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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ty Work

사회 속 두 더티 워크가 그린 평행선에 대하여

by 전지훈
Sharp teeth, bite first real bad business, that’s dirty work.

K-pop 걸그룹 에스파(espa)의 신곡 ‘더티 워크’의 가사다. 중독성 강한 비트에 빠져서 듣다 보니 가사까지 외워버렸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 대로 뮤직비디오를 프레임 단위로 끊어 보고 가사를 음절 단위로 분석하는 팬덤의 해석에 따르면, 이 노래가 전하는 메시지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과정에 따라붙는 불편한 시선을 이겨내자’라고 한다.(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메이킹 영상에는 디렉터가 멤버들에게 '최대한 짜증나는 느낌'으로 노래를 부르라고 지시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쯤 되니 떠오르는 책이 한 권 있다. 미국 저널리스트 이얼 프레스의 ‘더티 워크’다. 공교롭게도 제목이 똑같지만, 책을 처음 읽었을 때가 2023년 겨울이었으니 에스파 노래를 표절한 것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이얼 프레스는 저널리스트답게 교도소, 드론사령부, 육가공 공장, 석유 시추선 등 보이지 않는 노동 현장의 모습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풀어냈다. 기자의 건조한 시선은 비극을 다룰 때 특히 돋보인다. 더럽기에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환경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사는 때로 우리가 ‘잊고 싶어 하는 현실’의 모습을 가만히 고발한다. 사실 이런 서사는 인류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5세기 레콘키스타 운동 이후 이베리아반도에 살았던 무어인이 그랬고, 20세기 유대인이 그랬다. 더 가깝게는 2016년 브렉시트 당시 영국에 살던 폴란드계 노동자들이 있었고, 2025년 추방 위기에 처한 미국의 불법체류자들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불순분자로 취급받았지만, 동시에 사회 밑바닥을 지탱하는 괸 돌이기도 했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이들을 지워내는 데 성공한 사회는 과연 유토피아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과연 소를 도축하는 백정이 사라진 조선에서 소고기를 맛볼 수 있었을까. 이는 위 사례들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무어인이 사라진 스페인에서는 불결한 일을 도맡으려 하는 사람이 없어 곤란에 처한 사람들의 기록이 남았고, 20세기 유대인을 추방했던 독일은 찬란한 과학 기술을 잃었다.(물론 독일 사례가 정당하지 않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으나, 그 유대인 중 아인슈타인과 같은 지식인이 끼어 있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다) 또,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이후 폴란드 노동자가 사라지면서 시골 지역 구인난이 심화해 농산품 가격이 치솟았고, 2025년 미국에서도 농장 노동 인력의 90%를 차지하던 불법체류자들이 사라지면서 비슷한 문제가 현실화하고 있다.


애덤스식 경제발전의 폐해는 시장 효율화 법칙에 따라 분업 방식으로 노동 효율성을 높인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학자 코코 크럼이 지적한 대로 지나친 효율화 공식에 의존하는 사회 풍토를 조성하고,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기조 속에 숙의나 약자와 같은 필수 개념들을 끝끝내 묻어버린다. 이는 흉악범에 대한 엄벌주의를 강조하지만 정작 교도관의 서사를 모르고, 드론의 위력을 두려워하면서도 드론을 조종하는 병사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린다는 사실에 둔감하며, 매일 냉동실에서 닭가슴살을 꺼내 데워 먹으면서도 매일 누군가 닭을 도축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석유 산업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원유 없이 돌아가지 않는 세상 속에 사는 자신을 떠올리지 못하는 대중을 양산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처럼 편리한 세상은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을 위해 누군가 더러운 일을 감수하며 산다는 진리를 자꾸만 지워내기에 위험하다.


불편한 이야기를 내뱉으면서 한 걸그룹이 던진 ‘눈치보지 말고 당당하게 살자’는 메시지를 부정하는, ‘눈치 없는 깨시민’ 행세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실 나이 든 삼촌 팬 비슷한 이미지가 주는 특유의 감성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러나 그 앙칼진 눈초리조차 닿지 않는 사회 밑바닥에는 여전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티 워크’가 있다는 이야기만큼은 꼭 던지고 싶었다. 에스파에게는 감사한 마음뿐이다. 마침 좋아하던 걸그룹이 시의적절한 노래 ‘더티 워크’를 공개해준 덕분에 사회에 존재하는 또다른 ‘더티 워크’도 이야기해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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