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고 코 베이는 감세 정책, 이제는 국민이 지켜봐야 한다
과거 절대왕정의 전유물이던 국고는 현대 민주주의 체제가 도래하면서 공유지가 됐다. 국민은 선거로 대리자를 지명했고, 그들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더 나은 정치 체제에 기대를 걸었던 국민의 순진한 믿음은 이번 상속세 개편안 앞에서 무너져내렸다. 이번 상속세 개편안이 추진된 배경에는 국고를 줄여 국가 동력을 저해하고 정치권에 자산 수혜를 집중하는 동시에 이를 ‘포퓰리즘 논쟁’으로 포장해 정책적 착시를 일으키는 3단 구조가 존재했다. 또, 언론이 정책을 설명하는 과정에 인용한 자료에 담긴 ‘25억 원’ 자산과 ‘성인 자녀 2명’이라는 조건도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정치권의 움직임을 단순히 75년 묵은 낡은 세법을 ‘조정하는’ 행보로만은 볼 수 없는 이유다.
앞으로도 제도권의 은밀한 행보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얼마 전 국회가 마찬가지로 초당적 협의로 통과시켰던 ‘국민연금 모수개혁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회가 국민연금 납부액을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3%로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유는 국민연금 고갈 시점을 2064년에서 2071년으로, 겨우 9년 늦추기 위해서였다. 더 나은 방법은 없었을까. 김우창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2024년 6월 23일, KBS에서 방영된 <이슈 pick>에서 보험료율을 3% 인상하고, GDP 1%를 국민연금 기금에 투자하며, 수익률을 1.5% 늘리는 ‘3115 개혁’을 시행한다면, 국민연금 고갈 문제를 영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김 교수는 ‘3115 개혁안’을 발전시켜, 22대 국회에 소득대체율을 13%로 현행보다 4% 올리고, GDP 1%를 투자하면서 국민연금공단의 기금운용수익률을 6%로 조정하는 내용을 담은 ‘416 개혁안’을 제출했다. 이 경우 소득대체율을 45%로 5% 올려도 국민연금은 100년이 넘게 고갈되지 않는다. 얼마 전 결의했던 개혁안보다 나은 대안이 있었음에도 국회가 ‘국고를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고수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수개혁안에 포함된 4% 보험료율 인상 결정은, 국회가 김 교수의 제안을 절반만 수용했음을 드러낸다. 우리는, 상속세 개정과 마찬가지로 ‘초당적 합의’라는 표현으로 포장된 정책인, ‘반쪽짜리’ 연금 개혁안에서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국고를 투입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이 같은 사례들에서, 우리는 정치권이 세금을 ‘공동체의 국고’가 아닌 ‘지대 추구의 원천’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고와 세금은 분명 국가권력의 원천이며, 안정적인 국민 생활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특정 권력이 이 에너지를 자신들의 지대 추구에 활용하는 순간, 국가는 공적 공동체로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상속세 개편은 앞으로 드러날 수많은 정책 난제의 서막을 올리는 신호탄일 뿐이다. 여야가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감세 경쟁에 나서는 이상, 앞으로 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 법인세 등 세수 기반을 훼손하는 감세 일변도의 각종 세법 개정안이 ‘중산층을 위한 법’이라는 탈을 쓰고 공론장에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제도권의 감언이설에 속지 않으려면, 국민이 눈을 부릅떠야 한다. 최근에는 입법부에서뿐 아니라, 행정부에서도 정책 설계자의 이해상충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달 31일 자 경향신문 사설란에는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지난해 30년 만기 미국 국채에 직접 2억 원을 투자해 수익을 냈음을 폭로하는 기사가 실렸다. 이는 그가 그동안 추진했던 환율·통화정책의 순수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물론, 법적 문제는 없지만, 국민이 정책 설계자가 자신의 결정으로 이득을 봤다는 사실을 아는 이상, 그의 정책이 공익적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우리는 2장에서 다뤘던 상속세 개정의 쟁점과 3장의 금융투자소득세의 도입 논의 배경과 철회 결정의 의미, 그리고 이번 장에서 다룬 국민연금 개정안 사례에서 그동안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국고'를 사용하는 정치 집단의 민낯을 봤다. 아마도 이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같은 문제가 더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같이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정치인들이 어떻게 정책으로 지대를 추구하는지를 파악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숙제가 남았다. 세금은 정치인의 의도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분야다. ‘사람의 말을 믿지 말고, 행동을 믿어라.’라는 오랜 격언대로, 우리는 ‘정치인의 말’을 듣기보다, ‘세금’에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