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에서 본 주연과 조연의 역할
지난 10일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목회자 이취임식과 권사 임명식이 열렸다. 20년 넘게 교회 다섯을 옮겨 다닌 부모님도 ‘만년 집사’를 졸업하고 ‘권사’가 됐다. 축하 자리에는 마땅히 꽃을 선물해야 한다는 관습 때문일까. 주방에는 식탁 위에 그득히 쌓인 꽃다발로 때아닌 ‘봄꽃 축제’가 열렸다. 행사가 끝난 날 밤, 부모님은 연신 “행복하다”고 말했다. 부모님을 보러 온 하객 가운데 두 시간 반 거리를 달려온 사람도 있었고, 이석증에 외출이 힘든 분도 계셨으며, 진심으로 새 출발을 환영하는 옛 교우도 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그런 부모님을 바라보며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나는 행사 때 임직패에 적힌 글을 읽는 역할을 맡았다. 원래 당직자가 해야 할 일이었지만, 성대 질환을 앓는 장로님이 거부하면서 내게 불똥이 튀었다. 지난해까지 지역 종교방송국 아나운서로 일했으니, 제삼자 눈에는 내가 적임자로 비쳤을 터다. 이런 탓에 나는 행사를 ‘참여자’가 아닌 ‘외부인’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행사 날 100평이 조금 안 되는 예배당에는 참석자 400여 명이 몰렸다. 예배석을 꽉꽉 채웠을 때 앉을 수 있는 사람이 180명을 조금 넘기는 수준이었으니, 본당은 출퇴근 시간대 ‘지옥철’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문제는 증서 수여 식순 때 전달할 꽃다발이 5개였다는 점이다. 자리가 부족한 가운데 예배석에 줄줄이 놓인 꽃다발은 누군가에게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행사가 시작하자마자 불호령을 들었다. “자리가 부족한데 꽃다발을 이렇게 늘어놓으면 우리는 어디 앉으란 말이에요?” 바로 앞줄에 앉은 중년 여자가 쏘아붙이듯 말했다. 말투에는 불만이 담겨 있었다. 손님으로서 불편함을 느낀 듯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먼발치에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부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분노는 정당했지만, 다음 행동은 그렇지 못했다. 여자가 꽃다발을 자리를 만들기 위해 서둘러 옮기자, 꽃잎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임자가 있는 꽃이니 부디 살펴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서로 상황을 오해한 탓에 공기가 다소 싸늘해졌다.
수난은 식순에서도 이어졌다. 대본을 읽으러 단상 앞으로 나가자, 내게 마이크를 건넨 중년 남자는 나를 보고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놀란 얼굴은 곧 엄격한 표정으로 변했다. “자네는 당회원도 아닌데 멋대로 식순을 읽나?” 나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행사 직전 목사님께 전달받은 지시 사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차례 반복되던 항의는 원래 담당자였던 장로님이 나서면서 일단락됐다. “그냥 진행하시죠”라는 당회장의 말에 남자는 못마땅한 듯 물러났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행사장에서 감정적으로 행동하진 않았다. ‘오늘 주인공은 내가 아니다’라고 생각한 덕분이었다. 우리는 각자 인생에서 주인공일지언정 모든 상황에서 주연 배우일 순 없다. 그날도 꼭 그랬다. 그러나 이 진리를 아는 이는 드문 듯싶다. 축하하러 온 자리에서 ‘감히 내가 왔는데’라는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앎과 실천이 다르다는 말은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하라’는 교훈에도 적용되는 듯싶다. 그날 밤 부모님은 내게 “네 덕분에 더 좋았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굳이 부모님께 억울함을 호소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날 본 두 중년 남녀는 어땠을까. 어쩌면 분을 삭이다 못해 “그 교회는 상도덕도 없는 곳”이라며 뒷말 잔치를 벌였을지도.
자기중심적인 자세가 무조건 나쁘지만은 않다. 그러나 내가 남의 생일 케이크 위 촛불을 끌 필요가 있을까. 행사장에서 나는 조연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어쩌면 조연은 남의 축제를 자기 감정으로 덮지 않는 미덕을 갖춰야 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