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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작가가 되어 버렸어.

라고 글쓰기 귀찮아하는 사람이 말했다.

by 가죽지갑 오븐구이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바야흐로 이틀 전(아 너무 최근이네), 광어회와 술을 먹다가 기분이 좋아져서 바로 브런치에 가입하고 몇십 분 만에 쓴 글 한 편을 올린 후 작가신청을 했는데 돼 버렸다.


그 전에도 브런치를 몰랐던 건 아니다. 재미있어 보이는 글이 있다면 읽기도 했고 몇 개는 북마크도 했고... 그 전에도 작가 한번 해 볼까?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긴 했는데 아마 작가를 신청하기 위해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브런치를 까는 부분부터 귀찮아져서 잊어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내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브런치 작가를 했을까. 사람은 원래 술이 좀 들어가면 갑자기 막 활동적이 되고 기분이 하이해지고 의욕이 넘치고 그런 신체와 정신의 피버 상태가 확률적으로 지속된다. 나한테는 이틀 전이 그 때였다. 몇천 자짜리 글을 한 시간도 안 돼서 쓰고 작가신청까지 한번에 해 버릴 정도의 기력이 내 몸 어디서 나왔는지는 몰라도 그때 그걸 해냈다. 다음 날 일어나니 어떤 글을 썼는지 아무 기억도 안 났다. 취해서 필름 끊기면 꼭 몇십 킬로미터 떨어진 자기 집에서 눈을 뜬다는 사람처럼 뭔가 취중의 기적이 나한테 일어났던 것 같다. 앞으로 글 써야 하는데 생각이 안 나면 집에서 술 마실까? 단편이면 모르겠는데 장편인 경우에는 쓰다가 취해서 잠들어 버리는 일이 없게 주종이나 주량을 잘 조절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진짜신기하네......

사실 신청한 다음 날 대충 무슨 짓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서 브런치 작가 신청 통과 난이도를 좀 검색해 봤다. 정확하게 명시된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열심히 쓴 글을 여러 개 올렸는데도 몇 번씩 떨어져서 다시 써야 했던 사람도 있고 별 기대없이 올린 글 하나로 신청이 통과된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한테 작가신청 통과 알림이 왔던 건 잠옷 차림으로 노트북이나 두들기고 있는 지금으로부터 한 다섯 시간쯤 전인데 사실 그 전에는 내가 될 거라는 생각을 안 했었다. 만취 상태는 아니더라도 좀 알딸딸한 채로 퇴고도 없이 쓴 글이니까. 되면 좋고 안 되면 뭐 다음에 하고싶은 기분일 때 글 몇 개 더 써서 올리고 말지 어쩌겠어. 같은 생각이었는데 나에게 온 건 축하 메세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라는 인간은 처음 신청에서 떨어지면 절대 재도전 안 할 것 같은 인간이라 처음에 붙은 게 엄청 잘된 일 같다.


신청했을 때 쓴 글은 심야텐션+취한 채로 쓴 글+퇴고 없음=글쓴이가 다시 읽으면 죽는 글이라 일말의 호기심도 없이 작가의 서랍에 아직 잠들어 있다. 세상에는 모르는 게 좋은 것들이 잔뜩 있다. 예를들면 김정은이 키 160cm에 몸무게 160kg이라는 신빙성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정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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