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사람들도 고생이 많다
어쨌든 내 탓은 아니지만
by 가죽지갑 오븐구이 Oct 31. 2024
지난달인가?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은 과거의 일이다.
나는 본가로 돌아가려는 길이었다. 기차를 타서(아마 무궁화호였던 것 같다) 자리에 앉으려는데 내 자리에 웬 청년이 한 명 앉아 있었다. 기차를 타다 보면 이런 일은 흔한 편인데, 기차라는 물건이 원래 좀 정직한 편이 아니라서 멀쩡한 젊은 사람도 자리를 자주 착각하는 편이다. 보통은 표를 보여주며 여기가 내 자리라고 말하면 물러나서 크게 문제가 되는 일도 없다. 이번에는 그렇게 쉽게 끝나지는 않았지만.
내가 자리를 확인해 달라고 하자 그 청년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서 옆에 있는 할아버지가 자기 자리에 앉아서 그냥 여기 앉았다고 주장했다. 솔직히 가끔 있는 일이다. 창가는 인기가 많으니까. 그리고 창측이랑 통로측이 좀 헷갈리게 쓰여져 있기도 하고. 그래서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어쨌든 자기 예매내역을 조회해서 나한테 보여 주려고 하던 그 청년이 갑자기 여기가 3호차에요? 하는 게 아닌가? 내가 탄 호차는 3호차가 맞았다. 맞다고 하니 그 청년은 자기가 2호차를 타려고 했는데 잘못 왔다고 정리할 수 있는 문장을 내뱉고 짐을 챙겨 2호차로 향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청년이 앉아야 할 자리에 앉았다는 오해를 받은 노인분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간 사람은 간 거고 나는 내 자리에 앉아야 하니 올바른 자리에 앉은 그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았다. 겸사겸사 뭐 내가 해명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억울하게 오해받은 그 할아버지에게도 아 저 사람이 착각해서 여기가 자기 자리인 줄 알았대요 같은 말을 해 줬다. 그 할아버지는 내 말을 주의깊게 듣더니 조용한 어투로 자기같이 나이 많은 사람은 젊은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일단 자기가 잘못한 줄 안다고 했다. 뭐라고 답하기도 애매한 말이라 일단 웃었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고 나는 내 폰 보고 그분도 그분 폰(아마 역사 유튜브 채널)을 보고 그렇게 자기가 내려야 할 곳까지 갔다. 별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가끔 그때 그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 일이다. 그 할아버지는 이상한 트러블에 휘말리거나 추가적으로 오해받는 일 없이 목적지까지 잘 가셨을 것이고 기차 호차를 착각한 그 청년도 올바른 자리를 찾아서 어디든 가야 할 곳에 갔겠지. 나도 그날 집 갈 때까지 별 문제 없이 잘 갔다. 그치만 그 말이... 나이많은 사람은 나이 적은 사람이 뭐라고 하면 자기가 잘못한 줄 안다는 게 좀... 아니 뭐 보통 그렇긴 하지만 이번에 이야기한 그 얼빠진 청년처럼 반대의 경우도 있지 않나? 그런데도 노인층에게 전반적으로 그런 학습된 무력감 혹은 자신감 결여나 거부당한 경험이 관찰되는 게 기분이 좀 그랬다.
노인은 일반적으로 환영되는 부류는 아니다. 아무래도 학습속도도 좀 떨어지고 운동능력도 영 별로고 조심해야 하는 것도 많고 외적으로도 그렇게 많은 층에게 호평받는 것도 아니다. 이건 모든 연령대의 사람이 이십대를 좋아해서 그런 탓도 있는 것 같지만 노년이 되면 청년층보다 좀... 덜 좋아지는 편이긴 하잖아. 그게 뭐든 간에. 어쨌든 내가 이야기했거나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들로 인해 노인들은 사회의 주류에서 철저히 배제되는 편이고 오늘 그 현장을 본 것 같았다.
참... 내가 뭘 잘한 게 있어서 젊은 게 아닌 것처럼 그 사람들도 벌받아서 늙은 건 아닐 텐데... 내가 미안해할 일은 아닌 것 같지만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객관적으로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나한테는 항상 잘해주던 우리 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내가 나이가 들면 나도 그렇게 될까?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겠지... 모두에게 시간은 초속 일 초로 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