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의 미는 없었다' 좌절로 끝난 아시안컵 우승 도전
“역대 참사라는 말이 붙는 경기가 여럿 있었는데 이렇게 유효슈팅 하나 못 하고 끝나는 경기는... 안타깝습니다.“
-tvN 배성재 캐스터-
아시안컵 4강전, 한국과 요르단 경기가 끝났다. 경기가 끝난 순간 화가 났다. "축구는 합리적인 스포츠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공은 둥글다." 미셸 플라티니 전 유럽축구연맹 회장이 한 말이다. 그동안 국제 대회에서 우리나라 국가대표 축구팀이 패배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하지만 이번처럼 오래 화가 치밀어오르긴 처음이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부임 이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이번 패배 이전까지 13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왔다. 진기록이다. 그러다 결국, 일이 터졌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결과주의가 일을 키웠다. 과정이 엉망진창이었지만, 결과가 좋으니 넘어가자는 분위기는 문제를 해결할 골든타임을 그대로 흘려보냈다.
데이터로 보면 경기력 문제 심각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회 기간 중 한국이 기록한 필드골은 16강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조규성이 헤더로 넣은 동점골 뿐이다. 손흥민(토트넘 훗스퍼), 황희찬(울버햄턴), 이강인(파리 생제르망) 등 호화 공격진을 보유한 국가답지 못한 모습이다. 수비 조직력도 최악이었다. 대회 기간 중 8골을 헌납했다. 골키퍼 조현우(울산 현대)가 없었다면 두 자릿수 실점도 기록할 뻔했다.
이제 평가 시간이다. 분노는 여기서 출발한다. 무력한 패배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임자들이 나서려 하지 않는 모습에 더 화가 난다. 그러나 대중 비난은 엉뚱하게도 대회 내내 죽도록 뛴 선수진에 향한다. 실책을 남발한 수비수 박용우(알 아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직업정신에 맞지 않은 실력을 선보였기에 변명할 여지도 없다. 하지만 좀 더 들어가 책임 소재를 살펴 보면, 그를 무대에 세운 사람은 클린스만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내세워 입지를 다지려 한 사람은 정몽규 축구협회장이었다. 여기서 무능한 협회 행정이 경기 결과로 이어졌음을 볼 수 있다.
축구 경기에서 한국 사회를 봤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나라가 조금은 달라졌으리라 생각했다.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관행이 자리잡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헛된 기대였다. 10.29 이태원 참사 때 사고 책임이 있던 인선 중 처벌받은 이는 없었다. 책임 소지가 분명했음에도 전원 보석을 받았다. 어느새 대한민국은 사건 때마다 담장자가 사라지는 나라가 됐다. 처참한 경기에 입을 다물고 있는 협회 모습에 기시감이 드는 이유다.
앞으로 조금은 달라질까? 안타깝게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크게 두 가지 이유다. 첫째로 감독이다. 클린스만은 감독을 계속할 예정이다. 축구협회가 그에게 처음 제시한 연임 조건은 아시안 컵 4강이었다. 어찌됐든 목표를 달성한 클린스만은 감독직을 연장할 수 있게 됐다. 전술 부재 문제에도 책임지지 않고 빠져나갈 구멍이 만들어진 셈이다. 둘째는 정몽규 축구협회장이다. 현재 한국축구협회는 사재 출연부터 근태까지 논란이 끊이질 않는 상황이다. 김판곤 위원장이 말레이시아 축구 감독직을 맡아 나가고 나서부터는 업무 처리가 사실상 마비됐다. 그런데도 정몽규 협회장은 어떤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다. 물러날 낌새도 없다. 두 악재가 계속되면 이번 참사는 언제라도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대회 기간 내내 허벅지에 테이프를 친친 감을 정도로 사력을 다해 뛴 대표팀에게 박수를 보낸다. 기량이 부족했을지언정 선수들은 경기마다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에 이들을 탓할 순 없다. 그러나 사람 보는 능력이 부족한 감독과 졸속행정을 추진한 협회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듣기 싫겠지만 감내하길 바란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