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요 저 진짜 심각함
누군가는 그 사람을 낳았고. 누군가는 그 사람이 작고 빨간 몸으로 태어나 빽빽 우는 걸 보고 사랑에 빠졌으며, 누군가는 작고 무력한 그 사람을 사랑해서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 주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지퍼 끝을 맞춰서 올리고 컵에 물을 따르는 것같이 아주 사소한, 우리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해내는 정말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일을 하나하나 몇백 번씩 실패해가며 가르쳐 세상에 내보냈다는 게 가끔 믿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 사람에 대한 악의로 똘똘 뭉쳐서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꼬투리잡고 기분을 상하게 하고 자존감을 깎아 먹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 같은 사람.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단어를 쓰며 혼자서만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이 없는 것 같은 사람. 목소리를 듣기 좋게 가다듬으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저 자기가 하는 말을 더 많은 사람들이 듣고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더욱 높이는 사람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 같은데 신기하게 자기 몸을 자기가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누군가에게 키워진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악의도 없이 그저 먹고 자고 하늘을 쳐다보고 다른 사람을 비웃기 위해서가 아닌 그냥 즐거워서 웃음지을 수 있었던 때가 있었을까? 누군가가 정말로 그 사람을 사랑해서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자기 전 자장가를 불러 주고 그 사람을 위해 그림책을 읽어 주었을까? 그 사람이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크리스마스 한참 전부터 그 사람만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 머리맡에 거대한 양말을 두라고 가르쳐 줬을까? 그 사람이 태어나는 것을 고대하며 이름을 고민하고 다정하게 태명을 부르며 배를 쓰다듬고 작은 그 사람이 쓸 조그만 손싸개와 아이용 모자를 사고 선물받았을까?
세상에는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사람을 배포하는 비밀조직이 있다. 없다면 이... 내 인생에 수없이 많았던 끔찍한 사람들이 다 자연발생이라도 했다는 것이 되는데 그럴 리가 없다. 진짜로. 말도 안 돼. 세상이 그럴 수는 없는 거다. 도의적으로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사람을 배포하는 비밀조직... 너무 기네 대충 끔찍한 사람 배포 조직...도 길다 그냥 조직이라고 하자 어쨌든 조직의 목표는 무엇일까. 세상 사람들을 괴롭게 해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뭘까? 상식적으로 아무리 끔찍하고 세상에 도움이 안 되어보이는 사람이라도 일단 사람이다. 사람을 만드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저렴할 리는 더더욱 없다. 모 연금술 소재 만화에서처럼 어린애 용돈으로 여유롭게 해결될 일은 없는 것이다. 한 명만 만든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자금력을 필요로 할 텐데 전세계에 존재하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끔찍한 사람들을 만드는 데는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일까? 돈만 있으면 되는 일도 아니고 출생신고나 사람들이 만들어지는 동안 필요한 모든 설비와 재료를 조달하고 그 모든 과정을 비밀로 할 정보력과 인력과 권력은? 아마 상상할 수도 없이 막대할 것이다. 자기가 화성의 주인이라고 으스대는 환경 파괴자나 이동 통신 기계의 혁신을 일으킨 주제에 자기 자식 양육비는 안 주던 인간같이 개인인데 그냥 돈이 많은 한두 명의 독단으로는 벌일 수 없다. 그럼 아주 많은 사람이 합심해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는 뜻인데 정말로 그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런 짓을 해서 무엇을 얻을까?
내 추측은 이렇다. 그들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것으로 모종의 이득을 얻고 있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그냥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고 들키지 않는 걸로 인생의 활력을 얻고 있다는 가설도 있지만 나는 아직 인간의 선의를 믿고 있으니 일단 그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겠다. 그런 악의는 백인 안티백서나 지구평평이들로 족하다.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전적인 마법소녀 애니메이션 클리셰로 사람 마음의 부정적인 감정으로 에너지를 얻어서 그걸 전력이나 뭐 대충 비슷한 걸로 바꾸나?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지만 이 글은 처음부터 인간을 만들어서 사회 이곳저곳에 잠입시키고 있다는 걸 대전제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생각해 보면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다. 정신력은 사람이 달에 가고 팔도 이식할 수 있는 21세기에도 아직 다 연구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니까. 아니면 우리의 힘들어하는 모습 자체로 이득을 얻을 수도 있다. 외계 존재에게 우리 푸른 지구는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인 거지. 조직은 끔찍한 사람을 만들어서 사회 이곳저곳에 잠입시키고. 그걸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외계에 스트리밍해서 이득을 얻는다. 지구에서 필요한 자금이야 지구에서 희귀하고 값비싼 광물이 외계에서는 흔한 경우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된다고 하고. 나사나 외계인 마니아들이 만나고 싶어서 인생을 걸던 외계존재가 사실 인간의 일상 속 사소한 빡침을 구경하기 위해 자금을 대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좀 미묘해지네... 도의적으로 이래도 괜찮은 건가? 외계존재는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의지로 보고 싶어한 거긴 하지만 혹시라도 외계인 마니아를 만나는 외계존재들은 그 사람들의 환상을 위해 좀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 배려는 좋은 거다.
지금까지 조직의 목적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을 해 봤지만 확실한 건, 나는 그들에게 동의한 적 없다. 내 인생에 끔찍한 사람들을 끼워넣기 위한 동의서 같은 건 본 적도 없다고. 나는 내 부정적인 감정에너지를 착취당하고 싶지 않다. 내 인생의 사소한 빡침 레전드 클립 같은 거 제작에도 동의한 적이 없다. 나는 재료나 에너지원이 아니고, 누군가의 여흥을 위한 엔터테인먼트성 존재도 아니다. 나는 소비되고 싶지 않다. 사람이니까. 태어났고 교육받았으며 자의식을 가진 인격체이니까. 그러니까 끔찍한 사람 배포 조직은 시급히 활동을 중단해 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제발요. 요즘 진짜 죽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