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만원 주고 플라스틱 카드 받기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은 생산적인 이야기를 해야지. 운전면허를 땄다. 2종 보통 면허다. 사실 방금 딴 건 아니고 여름방학에 학원 가서 땄다. 학원에서 준 문제집으로 필기시험 보고 도로주행 합격하기까지 삼 주쯤 걸렸다. 중간 한 주는 학원 예약이 꽉 차서 쉬었으니 실제로는 보름쯤 걸린 거다. 필기-기능-도로까지 한 번에 합격했는데 내가 뭐 운전에 재능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학원에 돈 싸들고 갔더니 어떻게든 해줬다.
큰따옴표 쓰는 거 처음 해본다. 그냥 쓰고 싶었다.
학원 만세. 만약 독학했다면 10수쯤 했을 것 같다. 세금 포함하고 필기비용은 안 포함하고 기능 도로 하루씩 추가해서 114만원인가 120만원인가 줬는데 가격은 기억이 안 나고 어차피 아빠 카드로 이미 낸 거 120만원인 걸로 하기로 했다. 114만원짜리 플라스틱 포카(내 증명사진 버전)보다는 120만원짜리 내 포카가 좀 더 멋진 것 같다.
운전면허를 딸 결심을 한 이유는 진짜 존나 절박했기 때문이다. 만 18세 넘었을 때부터 아빠가 따라고 염불 외긴 했는데 안 들렸고 나에게 주어진 무한한 시간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주변 친구들이 나랑 한 명 빼고 다 운전면허를 따 버렸다. 그런데 유일하게 운전면허 없는 친구가 이번 겨울방학에 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무리에서 혼자만 면허 없는 사람이 되는 건 싫었다. 그래서 여름방학에 시간 나는 김에 따기로 했다.
학원에 가서 돈을 내면 안전교육을 몇 시간쯤 해주고 필기시험에 도움이 될 문제집 하나를 준다. 그걸 가지고 공부를 좀 해서 필기시험에 응시해야 한다. 이 필기시험은 학원에서는 못 보고 근처 운전면허시험장까지 가야 한다. 어렵진 않은데 자전거도 안 타본 나같은 사람은 문제를 좀 풀어보긴 해야 한다. 난 학원에서 준 문제집은 보기 싫어서 안 봤고(이유: 표지가 못생김) 네이버에서 운전면허 필기나 대충 비슷한 키워드로 검색하면 문제은행 같은 걸로 풀게 해주는데 그거나 몇 번 뒤적거리고 와서 70몇점 받았다. 1종 딸 걸 그랬다. 트럭 멋진데. 운전면허용 사진이랑 신분증이랑 돈 같은 거 가지고 시험장 가면 시력측정하고 시험을 볼 수 있다. 시험보기 전에 안전교육을 들어야 하는데 학원에서 미리 안전교육을 들으면 안 들어도 된다. 꼭 다시 듣고 싶으면 아마 듣게 해주긴 할 거다. 난 안 듣고 싶었고 물어보지도 않아서 잘 모르겠다.
필기 합격증을 들고 학원에 가면 기능연습을 보게 해준다. 원래 법으로 정해진 최소수업기간은 이틀인가 그런데 등록할 때 같이 간 우리 아빠가 나를 불신해서 하루 추가했다. 삼 일 내내 엄청 나이 많고 친절하신 선생님이랑 같이 수업했다. 진짜 엄청 친절했다. 내가 엑셀이랑 브레이크를 착각해서 몇 번쯤 죽을 뻔했는데 목소리 한 번 안 높이셨다. 전에 받은 학생이 급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몸이 확 쏠려서 차 어디에 부딪혀 관자놀이 쪽이 찢어졌다고 하셨다. 나는 급브레이크는 안 밟았다. 대신 엑셀을 밟아서 몇 번이나 선생님이 멈춰 주셨다. 가 보면 방금 필기 합격해서 표지판이나 몇 개 외우는 사람한테 냅다 운전석에 앉아보라고 하는데 좀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일단 앉으면 어떻게든 된다. 자동차는 생각보다 빡대가리특화형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어서 어 이쯤에 이런 기능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하면 거기에 그 기능이 있다. 어쨌든 삼 일쯤 수업하고 시험 봤는데 주차에서 한 번 감점되고 90점으로 합격했다. 차에서 합격이라고 하는 순간 기분이 너무 좋아서 처음 보는 선생님(이 분도 나이 많음)한테 저 합격했어요! 하고 축하받았다.
도로는 학원 일정 문제로 일주일 텀을 두고 예약했다. 법으로 정해진 최소수업시간보다 하루 많은 4일이다. 수업 날마다 선생님은 매일 달라졌다. ABCD코스가 있는데 일정 지점까지 갔다가-돌아오는 걸로 A,B가 한 세트고 C,D가 한 세트다. 나는 A가 제일 자신있었다. 그런데 시험볼 때 내 앞사람이 뽑기를 잘못해서 D코스로 시험을 봤는데 어떻게 합격을 했다? 기능 때는 최대 시속 20키로로 달리다가 도로 오니까 구간에 따라 60키로로 달리래서 사람 말로 한다고 다 말이 아니지요? 기분이었다. 근데 어떻게 하면 된다. 도로에 지나가는 차들도 굳이 노란색 학원 차를 위협하거나 앞서가거나 하려고 하지 않아서 그럭저럭 쾌적했다. 딱 한 번 웬 미친 새끼가 죽고 싶어서 내 앞에 위협적으로 끼어들었는데 너무 깜짝 놀라서 바라는 대로 받아주려고 속도 올렸더니 선생님한테 진짜 엄청 혼났다. 이 브런치를 보고 있는 운전자 여러분은 노란 도로주행차 안에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경우를 고려해서 노란 차를 배려하도록 하자. 합격할 때는 너무 기뻐서 다른 게 아무것도 안 들리는 상태였기 때문에 점수가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합격을 했다.
필기기능도로를 한 번에 붙으니까 기분이 엄청 좋았다. 케이크 먹었다. 그 기세로 4수쯤 한 친구한테 "세상에 누가 2종보통을 4트만에 따지요? 말이 되나요?" 하면서 놀렸는데 손절당할 뻔했다. 브런치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상대를 봐 가면서 자랑하도록 하자. 나는 평소에는 상대를 봐 가면서 장난을 치는 사람인데 너무 신나서 잠깐 뇌가 마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