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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게이트의 부상

국고 사유화 시대의 도래

by 전지훈

국가의 권력은 국고에서 나온다. 회식 자리에서 가장 여유로운 사람은, 모인 사람 중에서 가장 두꺼운 지갑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이 원칙은 국가적 단위에서도 똑같이 작용한다. 근대 이전 유럽의 전제군주정을 떠받친 논리는 ‘국왕이 신으로부터 국가를 통치할 권위를 물려받았다’라는 ‘왕권신수설’이었다. 당시 유럽을 통치하던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프랑스 루이 14세, 스페인 펠리페 2세는 절약과 약탈, 세금과 식민지 사업 등에서 막대한 금은을 거둬들였다. 국고에 막대한 자산을 쌓은 덕분에 당대 군주들은 대중의 반대를 억누르고 의회 해산과 대규모 토목 사업(베르사유 궁전 건설), 전쟁(레판토 해전)을 거침없이 벌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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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우: 스페인 무적함대의 레판토 해전


반대로, 텅 빈 국고는 무력한 통치로 이어진다.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 집권한 제임스 1세가 사치스러운 궁중 생활로 국고를 탕진한 결과 영국에서 명예혁명이 일어났고, 루이 16세는 베르사유 궁전 건설로 왕실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콩코드 광장의 단두대 앞에 서는 처지가 됐다. 이런 역사적 관점은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로 ‘국회의 예산 삭감’을 콕 집어 이야기한 사례에도 적용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취임 후 2년 동안 87조 원 규모 세수 결손을 겪는 와중에, 예비비와 정부 부처 특수활동비 예산을 4조 1천억 원 삭감한 올해 예산안은 정부 정책 동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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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영국 명예혁명(호메인 데 후게, 제임스 3세의 대관식), 우: 프랑스 혁명(외젠 드라클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문제의 배경에는 한국이 지난 코로나 19 팬데믹 시기에 경기 침체 현상을 막기 위해 국가 채무 규모를 늘리는 방향으로 전개했던 경제 정책이 있다. 4년간 확장적인 경제 정책을 시행한 결과 현재 한국 국가부채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49%에 달하는 1400조 원을 넘어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05%에 비해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걱정하기에는 이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세수 결손이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거시경제학 공식을 따르면, 지금은 국가가 쓰는 돈을 줄이면서 동시에 세입을 확대하는 긴축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여기에 무주공산이 된 대통령직은 또 다른 변수로 작용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 가능성이 커지면서 제기된 ‘조기 대선 가능성’은 경제 정책 전환에 적신호를 켰다. 아직 차기 대권 후보 가운데, 유권자 절반 이상이 지지하는 ‘유력 후보’는 없다. 지난해 12월 이후 현재까지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0~40%대 지지율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아직도 과반 지지율을 확보하진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연일 포퓰리즘식 행보가 계속된다. 얼마 전부터 정치권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상속세 개편’을 언급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언론은 이런 정치권의 행보를 ‘서울 중산층’에게 보내는 구애로 해석하고 있다. 과연 이들은 이번 정책의 최대 수혜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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