 않는 배우자 상속분을 제외하면 10억 원이 남는다. 현행 세법상, 10억 원에는 10~30% 세율이 붙는다. 이 경우 상속세는 2억 2천만여 원이 된다.


이제 배우자와 자녀가 물려받은 금액만큼 세금을 내는 유산 취득세를 적용해 보자. 현재 정부는 배우자에 상속 한도를 10억 원으로 늘리고, 배우자와 자녀의 상속 금액 비율을 적용해 추가로 세금을 매기지 않는 법정 상속분을 30억 원으로 확정하면서 성인 자녀의 상속 한도를 5억 원까지 늘리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때 상속세를 최소화하려면, 배우자에게 15억 원, 성인 자녀 두 명에게는 각각 5억 원씩 물려주는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 기사에 따르면, 이 경우 자녀 몫인 5억 원의 법정 상속분인 2억 원에 각각 10% 세율이 적용돼 상속세는 6천 6백만여 원으로 줄어드는 결과가 나온다. 이처럼 상속세를 유산세에서 유산 취득세로 개편하면, 직계 가족에게 25억 원을 물려줄 때 적용되는 세금은 총 약 1억 5천만 원으로 70% 정도 줄어든다.


3월 13일, 조선일보 A01면 <배우자·2자녀 땐… 20억 집 상속세 한 푼도 안 낸다>, 박상훈=그래픽


정부는 상속세를 개편할 경우, 매년 총 2조 원 규모 세수 결손이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런데도 탄핵 정국에서 방송법 개정안과 특검, 반도체 특별법과 추가경정예산안 등 사회와 경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안마다 대립해오던 여야 정당이 한목소리로 상속세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평소 진보와 보수라는 정파적 논조에 따라 같은 사안도 서로 다르게 보던 언론도 상속세법 개정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같은 자료를 활용하고 있다. 법안 개정 과정에서 진보와 보수 진영의 초당적 합의가 돋보이는 지점이지만, 두 진영의 '오월동주'는 어딘가 어색하게만 보인다. 앞서 ‘국가 권력은 국고에서 나온다.’라는 말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더 강렬한 위화감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언론이 ‘25억 원’이라는 구체적인 금액을 예시로 들었다는 사실과 국회가 큰 갈등 없이 법안을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언론이 상속세법 개정의 쟁점을 설명하면서 20억 원이라는 금액을 설정한 이유는, 물론 같은 기관이 제시한 자료를 활용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론이 예상 독자층을 평균 아파트 가격이 14억 원에 달하는 서울 지역에 거주하는 ‘중산층’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일견 타당한 논리지만, 서울이라는 지역적인 특성을 고려해도 재산 20억 원은 과하게 많은 액수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들은 중산층을 규정할 때 중위 소득 75~200% 구간을 적용하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기준을 활용한다. 통계청의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기준 자산에 이 기준을 적용하면, 2024년 기준 한국 중산층 가정의 평균 자산의 상한선은 언론이 제시하는 자료의 액수보다 15억 원 적은 '5억 4천만 원'이다. 이런 점에서 언론이 제시한 '중산층' 기준은 국민을 대상으로 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하는 '중산층'은 대체 누구를 기준으로 삼은 것일까. 대한민국에서 단 한 곳. '자산 상위 1%'에 해당하는 '20억 원' 자산이 '중위'를 차지하는 집단을 찾으면 답이 보인다. 바로 ‘대한민국 국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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