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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삼분 한국 정치, 통합은 가능한가

한국 정치에 열린 삼국시대

by 전지훈

최근, 잠들기 전 침대에서 수년 전 방영된 중국 드라마 <신삼국지>를 한 편씩 보는 취미가 생겼다. 첨단을 달리는 21세기에 1800년 묵은 낡은 역사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싶지만, 후한말 황제를 꿈꾸며 칭제건원에 나서는 제후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윤 대통령 탄핵 이후 대권을 꿈꾸며 출사표를 던지는 정치인이 판치는 모습이 떠오른다. 굳이 비유하자면 정권 연장을 꿈꾸는 국민의힘이 한나라 황실이라면, 적폐청산을 부르짖으며 4년 만에 중원을 되찾은 민주당은 위나라다. 또, 대선을 염두에 두고 미리 대권 도전을 천명한 개혁신당은 관계에서나 세력에서나 촉나라와 닮았고, 패권 다툼에서 밀려나 독자 세력을 꿈꾸는 원내 3당은 강동의 오나라 꼴이다. 아쉽게도 제갈량은 보이지 않지만, 한국 정계는 일찍이 ‘천하삼분지계’를 이룬 셈이다.


억지로 짜 맞추긴 했지만, 급조한 것치곤 나름 지형에 잘 들어맞는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과연 현재 한국의 정치진영이 삼국의 역사를 답습할까.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성싶다. 제후 중 누가 황제에 등극할지 불분명했던 역사와 달리 6월 3일에 열릴 22대 대선에서 누가 이길지가 꽤 분명하기 때문이다. 보수 정계와 언론이 연일 ‘이재명 때리기’에 나서고 있긴 하지만,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43% 지지율로 단독 선두에 오른 민주당의 정권 탈환 시도를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인 듯싶다. 또, 정치학자 강준만이 오늘 자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 <윤석열, ‘보수’를 죽이고 ‘중도’마저 죽이나> 막바지에 쓴 대로 ‘어쨌든 이재명은 안 된다.’라는 주장이 ‘대안’보다는 ‘공포’라는 감정을 우선하기 때문에 국민의힘의 주장은 힘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천하통일은 태평성대를 불러올까. 부정적이긴 마찬가지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표현이 말하듯, 현시점 이 대표의 대통령 당선은 거의 기정사실에 가깝다. 문제는 역사가 대선 이후로도 흐른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이 사실상 정치적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는 하나, 이들은 후한말 십상시처럼 '아직은' 국정을 쥐고 있다. 그동안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실정을 계기로 정권을 손에 얻어온 역사를 떠올려 보면, 이들은 어떻게든 차기 정부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려 할 공산이 크다. 이런 관점에서 추경에 미적대던 추경호 부총리가 영남권 산불을 계기로 ‘10조 추경’을 찔끔 내밀고, ‘여야 합의’를 문제 삼아 헌법 재판관 임명을 미뤄 왔던 한덕수 총리가 뜬금없이 헌법 재판관 3인 임명을 강행하는 모습은 모두 같은 동기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정당의 협치를 기대하긴 어렵다. 물론 하려고도 안 할 테지만.


더 큰 문제는 민주당 치세에 산적한 과제들이 모두 통합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우선 개헌이다. 권위주의 정부를 지탱하던 권력 구조를 재편하고, 견제 장치를 도입하기만 하면 됐던 1987년 당시와 달리, 지금은 ‘기본권’을 명문화해 ‘다원적인 정치체제’를 지탱할 근거로 삼아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크다. 법 전문가 일변이었던 당시와 달리, 민의를 수용해야 하는 오늘날 개헌 과정에서 통합은 제1순위 가치다. 89년 체제를 손봐야 하는 의료개혁도 마찬가지다. 현행 의료보험은 1980~90년대 고성장기 국민 소득 증가와 맞물리면서 잘 작동했지만, 초고령화와 저성장이 가시화하는 현재 국면에서 그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민간 의료에 의존해 온 기존 의료보험 체제의 대안으로 '공공의료'가 거론되지만,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여기에서도 '통합'을 등한시하기는 어렵다. 그뿐만 아니다. 세제 개혁, 국민연금 개혁 등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따라서, 집권 이후 민주당은 정국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 거의 불가능한 통합을 이뤄야 하는 난관을 필연적으로 맞게 될 것이다.


이번 대선이 지나면, 아마도, 민주당이 3년 만에 다시 정권을 잡게 될 것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41% 득표율로 당선됐음에도 단독정부를 수립했고, 명분을 앞세운 정치를 펼치는 오류를 범했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문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격하면서부터 시작된 정치 보복을 청산하는 동시에 그 굴레를 끊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실리보다 명분이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정치는 어디까지나 백성이 배불러야 유지되는 법이다. 일단 이재명이 지금까지 전면에 내건 ‘먹사니즘’ 비전은 그 목적에 충실해 보인다. 그가 다소 냉혹할지언정, 현실적인 위나라 조조를 닮았다는 점은 다행이다. 과연 그는 실리를 넘어 통합까지 이뤄낼 수 있을까. 그 성공 여부에 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정당의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크게 지나친 상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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