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샘 Oct 02. 2023

신서유기에서 발견한 조규현의 음색

경계를 넘나드는 것에 두려움을 없애자

코맹맹이 소리를 가진 이 시대 명창이 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의 이름은 조규현.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OST 중 하나인 <화려하지 않은 고백>을 듣고 있는데, 명창이라고 칭해주고 싶더군요. 

콧소리가 살짝 가미된 그의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막힌 코를 뻥 뚫어줄 듯한 시원함을 선사합니다. 

조규현을 알게 되고, 그의 목소리를 좋아한 계기는 음악이 아니었습니다.

예능 <신서유기>에서였습니다. 

<신서유기>에서 그는 별명 부자입니다. 

술을 잘 마셔서 조정뱅이.

어떤 술인지 맞추는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정확히 브랜드 이름을 맞추어 조믈리에.

생일모자를 쓴 모습이 삐에로를 닮아 조삐에로 등.

하루는 멤버들과 술을 마시며 펜션 안에 설치된 노래방에서 노래를 하더군요. 

그렇다할 음향효과도 없고, 술이 들어간 상태에서 노래를  하는데 콘서트에 온 줄 알았습니다. 

중간에 다른 멤버들이 함께 따라 부르는데 오롯이 조규현의 목소리만 듣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보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미지출처:인사이트, 디지털뉴스팀, 2019.12.08 07:26 ‘노래방 마이크+음주’ 최악의 조건인데도 노래 너무 잘해 넋 놓고 보게 되는 ‘신서유기’ 규현 영상 - 인사이트 (insight.co.kr)


그 이후에 그가 부르는 노래 영상들을 들어보니 완전 실력자였어요. 

만약 그가 예능에 출연하지 않고, 노래만 줄곧 했었다면 그가 실력자인 줄 제가 알았을까요?

그저 슈퍼주니어 멤버 한명인 줄만 알았을거에요. 

이처럼 자신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 빛을 발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24년간 영어교사였다가 진로로 과목을 바꾼 제 경우도 그렇습니다. 

진로교사가 된 이후에 책을 내고, 강의를 하고, 브런치 등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교사인 제 본업이 바뀐건 아니지만 영어 실력이 전보다 못해진 건 사실이지요. 

하루에 4-5시간씩 학생들과 영어수업을 하던 때와 비교하면 영어에 대해서는 점점 까막눈이 되어 가는 것 같아요. 

대신 진로, 꿈, 미래, 책, 공부 등 수백권의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보는 시력이 높아졌습니다. 

제가 진로로 진출하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각종 지식들이 머릿속에 들어 오더군요. 

영어로 글을 읽던 때와 달리 우리말로 책을 읽으니 정보를 이해하는 시간이 훨씬 줄어드는 장점도 있습니다. 



영어교사를 포기하고 진로교사가 되기로 했을 때, 주변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저도 영어가 중요한 과목임을 인정합니다. 

아무리 번역기가 우수하다 하더라도, 대학입시에서 나아가 취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거든요. 

영어는 독학으로 공부하기 힘든 과목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해요. 

그래서 사교육에 많이 의존합니다. 

또한 내신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학교 영어시간에 절대적으로 집중해야 합니다. 

관사나 전치사 하나 잘못 건드려도 한 문제가 날아갑니다. 

문법과 어휘에 초집중해야하는 과목이지요. 



저는 가끔 영어시간에 아이들의 우상이기도 했지요. 

미국인처럼 발음을 하거나, 원어민 선생님과 함께 co-teaching을 하는 날이면 아이들이 우와하고 입을 벌립니다. 

어깨에 절로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런 제가 진로로 과목을 바꾸었습니다. 

진로는 답이 없는 과목입니다. 

시험도 치지 않고, 성적을 매기지도 않습니다. 

얼마나 편안하고 막 대해도 되는과목입니까?

그러니 주변에서 반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순간의 고민도 하지 않고 진로로 과목을 바꾸었습니다. 

이유는 평생 영어만 가르치면서 학교생활을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어를 남들보다 잘 하는 건 좋지만 급변하는 세상에서 영어에만 집착해서 살고 싶지 않았거든요. 



저는 영어교사가 된 후 영어의 굴레에 갇혀 살았습니다. 

영어를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영화를 보면서도 영어 리스닝을 동시에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국 영화 내용도, 영어도 제대로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하고 말았죠. 

영화를 볼 때는 영화만 보고, 차라리 다른 방법으로 영어공부를 했어야 하는데, 괜한 영화만 하나 버린 꼴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진로교사가 된 후 저는 선을 넘은 댓가를 톡톡히 치뤄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상당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교사로서 정체성의 위기가 왔습니다. 

아이들은 진로시간에 무언가 배우려고 기대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뭐하는 과목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새로운 도전을 해야만 했습니다. 

일단 진로교사로서 전문성을 가져야 했습니다. 

권위가 필요했습니다.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각종 직업정보를 제시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는 스토리텔링 능력도 필요했습니다. 

아이들의 농담도 유머러스하게 받아치는 낭만적인 성격도 있어야했고, 

그들의 고민을 따뜻하게 받아주고 방향을 제시하는 따뜻한 감성도 지녀야했습니다. 

영어지식으로도 충분히 우와라는 말을 듣던 저는 선을 넘는 바람에 더 많은 능력이 요구되었습니다. 



선을 넘는다는 건 그렇습니다.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오면 이기기 위해 열이 나는 것처럼 새로운 영역에 들어가려면 이런 여러가지 홍역을 치뤄야 했습니다. 

주말마다 노트북을 들고 도서관과 카페를 돌아다니면서 수업자료를 만들어야 했고, 

모르는 지식을 채우기 위해 책으로 탑을 쌓아놓고 이것 저것 참고해야 했습니다. 

수업시간 초반에 집중하게 하기 위한, 소위 어그로 끌기 위한 사진과 영상자료를 찾고, 퀴즈를 만들고, 게임을 개발해야 했습니다. 



그러고 1년이 지나니, 이런 칭찬을 해주더군요. 

녀석들, 아무생각없는 고딩인 줄 알았는데, 알건 다 아는 능구렁이였어요. 


"선생님, 저는 체육시간만큼 진로시간도 재미있어요."

평소 나의 질문에 창의적인 대답을 많이하고 수업시간에 말하는 걸로 자신의 유능함을 인정받으려 하는 똘똘한 학생의 말입니다. 

남자고등학교에서 체육만큼 재미있다는 건 극찬인 거 아시지요?



"이렇게 재미있는 수업을 준비해 주신 진로 선생님께 다 같이 박수."

가장 성실한 학급의 반장이 한 말입니다. 

반장이 먼저 박수를 치자 아이들이 함께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교사로서 이런 경험은 처음입니다. 

수업 열심히 해 주었다고 갑자기 수업시간에 박수를 받다니요?

마치 오스카상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이렇듯 선을 넘어 진로로 바꾸어서 생긴 결과입니다. 

저처럼 굳이 과목까지 바꾸어가면서 넘을 넘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선을 넘다들면 기회가 많아지는 건 사실입니다. 



슈퍼주니어 규현에 대해 잘 몰랐던 제가 

조규현의 노래를 좋아하고, 그에게 입덕하게 된 계기는

음악 프로그램이 아니라 <신서유기>라는 예능이었으니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