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리 꼴레리 속에 숨어 있는 철학과 과학, 그리고 글쓰기에 대하여
회식 자리에서 가장 불편한 순간은 언제일까. 아마도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는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억지로 입안에 털어 넣어야만 하는 순간이나, 나이 지긋한 부장님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차마 웃지 못할 아저씨 개그를 남발하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통상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들지만, 정작 본인이 어떻게 해 볼 수는 없는 막연한 처지에 놓였을 때 난감하다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만약, 누가 봐도 사귀는 티를 팍팍 풍기는 직장 동료 둘이 눈앞에 있다면 어떨까. 거기에 한술 더 떠서, 그 동료들이 서로 ‘안 사귀고 있는 척’까지 하고 있다면. 서로 무심한 표정을 유지하지만,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눈동자에서 꿀이 뚝뚝 떨어져 열린 창문으로 꿀벌이 꿀을 캐러 날아들 것만 같은 상황이라면. 누군가에게는 그 간질간질한 느낌이 흥미로울 수도 있겠지만, MBTI에서 T 성향이 99% 함유된 나에게는 숨이 막힐 정도로 괴로운 일일 성싶다.
시쳇말로 ‘불알친구’로 불리는 가까운 친구가 언제 생겼는지도 모를 연인과 닭살 돋는 장면을 연출할 때, 초등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중년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노인이 된 뒤에도, ‘얼레리 꼴레리’를 연발하며 그 모습을 놀리지 않고는 못 배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으레 친근함을 표시하는 장면이지만, 정작 우리는 친구의 연애를 불편해하거나 그 모습을 놀리는 이유를 잘 모른다. 더러는 ‘부러워서’라고 하고, 더러는 ‘어색해서’라고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지 않을까. 여기에 두 가지 방법을 적용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처럼, 철학적인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뇌과학자나 신경과학자들처럼 과학적인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먼저, 철학을 사용해보자. 고대 그리스 철학자였던 플라톤은 사랑을 육체적 사랑인 에로스와 이성적 사랑인 필리아, 철학이자 신앙적 사랑이었던 스테르게톤과 궁극적 사랑인 아가페라는 네 단계로 분류했다. 인간이 모든 현상의 본질인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사랑은 언제나 에로스에서 시작해 아가페로 흘러야만 하는 개념이었다.
이처럼 철학은 인간을 언제나 상위 개념을 추구하는 존재로 규정하지만, 정작 우리는 일상에서 친구의 닭살 돋는 애정 행각 같은 ‘에로스’적 사랑을 자주 맞닥뜨린다. “우리 애기 밥 먹었또?” 같은 표현에 사용되는 혀짤배기 어투나, 어떻게든 한 번 연인과 깍지 끼고 손을 맞잡고 싶어 안달난 모습은, 굳이 프로이트의 설명을 빌려오지 않는다고 해도, 발달심리학이 ‘유아 퇴행’으로 규정하는 대표적인 증상이다. 철학이 지향하는 방향성에 맞지 않는 형태의 사랑을 본 인간은, 알베르 카뮈가 이야기한 대로, 부조리함을 느낀다. 결국, ‘사람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때 때 욕을 한다.’라는 볼테르의 말이 우리가 친구를 놀리는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하는 셈이다.
이번에는 과학적인 방법을 적용해보자. 인간은 공포에 질릴 때나, 사랑에 빠질 때 같은 신체 반응을 보인다. 1974년 컬럼비아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였던 아서 아론과 도널드 더튼이 진행했던 ‘흔들다리 효과’ 실험이 그 근거다. 이들은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카팔라노 강에 있는 두 다리를 이용했다. 하나는 강 위 70m 높이에 놓인, 총 길이 140m짜리 다리였다. 아파트 30층에 달하는 높이도 무서운데, 이 다리는 바람이 불 때마다 엄청나게 흔들리기까지 했다. 반대로, 다른 다리는 강 위 3m를 지나는 튼튼한 삼나무 다리로, 앞선 다리와는 정반대 조건이었다.
실험은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 참가자와 여성 설문자가 다리 양 끝에서 걸어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 간단한 설문 조사를 하고, 실험이 끝날 때 여성 설문자가 개인 연락처를 건네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다들 알다시피, 실험 결과 흔들다리 위를 걸었던 남성 절반이 여성 설문자에게 연락했지만, 삼나무 다리 실험에 참여한 남성은 겨우 12.5%만 전화를 걸었다. 이 실험은 뇌가 신체 반응을 구분하지 못하며, 상황에 따라 감정이 ‘조작’될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밝혀낸 사례였다.
이제 우리가 친구의 연애를 지켜보는 상황에 ‘흔들다리 효과’를 적용해보자. 우리는 친구와 친밀감을 쌓으면서 ‘평소 모습’을 본다. 이런 상황에서, 연인과 함께하는 친구의 모습은 우리의 눈에 이질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낯설거나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 긴장하기 때문에, 우리는 여자친구를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보는 친구를 보며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당황), 근육이 수축하며(오글거림), 모골이 송연해진다(닭살돋음).
불안에 취약한 뇌는 이런 문제 상황을 빠르게 해결하려 하므로, 우리는 순간적으로 뇌로부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친구와의 관계를 다시 조정하는 방법을 사용할 것을 강요당한다. 그 결과, 우리는 친밀한 관계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 ‘얼레리 꼴레리’ 같은 조롱성 야유를 연발하며 거리를 벌리는 행동을 무의식적이고도 반사적으로 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내 사랑에는 관대하지만, 남의 사랑에는 엄격한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 태도를 보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가 회식 자리에서 당사자만 빼면 모두가 아는 사내연애 현장을 마주했을 때 난감함을 느끼는 이유는 이렇게 두 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어떤 방법이 더 옳으냐는 질문은 그다지 유효하지 않다. 오직 개인 성향에 따른 취향만이 중요할 뿐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은 제3 자격인 남에게 ‘내’가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를 설명하는 수단이다. 여기에는 앞서 설명한 방법처럼 철학적인 방법을 사용하거나,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만약, 더 나은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써먹어 볼 수도 있겠다.
여러분의 눈에는 어떤 방법이 더 나아 보이는가. 부디 이 질문이 흰 종이나 워드 프로그램의 빈 화면을 앞에 두고, 글을 쓰며 머리를 쥐어짜는 여러분의 고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