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으로 나와 소통하기
평생을 가난과 싸운 예술가가 있습니다. 화가로서는 좀 늦은 나이인 27살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요. 네더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고흐는 자신을 작품의 모델로 삼아 그린 자화상이 유독 많아요.
널리 알려진 것이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입니다. 귀에 붕대를 칭칭 감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요. 이는 친구인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인 폴 고갱과의 다툼 뒤에 그린 것입니다. 고흐가 고갱과 심한 갈등을 겪은 후 스스로의 귀에 상처를 내고, 이를 치료 받은 뒤 자기 모습을 그려 탄생한 작품이지요.
그런데 고흐는 왜 이렇게 많은 자화상을 남겼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가난해서 모델료를 지불할 수가 없었대요.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자화상을 그리면서 거울 속에 비친 자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죠.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스스로를 격려하기도 했구요. 그래서인지 고흐의 자화상은 그의 생김새 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어떻게 발전했는지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답니다.
고흐의 자화상 못지않게 우리나라에도 걸작품이 있습니다. 미술, 국어, 역사시간에 언급이 되었을 수도 있는 꽤 유명한 작품이죠. 국보로 지정된 조선의 선비화가 윤두서의 자화상압니다.
모자의 윗 부분이 잘려나가고, 몸통은 생략되었으며, 귀도 아예 없습니다. 화가가 그리다 바빠서 붓을 놓았다고 보기에는 수염이 한 올 한 올 살아있습니다. 심지어 콧수염도 보일 정도에요.
당쟁이 가장 치열했던 숙종 시대, 집권세력이 여러번 바뀌면서 윤두서도 당쟁의 화를 피해갈 수가 없었어요. 역모 사건에 휘말렸다 풀려나긴 했지만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습니다.
모자의 윗부분을 과감히 생략한 건 벼슬에 미련을 버렸다는 뜻이고, 두 귀를 그리지 않은 건 세상의 어떤 이야기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정면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모습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강한 다짐으로 나를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많은 예술가가 자화상을 그렸는데요. 왜 사람들은 자화상을 그릴까요? 자화상을 그리다보면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고,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것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발표 수행평가에서 실수를 했거나 SNS에 자랑하는 사진만 올리는 친구가 얄미울 때 등 자신감이 없어지고 힘이 안 날 때 거울을 한 번 쳐다보세요. 현재의 모습도 괜찮고, 미래의 모습도 괜찮으니 나의 모습을 끄적이면서 나와 대화해 보는 건 어떤가요?