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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재건

by 전지훈

2025년 7월 15일 동아시아컵 결승전이 열렸지만, 가족 중 누구도 경기를 지켜보는 이는 없었다. 30년째 응원해 온 ‘한화 이글스’ 경기는 절대 놓치는 법이 없는 스포츠광 부자에게는 낯선 모습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기에서 어떤 철학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스포츠광 아버지는 “축구 경기 내용을 전술이 없으니 선수 개인 기량에 의존한다고 해석하는 사람이 많지만, 역사적으로 병법 없는 용장이 오래 간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철학 없는 운영으로 대중 관심에서 멀어진 분야가 어디 한둘인가. 최근 정치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한 신문 지면에는 ‘보수의 성지’ 격인 경북 지역에서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전체의 19%라는 기사가 실렸다. 정치공학적인 관점에서 낮은 지지율은 곧 낮은 효능감을 의미한다. 결국 이는 보수 정당을 보고, 국민 대다수가 피로를 느끼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렇다면 무익한 정치집단을 존치해야 할 필요도 없을 터다.

존재가치를 잃은 정치집단은 무용하다.그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했던 논리는 안보경진(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이었다. 사회학자 존 히빙이 책 ‘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적은 대로 보수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외집단을 경계하는 성향을 보이기에, 이는 정확한 분석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세계 시장에 문호를 개방해 성장을 거듭해 온 한국에 보수의 논리가 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재 자칭 보수 정당 인사라는 사람들이 국회 국방부 장관 청문회에서 ‘북한이 주적’이라는 발언에 주저했다며 자격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마찬가지로 보수를 표방했던 이전 정부가 북폭을 유도해 외환을 유도하려 했다며 의심받고 있다. 나아가 그들이 의지하는 미국 대통령은 그들이 괴뢰라고 불러마지않는 김정은에게 연일 친분을 과시하며 회담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코리아 패싱’을 당할 수 있다며 트럼프에 의존하려 하는 모습은 '자칭 보수'라는 대한민국의 정치집단이 목숨보다 소중히 여겨야 할 정체성마저 집어던졌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나마 이들의 존재가치를 ‘유일함’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현재로서는 그 완벽한 대체재가 존재하기에 그 당위성도 충분치 못하다. 대한민국 양당제를 구성하던 상대적 진보 진영이 ‘중도’를 부르짖으며 기존 보수의 자리를 꿰찼기 때문이다. 사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대선 유세 현장에서 외친 ‘민주당은 보수 정당’발언은 옳은 말이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현시점 보수는 지나치게 우경화된 나머지, 1970년대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마저 좌파 경제학자의 것으로 보이게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지나치게 우경화한 국내 정치 진영이 ‘보수 정당’이었던 민주당을 ‘진보 정당’으로 보이게끔 하는 착시를 일으키고 있었음을 뜻하기도 한다. 심지어 전통적인 가치를 지키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것을 보수의 핵심으로 본다면, 계엄 포고문을 선포해 전통적인 국가관을 파괴하고, 법정에서 온갖 추태를 보이는 윤석열을 여전히 대통령으로 추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수 정당을 과연 ‘보수’로 인정해야만 할까. 그보다는 다소간 이견은 있을지언정 계엄 위기에서 국가를 구하는데 앞장선 민주당을 보수 정당으로 생각하는 편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어떤 야구 감독이 이야기한 대로 ‘운동 선수들이 한낱 공놀이로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경기장에 와서 표를 사 준 관객이 있기 때문’이듯,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과 추태가 과분할 정도로 국민의 관심을 받는 이유는 바로 그들에게 표를 던진 국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표를 받을 당위를 상실한 보수 정당을 다시 일으킬 방법을 굳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했던 대로, 보수 정당이 나아가야 할 길은 번뜩이는 묘책으로 있었던 일을 덮는 것이 아니라, 통렬하게 반성하고 과거로부터 단절하며 쇄신하는 모습을 증명하는 길뿐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결국, 길고 긴 논의 끝에 제삼자인 우리에겐 그들을 다시 일으킬 어떤 의무도 없고, 스스로 쇄신하지 않는 정당의 미래는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게 되리라는 결론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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