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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통에 고통받으면서 쓰는 글

등근육이 개같이 아프다 어깨와 팔과 손과 일단 근육이 붙어있는 모든 신체가 씨발 개좆같이 아프다.

내가 아픈 이유는 이 글을 시작한 일요일 오후 열시 이십사분으로부터 약 이틀 전인 금요일에 삽질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했다. 삽질만 한 건 아니고 갈퀴질이랑 괭이질도 많이 했다. 내 2인1실 기숙사 방보다 훨씬 넓어보이는 땅을 겨우 세 명이서 몇 년간 방치된 마른 덤불투성이 땅을 풀을 치우고 돌을 골라내고 자라나는 뭔지도 모를 이상한 나무? 풀? 어쨌든 너무 오래 그 자리에 있어서 반쯤 목질화된 무언가들을 뽑고 땅을 뒤엎고 푹신푹신하게 만들어서 씨를 뿌렸다. 진짜 개같이 힘들었다. 이렇게 힘든 걸 할 거라고 수강신청 전에 공지해 줬다면 신청을 고려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엄청 많은 삽질이나 주말농장이나 어쨌든 그런 걸 해 본 사람들이 이 글을 보면 다 안 해봐서 그런다고 웃을지도 모른다. 씨발 당연히 안 해봤지 지금 대학에 있는 사람은 거의 다 바깥출입도 조심해서 하던 코로나학번들이고 이건 2학년 수업인데. 그럼 밭일 씨발 밭은커녕 삽도 안 쥐어본 애들인데 이게 안 힘들면 "숙련도가 필요없는 일"같은 계급주의 사회의 꿈 같은 게 1차산업에서 발견된 거나 마찬가지니아 이런 이야기 하려고 글쓰기 시작한 거 아닌데 걍 대충 나 힘들다는 얘기만 하고 끝내야겠다 뭔 사회는 사회야 갑자기 이상한 주제로 튀어서 불특정다수에게 시비거는 버릇도 고쳐야 한다 저와 다르게 순종적인 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합니다 아빠를 너무 닮아서 반골기질이 골수 대신 차있나봐요 이게 어쩔 수가 없네요

어쨌든 나는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을 했고 당연히 다음날 일어나니 태어나서 거의 처음 써보는 부위의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근육이 비명을 지른 게 맞나? 내가 아니라? 나도 비명을 지른 것도 같은데 지금 비명 비슷한 소리를 내 보니까 어딘지도 모를 곳들의 근육이 항의하듯이 아파와서 그냥 얌전히 다시 누웠다. 반골은 내가 아니라 내 근육들이었다. 지금 손까지 아프다. 손이 아픈 게 맞나? 아픈 데가 너무 많아서 어디가 아픈지도 정확히 모를 지경이다 미치겠네 나는 사람 팔 하완이(혹시 모르는 사람을 위한 해설:손목과 팔꿈치 사이) 근육통으로 아플 수가 있는 부위인지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 지금 가장 아픈 부위는 등허리 부분 근육들인데 내 내장을 감싸고 있는 게 진짜 근육이 맞았구나... 내 등에 근육이 있긴 있었구나..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생경한 고통이다.

내가 전에 이런 고통을 겪었던 적이 있었나? 없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1,2학년 때쯤에는 대충 운동 비슷한 부활동 하느라 근육통이 왔던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 정도였을 리가 없다. 이런... 시간차로 오는 전신 근육통 같은 거... 한 번이라도 겪으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정도의 미적지근한 문장이 나올 리가 없다 몇십년이 지나도 내가 20xx년 xx월xx일에 겪었던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근육통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거다 난 이미 오늘 날짜를 기억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내가 파종 후에 내 기숙사 방 내 딱딱한 침대 매트리스 위에서 얌전히 쉬었다면 이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거다. 진짜로. 하지만 나는 밭일 수업이 끝난 후 세탁기를 두 번 돌렸고 청소기도 한 번 돌렸고 빨래를 다 넌 후에 노트북을 포함한 짐이 가득 든 가방을 가지고 세 시간 거리인 본가까지 가서 굳이굳이 잤으며 그 다음날에 끔찍한 근육통에 시달리면서도 친구들을 보러 이동시간까지 포함해 약 10시간 동안 바깥에 있었다. 음. 내가 생각해도 좀 멍청한 짓 같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학교에 확진자가 너무 많아져서 파종 수업이 한 주 미뤄졌는데 하필 그게 한 달 전부터 정해진 나와 내 사랑하는 친구들의 에프터눈티세트 예약일 바로 전날인 걸 어떡해. 가야지. 가서 개같은 근육통에 신음하더라도 일단 가야지. 코로나 이전에 마지막으로 봐서 거의 삼 년 만에 보는 친구도 있다는 걸 기억해낸 순간 근육통이고 뭐고 죽어도 간 후에 얼굴보고 죽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멍청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우정도 사랑이고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 초반쯤 된 여자애들은 원래 좀 사랑에 목숨을 거는 경향이 있으니까. 내 브런치 글을 몇 개라도 읽고 난 사람이면 다 알겠지만 나는 그다지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만약 아이큐가 200쯤 되는 천재더라도 나는 친구를 택할 것 같다. 그것이 사랑이니까.

어쨌든 나는 몸이 아팠어도 만으로 열아홉 살이고 아직 팔팔해서 친구를 막상 보니 너무 신나가지고 존나 방방 뛰고 껴안고 떠들고 노래하고 아주 난리가 났다. 먹은 음식 사진이 기가 막히게 잘 나와서 여기에도 올리고 싶긴 한데 이 마음의 화장실 같은 곳에 내 인스타에도 올라간 사진을 올리기엔 너무.... 음... 그래서 그냥 안 올리기로 했다. 엄청 재미있게 놀았다는 것만 알면 됐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일어나자마자 끔찍한 근육통에 고통받다가 겨우 밥을 먹고 학교 기숙사에 도착해서 근육이완제 두 알 먹고 누워 이 글을 쓰고 있다. 약 먹으면 졸리대서 잠올 때까지만 쓰려고 헀는데 왜 이렇게 많이 썼는지도 모르겠고 슬슬 눈이 감기는 것도 같다 어쨌든 모두들 무리한 운동은 하지 않기로 해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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